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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합스부르크 제국의 통합과 분열
게시물ID : history_191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역둔토
추천 : 10
조회수 : 1084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4/12/24 17:54:36
중부유럽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에 대해서 두서없이 한번 써보고 싶어서 써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Flag_of_Austria-Hungary_(1869-1918).svg.pngimages.jpg
images (1).jpgimages (2).jpg


제국회의(라이히스타트)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 및 신성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슈테판) 왕위의 영토들

1.이중제국의 민족통합 노력과 실패에 대하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타협'에 의해 탄생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은 중부 유럽에 남은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19세기의 민족주의의 발흥을 거쳐 분열과 통합시도, 실패 그로 말미암은 약화를 겪은 후

1차세계대전을 종지부로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나라가 되었고 그 흔적들을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루마니아에 있는 소수민족 헝가리인이나 역시 

세르비아 북부 보이보디나에 있는 헝가리인이 같은 경우)

유럽을 뒤흔든 1848년 3월 혁명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패 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그 흔적을 깊게 남겼다. 특히 구체제로 운영되면서 민족문제

까지 복잡한 합스부르크 국가에 큰 여파를 끼쳤다. 이 시기까지 제국의 지배민족인 독일인을 제외한 비독일(체코인, 크로아티아인, 헝가리인, 

폴란드인,슬로바키아인, 슬로베니아인,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은 정치체제의 변경과 제 민족간 법적-사회적 평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런 운동의 중심에는 체코인이 주를 이뤘는데, 체코인이 사는 보헤미아-모라비아 지역이 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공업화-근대화가 진전된 것과 

관하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보헤미아-모라비아의 체코인은 프란츠 요제프 2세(1765 ~ 1790) 시기에 독일화 정책이 

시작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다. 더욱이 비록 실패 하였다고는 하나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의 

독일 통합 움직임이 감지되었기 때문에 제국의 상황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만약 제국이 대독일주의에 의하여 독일 여러 나라들과 하나가 된다면 필연적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해체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렇게 된다면,  

독일계를 제외한 민족은  통합된 독일의 배후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으며

오스트리아제국의 독일계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체가 가져올 기득권의 상실 (북부 독일 특히 프로이센으로의 종속화 우려) 두려워 했다.

더욱이 이 시기에 이르면 제국은 국내외 문제에 대해 해결할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해결책 방안에도 소극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묘하게 전개 됨에 따라 독일계 정치인들은 구 오스트리아주의와 오스트리아적 대독일주의를 주장하게 되는데....


쓰다보니 힘들어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쨋든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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