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시체가 나옵니다 -- 사람에 따라서는 혐오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민간인 총살 1939년 바르샤바
Piaśnica 학살
정신장애, 열등인자 등을 이유로 12000 ~ 14000명 사망
1939년 공습으로 사망한 언니
가톡릭을 조롱하는 나치장교
Stutthof 수용소 화로에서 사망한 시체의 손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14살 소녀
도착하고서 장교에게 폭행을 당했다
1943년 사망
1939년 Bochnia에서 총살당한 56명
그들은 폴란드 지하 조직으로서 독일 경찰을 공격했다
폴란드로 이주해온 독일 가족들 1942년
1939년 Piaśnica에서의 학살
1945년 가톨릭을 조롱하는 독일군들
1941~1942년 이루어진 바르샤바 봉기중 사망한 1200명 중 한명의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들
Dzierżązna에 지어졌던 강제 노동수용소 (1942~1943)
총살하기 위해 여성들을 끌고가는 독일군들
유대인들을 숨겨준 죄로 아우슈비츠에 들어간 수도승 (아래 댓글에도 부연설명이 있습니다)
설탕과 밀가루를 거래한 죄로 공개처형 1941년
1941년
Leszno에서의 민간인 학살
벽에 시체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Rożki에서의 공개처형 5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독일군 한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
Pawiak감옥의 수감자들 1944년 바르샤바
1944년 나치에 저항해 체포된 폴란드인
1939년 가톨릭 사제들
체포되는 폴란드 민간인
바르샤바 봉기중 폴란드 저항군들
폴란드는 나치 치하에서 4~5백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1942년 이미 26만명이 절멸수용소에서 사망한 바르샤바의 유대인들은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음을 깨닫고 10만명이 바르샤바 봉기를 일으켰으나 잔인하게 진압 당했다
1944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독일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폴란드로 다가오자 독립을 위한 봉기가 준비 되었고 8월 1일 2만 ~ 4만명의 봉기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하고 저항하였으나 수적, 질적, 장비 모든 측면에서 열세였던 봉기군은 진압당하였다
콜베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 참조 기사 : https://news.zum.com/articles/55434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