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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랑의 사도가 아니었다.
게시물ID : religion_191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0
조회수 : 74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4/12 12:27:09

1. 마태오 복음 5장 40절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교회의 해석은 '비폭력 무저항'이라고 하는걸로 들었습니다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에도 예수의 '율법 해석과 그 준수'를 엿볼수도 있습니다.

오른뺨을 때리는건 상대방이 왼손으로 쳤을 경우입니다.(어떤 목사들은 오른손등으로 쳤을 경우라고 주장하는 것도 봤습니다). 당시 유대의 관습상 왼손으로 사람을 때리는 것은 그냥 일반적인 폭행이 아니라, 아주 경멸적인 행동이며, 율법을 깨트리는 행동이라고 합니다.(어떤 목사들의 주장인 손등으로 치는 행위도 같은 의미).

그러니 왼손으로 뺨을 때린 사람은 율법을 깨트리는 큰 죄를 진 것입니다. 이 경우 이 사람을 다시 율법안에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왼뺨을 내밀어서 오른손으로 때리게 하여 정화 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런 율법을 깨트린 죄를 지은 사람을 되돌아 오게 하기 위해 왼뺨을 내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깨트린 사람을 다시 율법안에 돌아오게 하기 위한 방법 vs 비폭력 무저항.

어느쪽이 더 맞는 해석일까요? 전자의 해석은 조철수의 '예수평전'에 나오는 당시 랍비들의 어록인 '선조들의 어록', 미쉬나, 미드라쉬, 탈무드등 방대한 자료를 첨부하여 해석한 내용입니다.

아, 그리고 남들에게는 오른뺨을 맞거든 왼뺨도 내밀라고 했던 예수가 막상 자기가 뺨을 맞으니까 어떻게 했을까요? 왼뺨도 내밀었을까요? 아닙니다.


요한 18장 22~23절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곁에 서 있던 경비병 한 사람이 "대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며 예수의 뺨을 때렸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하셨다.

 

예수는 "내가 잘못한게 없는데 왜 때려?"하고 따졌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일까요? 결국 예수는 자기가 한 말도 안 지켰다는 겁니다.

 



2. 마태오 복음 5장 44절

원수를 사랑하고...

 

: 이 부분을 가지고 기독교도들이나 혹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폭력을 금지하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용을 말했어, 하고 감동을 받는데요...

 

성경을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실상은 다릅니다.

 

마태오 복음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아래 구약 잠언에 나오는 내용과 그 뜻이 통합니다.

 

 

잠언 25장 21~22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주어라. 

그것은 그의 얼굴에 모닥불을 피워주는 셈이니, 야훼께서 너에게 갚아주시리라.

 

원수가 배고파하면 음식과 물을 주랍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과 뜻이 통하죠?

얼핏 보면 무척 좋은 말 같습니다.

하지만 그 뒷구절을 보십시오.

원수의 얼굴에 모닥불을 피워주는 셈이랍니다.

사람의 얼굴에 모닥불을 피우면 어떻게 될까요?

고통스러워하다 화상으로 죽거나 크게 다칩니다.

그렇게 하면 야훼가 갚아준다, 즉 복수해 준답니다.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말이죠.

그리고 야훼가 대신 원수들에게 복수해준다는 말은 구약의 신명기에서도 언급됩니다. 


신명기 32장 27~35절

원수들이 설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을 못살게 구는 자들이 멋도 모르고 저희의 주먹이 억센 것이지 야훼가 이 모든 일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며 으스대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생각없는 민족, 철없는 것들, 조금이라도 셈이 슬기로웠더라면 알아차렸을 터인데! 저희들이 장차 어찌 될는지 깨달았을 터인데!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않으셨다면, 야훼께서 그들을 넘겨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혼자서 천 명을 몰아내고 둘이서 만 명을 쫓아낼 수 있었으랴.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다르다는 것쯤은 우리의 원수들도 알 터이다. 

그들의 포도는 소돔의 포도나무에서 잘라온 것, 고모라 벌판에서 옮겨온 것이라, 포도알마다 독이 들어 있어 쓰지 않은 송이가 없다. 그 포도주는 바다뱀 독이요, 독사의 무서운 독이다. 

그렇다. 이것은 내가 숨겨둔 것, 봉해서 내 창고에 보관해 둔 것이 아닌가? 보복하고 앙갚음할 그 날까지. 그들이 비틀걸음을 칠 그 때까지. 이제 그들이 망할 날이 오고야 말았다. 예정되었던 일이 닥쳐왔다. 



저기 신명기 구절에 언급된 '내'는 야훼입니다. 즉, 야훼가 언젠가 원수들에게 복수해줘서 그들이 멸망할 테니, 이 성경 구절을 읽는 사람들은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며 이를 박박가는 뜻입니다.

 

덧붙여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던 예수가 막상 자기한테 밉보인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했을까요?


마태오 11장 20~24절

예수께서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동네에서 회개하지 않으므로 그 동네들을 꾸짖으셨다.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 날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싶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오히려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코라진과 가파르나움이라는 동네에서 예수 말을 안 따르니까, 다 멸망해 버리라고 저주를 하네요?

 

이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입니까? 전혀 아니죠.

 

또, 마태오 복음서의 다른 구절을 봅시다.

 

마태오 10장 34~37절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예수가 자기 입으로 자신은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 즉 분쟁을 주러 왔다고 하네요.

 

이건 원수를 사랑하라는 뜻과 완전히 배치되죠.  

 

오히려 예수의 저 말대로 했다가는 미워하는 원수가 늘어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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