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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릉 팔찌 금석문과 무령왕때 지역명(일본서기 주의)
게시물ID : history_191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경대위문대
추천 : 4
조회수 : 121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2/26 02:50:20
 
이 글은 그냥 보잘것 없는 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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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왕비의 팔찌에는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卅主耳
경자년(庚子年​,520) 2월에 다리(多利)가 만들었으며, 대부인(大夫人)의 것으로 2백 30주(主)가 사용되었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한국사라는 책을 읽는데 비슷한 단어를 같은 왕대의 기록에서 봤습니다.
국사편찬위에서 발간된 한국사 7권 282p(초판 2쇄 2013년본)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여섯째로 일본서기 계체기(繼體紀) 전반부의 기사로 보아, 6세기 초에 백제 무령왕은 哆唎(의성군 다인), 己汶(김천시 개령), 帶沙(달성군 다사)등의 낙동강 중,상류지역을 다시 점령하여 가야에 대한 지배력을 (후략)'
 
저기서 의성군 다인의 한자가 입 구변이 없는 것만 빼면 완전히 동일해서 표기방법의 오차로 보면 거의 같은 것을 지칭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금석문의 다리(多利)가 인명이 아닌 지역명이라던가(다리의 작품이 아니라 made in 多利) 아니면 저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 또는 부모가 관련이 되었다던가 하는 생각부터 다리가 가야계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이 또한 기록이 거의 없는 고대에 대한 낭만이겠죠.
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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