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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 이쑤시개
게시물ID : panic_191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5
조회수 : 416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09/02 14:51:58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서양에는 그런 속담이 있다. 호기심이란 고등동물들이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서 진화과정에서 생겨나서 이어온 비물질적인유산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등인 인간의 호기심……. 그리고 인간의 적응력.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은 우리 스스로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강한 것이다. ................ 문득 나는 귀가 간지러움을 느낀다.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본다. 어림도 없다. 뭔가 가늘고 긴 것, 귀이개라면 가장 좋겠지만 하다못해 성냥개비 하나만 있으면 이럴 때는 더 바랄 것도 없겠다. 하지만 성냥개비 같은 것은 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알맞은 것을 찾다보니 문득 발목 밑에서 뭔가 가늘고 딱딱한 것이 느껴진다. 뭐지? 나는 다리를 들고 그것을 손으로 집어 올렸다. 그것은……. 이쑤시개였다. 실망. 이쑤시개는 귀를 후빌 때 쓰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이 틈새에 낀 음식물 찌꺼기를 파낼 때 쓰는 것이다. 제기랄. 이쑤시개로는 귀를 후빌 수 없다. 귀이개로 이를 쑤실 수 없듯이.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귀이개로는 이를 쑤실 수 없지만 이쑤시개로 귀를 후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쑤시개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무심코 귀에 넣었다. 그리고 살살 귀를 후비기 시작했다. 좀 날카롭긴 하지만 그 끝을 뉘어서 조심스럽게 후벼대면 별 무리는 없는 것 같았다. 왜? 안 될 게 뭐가 있지? 귀이개는 이를 쑤시기에는 너무 무디고 이쑤시개는 귀를 후비기에 너무 날카로운가? 그게 어때서? 날카롭다고 귀를 후비지 못할 게 뭐가 있지? "윽!" 통증이 느껴졌다. 시험 삼아 이쑤시개를 조금 세워서 귀를 후비자 역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통증. 그것 때문에 이쑤시개로 귀를 후비면 안 되는 것일까? 하지만 안 될 게 뭐가 있지? 통증이 나쁠 게 뭐가 있지? 통증도 하나의 쾌감이 아닐까? 통증도 쾌감의 일종이 아닐까? 맞아! 통증도 쾌감이야! 나는 아예 이쑤시개 끝을 세워서 귀를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통증은 쾌감이다. 성냥개비로 귀를 후빌 때 느껴지는 그 시원하고 아련한 기분은 통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주를 처음 마실 때는 독하다고 캑캑거리던 사람이 나중에는 소주 없이는 못 사는 것처럼. 아마 그건 담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통을 쾌감이라고 생각하며 귀를 후비다 보니 점점 그 자극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쑤시개를 보다 깊이 넣어 안쪽 귀의 연한 살을 쑤시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바깥귀를 후빌 때보다 더 심했지만 그만큼 쾌감도 깊어지는 것 같았다.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몹시 즐겁다. 쾌감이 느껴진다. 원래 정신적 쾌감은 육체의 고통을 초월하는 법. 계속 쑤셔대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그것도 재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 고통에도 너무 빨리 익숙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쑤시개를 빼서 그것을 눈앞에 들어보았다. 이쑤시개는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귀를 쑤시는 것도 재미가 없다. 그럼 뭘 해야 하지? 귀보다 더 자극에 민감한 곳은? 귀보다 더 민감한 곳은…… 그래, 콧속이야! 점액질로 싸여있는 콧속. 언제나 축축하게 젖어있어 살이 매우 약한 곳. 기온의 변화에도 가장 민감한 곳. 나는 피로 물들어있는 이쑤시개를 콧구멍에 쑤셔 넣었다. "욱!" 순간 강한 충격이 엄습하면서 나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뒤로 뺐다. 이것은 자극이 아니라 충격이었다. 충격. "에에취!" 다음 순간 엄청난 공기의 폭주를 일으키면서 강렬한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머리카락으로 간질이기만 해도 재채기가 나오는데 이쑤시개로 쑤셨으니까. 콧속이 지끈거렸고 눈에서는 눈물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일이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단하는 자는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하는 중단하지 않는다. 누가 말했지? 음, 맞아. 박정희 대통령. 그래, 그건 정말 명언이었어. 난 중단하지 않는다. 난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과 고통을 견뎌내면서 콧구멍을 쑤셔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재채기가 터져 나왔지만 자극에 대한 나의 욕구는 중단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우에엣취!" 이번에도 급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재채기가 내 머리를 힘차게 전진시켰다. "억!" 그때 미처 후퇴하지 못한 이쑤시개는 콧속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그 고통은 보다 큰 것이어서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참아냈다. 그리고 나의 참을성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보다 더 강한 자극을 찾기 위해 계속 콧구멍 깊은 곳을 찾아 들어갔다. 문득 뜨거운 것이 내 콧속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인중을 지나 윗입술을 축축이 적시고 있었다. 혀를 내밀어 핥아보니 찝찝하고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내 피야. 나의 성스러운 피. 좋았어. 나는 계속 콧구멍을 쑤셔댔다. 재채기는 계속 터져 나왔지만 그것이 멈출 때까지 쑤셔댔다.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네가 먼저 지치는지 내가 먼저 지치는지. 나의 근성을 보여주마. 그렇게 고된 싸움은 계속되었고 결국 내가 그 싸움에서 콧구멍의 승복을 얻어냈을 때는 눈물과 콧물과 코피가 뒤범벅이 되어 내 얼굴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내 코에서 흐르는 피는 영광스런 투쟁의 성과물이며 눈에서 흐르는 물은 나의 벅찬 감동에 대한 물적 증거이다. 이제 콧속의 자극에도 익숙해졌다. 더 할 것이 없을까? 나는 보다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데 그것이 뭐지? 피와 콧물로 범벅이 된 이쑤시개를 들어 눈물로 범벅이 된 눈을 가물거리면서 바라보았다. 대답해라, 이쑤시개야. 너의 다음 목표는 어디지? 이제 어딜 가고 싶어? 어딜 쑤시고 싶어? 이쑤시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나의 마음속에 이심전심으로 이렇게 말했다. 눈. 그리고 지금 나는 거울 앞에 서있다. 이미 보이지 않는 한쪽 눈을 꼭 감고서 다른 한 눈으로 만족한 듯이 자랑스러운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는 안구 안쪽으로 그 주변의 약하디약한 살을 파헤치다가 마지막에는 그 자극도 만족하지 못해서 결국 안구를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을 때의 쾌감. 손가락으로 슬쩍 누르기만 해도 통증을 느끼는 안구를 이쑤시개로 마구 찔러댔을 때의 그 쾌감. 나는 아직도 그 쾌감을 잊지 못한다.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자극을 넘어선 극단적인 고통에 대한 나의 인내력, 그것이 놀랄 정도로 미덥다. 나는 한쪽 눈을 잃었지만 이 크나큰 보람은 그것을 보상하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다. 그리고 그 인내심에 대한 시험을 도와준 이쑤시개에 대해서는 죽도록 감사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끝인가? 이제 더 이상 찌를 데가 없단 말인가? 내게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줄 곳은 없단 말인가? 이빨? 그렇다고 들어 왔었다. 하지만, 사람의 이는 가장 큰 통증을 느끼는 곳이라고 하지만 이까짓 이쑤시개로 얼마나 큰 통증을 느낄 것인가? 귓속의 살보다 훨씬 고통에 강한 입 속의 살을 이제 와서 후벼댄들 무슨 즐거움이 있단 말인가? 이미 콧속과 눈알까지 파냈는데. 문득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눈을 들어 거울 속에 비친 내 이마를 바라보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귓속보다 여린 것이 콧속이고 콧속보다 약한 것이 눈이라면, 눈보다 부드러운 것은 무엇? 당연하지. 그것은 뇌였다. 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들었지만 부드러움에 있어서는 그 무엇이 비교를 할 수 있으랴.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내 눈은 어느새 책상 위의 전동공구에 가서 머물었다. 그 끝에 붙어있는 작은 원형 톱날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저 정도면 내 두개골을 충분히 뜯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눈을 전동공구에서 떼지 않은 채 말이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김치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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