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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은 가끔 가사 중에 과학적인 내용이 감성과 버무려져 있는 것들이 있다. 특히 이 <Contact>는, 김동률 1집에 있던 <Cosmos>와 더불어 우주 연작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Cosmos>가 일반적인 우주에 대한 신비한 느낌을 담아냈다면, 이 <Contact>는 연인이 사랑을 발전시키는 감정의 단계를 물리학에 비유해 풀어낸 노래다. 마침 당시에 닐 타이슨의 <코스모스> 다큐가 방영한 다음이기도 해서, <코스모스> 다큐를 본 사람이면 거기에 나오는 여러 가지 우주의 생성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정확하고 깊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천체물리학에 대해 조금 알면 더 재미있게 해석해 볼 여지가 있는 노래다. 그리고 내가 '답장'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소개하고 싶었다.
해석은 진지하게 읽지 말고 재미로 봐 주길.
이 노래가 시작되면 먼저 '너와 나'라는 개념이 있다. 너와 나는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그렇다면 '너와 나'는 누구인지 하는 질문이 생긴다. 노래의 마지막에 가면, 이 노래가 말하는 '너와 나'는 누구였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널 첨으로 스친 순간 절로 모든 시간이 멈췄고
-시간은 자신의 속도에 따라 결정된다. 속도는 시간당 위치 변화를 나타내는 물리량으로, 속도가 다르면 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시간이 멈추었다는 건, 내가 너를 스치면서 둘이 서로 이끌려 같은 속도로 운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둘의 시간은 같아지고, 둘의 운동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웠다면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서로 다른 궤도에서 돌던 이름 모를 별이 수억만 년 만에 만나는 순간
내 몸이 가벼워져 두 발끝은 어느새 떠오르고
-여기서는 둘이 어떻게 스치고 만났는지 자세하게 서술한다. '서로 다른 궤도에서 돌던 이름 모를 별'이 만나는 순간은 얼핏 들으면 '우리가 별 그 자체였나' 싶지만, 사실 둘이 만나게 된 한 사건에 불과하다. 거대한 천체에 작은 천체가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별' 즉 항성끼리 정확하게 부딪히는 일은 드물다. 부딪혀도 서로 중력에 이끌려 쌍성 궤도를 그리며 돌다가 충돌하게 된다. 이 사건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런 강력한 충돌의 결과는 다음 줄에 보이는데, '몸이 가벼워져'라는 건 중력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충돌의 결과 많은 질량이 폭발로 에너지화되어 사라졌고, 몸이 가벼워져 날아갔다는 뜻이다.
끝도 없는 어둠 속 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다시 깨어나
나를 더듬는 손길 그 하나만으로 살아 있다는 걸 난 알 수 있었지
-'별' 즉 항성끼리 충돌했는데 어둠 속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즉 두 별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의 큰 충돌이었던 셈이다. '소리도 없는 그곳'이라는 것은 소리를 전달할 매질이 없는 곳 즉 진공이라는 뜻이다. 소리는 대표적인 파동이다. 우주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곳에서 내 위치를 알 수 있으려면 누군가 나를 측정해야 한다. '나를 더듬는 손길'이라는 것은 네가 내 위치를 측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별이 충돌해 폭발함과 동시에 나는 우주로 튕겨져 나갔는데, 나와 같은 속도로 날아온 무언가와 조우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둘이 완벽하게 닿은 것은 아니라, 단순히 어떤 에너지에 의해서 서로를 알아채고 측정한 것으로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다.
춤추듯이 떠다니는 우릴 달의 뒷면이 비추고
-춤추듯이 떠다니고 있다는 말은 너와 내가 아주 작은 소립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양자역학에서는 '물질파'라고 해서, 모든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원자보다 큰 물질의 경우에는 파장이 너무 짧기 때문에 측정하기가 매우 힘드므로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파동이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양성자, 전자와 같은 소립자라면 양면성을 가지므로 춤추듯이 떠다니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를 달의 뒷면이 비춘다'라는 것에서, 우리가 달의 궤도 밖으로까지 튕겨나갔다는 걸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위성, 즉 달의 경우에는 '동주기자전'이라는 현상에 의해 모성의 자전과 위성의 공전 주기가 같아진다. 그래서 대부분 모성에서 보면 위성은 한쪽면만 바라보게 되고, 위성의 뒷면을 볼 수 있으려면 위성의 궤도 밖 까지 가야만 가능하다.
이대로 다 끝나버렸으면
우리 세상에선 이미 수천 년이 흘렀더라도
-이 가사 역시 우리 외의 세상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난 아무도 아니고 네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고
네가 나를 만지면 그 작은 울림에 쏜살같이 멀리 튕겨서
-어떤 기준도 측정 상대도 없는 곳에서 홀로 존재하면, 내가 누구인지 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이 부분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나타낸다. 실제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기 힘들다는 원리다. 운동하는 입자를 측정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에너지가 가해지게 되는데, 그 에너지는 입자의 위치나 운동을 달라지게 만든다. 내가 측정한 그 시간에는 이미 그 입자는 그 위치에 없거나, 운동량이 달라진다. 여기서 '너'라는 존재가 나를 측정하려 한다면, 나는 그것 때문에 존재한다는 의의가 생기지만 그것에 영향받아 내 운동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빛이 다른 공간에 한없이 떠돌다 타버릴지 몰라
-'빛이 다른 공간'이라는 것은 빛의 파장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빛의 파장이 달라진다는 건 에너지가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고, 온도의 변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내가 존재하는 평형상태의 에너지가 달라진다는 것은 내가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감마선 같은 고에너지 빛을 쬐면 내가 나의 상태가 아니라 다른 입자로의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널 놓치지 않게 나를 잡아 줘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은 '너'와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의미가 없던 세상에 나를 측정해서 의미를 부여해 준 너. 네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로 이끌리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둘 사이엔 어떤 끌림이 있다.
네가 나를 부르면 난 다시 태어나
너의 무엇으로 읽혀지고 또 다른 네가 되고
-네가 나를 측정한다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 있는 무엇이 된다는 뜻이며, 또 그것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네가 되고'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굉장히 닮은 무언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자이긴 한 것 같은데, 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릴 끌어당기는 그 어떤 법칙도 모두 거스른 채 하나가 될 거야
그렇게 우린 사라질 거야
-마지막 구절에 와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서로 끌리고 아주 닮은 두 입자가 만나 사라진다는 건 '입자'와 '반입자'가 쌍소멸 하는 것을 말한다. 반물질은 물질에서 전하가 다른 물질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전자는 (-) 전하를 띤다. 하지만 반전자는 (+) 전하를 띄고 있다. 이 두 입자는 쿨롱 법칙에 의해 서로 당기는데, 반물질끼리 만나면 감마선이 되어 에너지를 내며 사라져 버린다. 이것을 쌍소멸이라 한다. 두 반입자는 서로 모든 것이 같지만, 전하가 다르기 때문에 '또 다른 나'라는 말에도 해석이 들어맞는다.
즉 이 노래에서 말하는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전하를 가진 반입자이며, 두 별의 충돌로 인해 우주공간으로 튕겨져 나갔다가 만나게 되었고 결국 하나가 되어 감마선으로 사라져 버리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인 <Contact>는 '쌍소멸'이었다.
그럼 여기서 김동률의 <Contact>를 들어보자.
단, 이 헛소리는 다 잊어버리고 음악에 빠져보는 것이다.
출처 | https://brunch.co.kr/@casimov/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