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얌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목사이지만, 대학 다닐 때는 무섭고 안위가 걱정이 되어 데모 한번 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힘'의 매력에 빠져 메인스트림을 기웃기웃 거리며 비굴한 미소를 띄우고 싶은 유혹을 받는 상황이지만 그런 나 자신에 저항하며, 또한 메인스트림에 저항하는 마음으로 다시 올립니다.
- 오늘은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일! 그래서 다시한번 나의 진정성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다시 올립니다.
- 황까 언론, 마이 나빠요.
- 이전 기사와 중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신학용어 중에 '선지자적 회의주의'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듣든지 말든지 내가 해야 할 말은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아무리 외쳐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고 해서 '니 맘대로 하세요'라고 하지 않고, 사람을 보며 절망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외친다는 것이다. 한편, 도올은 사학법과 관련하여 오마이뉴스에 특별기고한 글에서 "난 요즈음 세간(世間)의 모든 쇄사에 침묵으로 일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말이 들릴 리도 없고, 들릴 수도 없고, 들려야 할 까닭도 없는 세태가 스스로의 관성에 의하여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도올이 말하는 '관성의 법칙'과 '선지자적 회의주의'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결국 후자를 선택하여 황까 언론에 대한 무모하면서도 도발적인 저항을 한다. 아울러 필부에 불과한 나의 저항(resistance)은 사람에 대한 관용(tolerance)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1. 애증(愛憎)의 마음으로 황까 언론 <오마이뉴스>를 황빠가 깐다.
<오마이뉴스> 소개란을 보며 내린 <오마이뉴스>의 정체성(identity)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오마이뉴스』라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컨셉(concept) 4)에는 이런 편집철학을 가지고 있다. 『편집철학으로 '열린 진보'를 추구한다. 우리사회의 진보를 추구해 나가되 생산성 있고 양심적인 보수를 찬양하고 비생산적이고 경직된 진보에 회초리를 대는 열린 자세를 갖는다….』캬∼! 이보다 더 멋진 말이 있는가? 나는 이 말 때문에 <오마이뉴스>에 매료되었고 덜컥 시민기자로 가입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 줄기세포 논란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태도를 보고 '사랑'이 '미움'으로 변이되는 내 감정에 나 스스로 혼란스러워 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오마이뉴스>, 그대는 스스로의 정체성(identity)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1-1. <오마이뉴스>의, <오마이뉴스>에 의한, <오마이뉴스>를 위한 <오마이뉴스>
분명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대들도 '전제'(premis)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 것이다. PD수첩의 모 PD가 '황우석 교수만 끓어 앉히면 된다'라고 했을 때, 나는 충격과 경악의 소름이 끼쳤다. 그러면서 나는 MBC의 전제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한 진위를 판가름하는 것은 하나의 구실이며, 실상은 '황우석 죽이기'를 목적과 전제로 삼고 있으며 논문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은 그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밖에 되지 않고, 동시에 비정상적인 권력을 가지게 되다보니 그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마키아벨리(목적을 위해 수단을 신성시)를 흠모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왜 <오마이뉴스>를 말하다가 MBC를 말하는가 하면, 그대에게서도 그 섬뜩한 '전제' 의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거? 황우석 교수에 대한 비판과 비방 일변도의 기사들,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국민들에 대한 비판 일변도의 기사들이 담긴 그대의 데이터 베이스가 그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판단에 따라 결국 내 나름대로 정의한 <오마이뉴스>의 정체성인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오마이뉴스』를 『오마이뉴스의, 오마이뉴스에 의한, 오마이뉴스를 위한 오마이뉴스』로 생각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스스로 수립한 자기 정체성을 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버린다는 것도 지성적 언론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구차한 변명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몰염치에 다름 아닐 터.
1-2. 닫힌 진보, 생산적이고 양심적인 보수에 회초리, 비생산적이고 경직된 진보를 찬양
그대는 편집 철학으로 '열린 진보', '생산성 있고 양심적인 보수를 찬양', '비생산적이고 경직된 진보에 회초리를 대는 열린 자세를 갖는다'고 하였다. 줄기세포 논란에 있어서 '열린 진보'가 되려면 황까에 귀를 기울임과 동시에 황빠에게도 귀를 기울여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황까가 되어 황 교수를 교주로 만들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생각없는 막가파식 애국주의자 내지 줄기교도로 만들었다. 이것은 '열린 진보'라는 철학을 스스로 버리고 '닫힌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생산적이고 양심적인 보수를 찬양하였는가? 한 가지 물어보자. 무척 멋있는 말 같은데, 그대는 도대체 누구를 생산적이고 양심적인 보수라고 생각하는가? 진실규명이라는 미명하에 백일하에 드러난 연구 논문 조작과 그에 따른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의 충격을 감내하고 관용과 사랑으로 과학자를 구하고 나라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산적이고 양심적인 보수인가? 아니면 처음에는 황우석 교수에게, 그 다음은 정부에게, 그 다음은 이미 그대가 적이라고 규정한 듯한 다른 언론사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정작 의혹의 눈초리와 단죄의 회초리를 들어야 할 반 황우석 라인에게는 분에 넘치는 관용을 베풀면서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산적이고 양심적인 보수인가? 그대의 철학대로 찬양을 해야 할 이들에게 도리어 회초리를 대며, 회초리를 대어야 할 이들을 오히려 찬양하고 있지는 않는가?
맺으면서,
'친구'라는 영화 중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정말 고마해라. 황우석 교수 마이 무따 아이가? 이젠 황우석 교수팀을 살리고 상처난 국민들의 마음을 감싸는데 힘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요구가 섞인 질문을 하나 하고 마치려고 한다. 벌써 몇 달이 흘러버렸는데, 그대는 대구 술집의 한 여성에게 쌍욕을 한 주 모 의원과 야무지게 싸워 그를 정치계에서 축출시키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었었다. 그 사건 역시 음모다 뭐다 하다가 그대는 결국 그 주 모 의원을 고발했다고 하던데, 진행 중인가? 여전히 그가 국회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오마이뉴스>가 정치적 타협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마이뉴스! 열린 진보와 생산적인 보수주의자들을 위해 소위 끗발 있는 비생산적이고 비양심적인 사람들, 힘 없는 자들 등골 빼먹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파이터(fighter)가 되어 주지 않겠는가? 오마이뉴스! 사랑으로 시작해서 미움이 생긴 지금, 그 미움을 넘어 정이 쌓이는 <오마이뉴스>가 되시라!
2. 분노와 연민으로 황까 언론 MBC를 황빠가 깐다.
처음엔 언론, 특히 방송언론의 덕분(?)으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작이며, 공중에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연구인 줄 알았다(참고-나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다. 다만 한 두 다리 건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데 또 언론의 덕분(?)으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언론이 처음에 먹여준 약발이 너무 세서 두 번째 보도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언론에 대한 미움을 넘어 분노가 생겼고 이제는 연민의 생각까지 든다. 나의 이 연민을 MBC 관계자들이 보면 아마 자존심이 많이 상할 터.
2-1. MBC는 스스로 공영방송이라고 하지 말라.
나는 무식하게도 MBC가 민영(상업)방송인 줄 알았다. 그런데 MBC도 공영방송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본 결과, "운영은 전적으로 광고료에 의존하기 때문에 업무면에서는 상업방송이나, 주식의 70%를 공영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소유하고 나머지 30%는 정수장학회에서 소유하고 있으므로 법적 측면에서는 공영방송에 속한다."
이렇게 MBC 역시 KBS와 함께 공영방송에 속하기 때문에 기업의 광고료 뿐만 아니고 방송법에 따라 우리(국민)들의 피땀어린 돈도 사용하고 있다. 황 교수팀에서 김선종 연구원에게 보낸 돈을 물고 늘어졌기 때문에 나도 치사하지만 돈 물고 늘어져 본다. 공영방송은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행하는 방송'이라고 하는데, 이번 황우석 교수 건과 관련한 행태는 그대들이 아무리 언론 본연의 사명인 진실 추구 어쩌구 저쩌구 해도 '공공의 복리'를 꾀하기는커녕 도리어 '공공의 복리'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방송발전기금도 받지 말고 시청료를 받더라도 엠빠들에게만 시청료를 받고 공영방송 운운하지도 말라.
2-2. 황 교수가 윤리 위반하면 스캔들이고 MBC가 윤리 위반하면 로맨스인가?
처음 PD 수첩이 문제 삼은 황 교수의 윤리 위반 문제와 그대들의 취재 윤리 위반 문제를 칸트의 정언명령에 나타난 윤리 개념을 가지고 좀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 모든 사람, 모든 나라를 만족시키는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한 윤리가 있을까? 약자와 강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윤리가 있을까? 오히려 윤리야말로 '힘의 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스캔들인 것이 현실 아닌가?
그런데, 황우석 교수가 연구윤리를 위반하면 잘못했다고 사과해도 죽어야 하고, 그대가 취재윤리 위반하면 괜찮거나 솜방망이 징계를 받고 다시 의기양양하게 '하던 일' 계속하는 이 촌극이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왜 황우석 교수는 '하던 일' 계속하면 안 되는가?
이 진술에 대해 서프의 어떤 사람은 그것은 '별개의 사안'이며, '법관이 완전무결해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맞는 말들이다. 그러나 법관은 범죄자와 당사자의 관계가 아니지만, PD수첩과 황우석 교수팀은 당사자의 관계이다. 그런 점에서 MBC는 윤리 적용에 있어서 '너'와 '나'를 만족시켜야 하는 정언명령을 수행하지 못하였으며, 사과했다고는 하지만 사과가 안 되는 모순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따라서 황우석 교수가 윤리 위반을 이유로 학계에서 매장을 당해야 한다면, 취재윤리를 위반한 MBC는 언론계에서 매장을 당해야 할 것이고, 만약 그들이 살아야 된다면 황우석 교수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공평한 게임 혹은 제로섬게임(zero sum game)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MBC는 펄펄 살아있고 황우석 교수는 거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이 그대를 죽이기 전에 그대 스스로 죽어야 한다. 그러면 황빠가 황우석 교수를 살리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쏟듯이 그대를 살리기 위해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2-3. 범죄적 실수를 넘어 의도적 범죄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MBC
황우석 교수는 연구 결과에 대해 '인위적 실수'를 했다고 고백하며 학자의 명예와 자존심을 깨끗이 포기하고 사과를 하였지만, 그대는 범죄적 실수를 하고도 사과는커녕, 때린 곳 또 때리는 잔인한 조폭 마냥 '범죄의 재구성'을 하였다. 네티즌들이 밝혀낸 노성일 인터뷰 건에 대한 영상이나 이메일 건에 대한 조작 여부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알겠다. 한, 최 PD는 황우석 교수가 조작을 하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분노를 나타냈었는데, 나 황빠는 그대들의 분노하는 똑 같은 이유에다가 괘씸죄를 더하여 분노한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의 조작-거짓말과 그대들의 조작-거짓말은 차원이 다르다. 황우석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조작과 거짓말을 하도록 등 떼밀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적극적으로 악랄한 조작을 하였다. 그리고 그대들은 네티즌들의 조작의혹에 대해 '단순오류'라는 '웃기는 변명'을 한다. 결국, MBC 그대는 이번 황우석 교수 건과 관련하여 범죄적 실수를 넘어 '범죄적인' 범죄의 재구성을 하였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황빠와 국민들을 우롱하지 말라.
2-4. 결과주의와 성과주의에 빠진 MBC, 그리고 그 오만방자함
그대는 황우석 교수가 결과주의와 성과주의에 사로잡혀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와 똑같이, 아니 더 어리석게 그대도 결과주의와 성과주의에 빠졌다.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면 한 PD가 김선종을 인터뷰하면서 '황우석 교수만 끌어 앉히면 된다'하면서 검찰 운운 구속 운운할 수가 없다. 이런 말이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옛 조상들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음을 절감한다.
MBC, 그대에게 한번 물어보자. 그대가 윤리 제정자이며 법 제정자인가?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했는데, 오늘날 MBC 그대가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하는 것 같다. 황빠는 그대의 그런 지독한 독선과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오만에 저항하는 것이다. 독재권력에 저항했던 그대들이 이제 황빠(국민)의 저항을 받는 기분은 어떤가? 독재권력에 하였던 언론의 저항은 자랑거리지만 황빠(=국민-국민의 2/3 이상이 황 교수의 연구 재개를 원함으로)의 저항을 받는 언론은 세계언론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치라는 것을 아는가? 그것도 모르면서 황우석 교수가 우리나라를 국제적으로 망신시켰다고 하는 그대에게 분노를 넘어 연민을 느낀다.
2-5. 너무나도 '정치적인' 황까 언론
그대들은 황우석 교수가 너무나 정치적이라고 했다. 이런 말이 있다. 뭐 눈엔 뭐 밖에 안 보인다고. 그대들이 너무나 정치적이기 때문에 남들도 다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대들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그대들의 선배들을 보니 언론인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다음에는 어김없이 정치판으로 들어가서 정치꾼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그대들도 정치계의 데뷔를 꿈꾸고 있지 않은가?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만 더 하자. 그대들도 정치적이고 나도 모든 국민도 정치적이다. 그럼 왜 황우석 교수는 정치적이면 안 되는가? 또 그대들은 황우석 교수가 언론 플레이에 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대들의 언론 플레이에서는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황우석 교수의 언론 플레이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동을 받게 되고, 그는 애써 눈물을 참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황빠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남자의 눈물에서 뜨거운 눈물을 뽑기가 쉬운가? 그런 우리에 대해 그대들이 '어리석은 황빠들'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황빠는 그대들의 그 비아냥거림이 저항의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맺으면서,
MBC를 비롯한 황까 언론 모두에게 말한다. 세계가 한국 언론을 향해 '잘했다' 칭찬한다면서? 그대들은 그 말에 어깨가 으쓱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웃으면서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속으로는 '멍청한 것들' 하고 비웃지 않을까 하고.
한 마디 더, 진실 추구는 그 추구하는 것에 대한 '솔직함'을 담보로 할 때, 진실의 빛이 도드라지는 것이다. 황빠는 진실을 추구하는 그대의 '솔직함'을 의심하기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은 오마이뉴스이건 MBC이건 기타 황까 언론이건 간에 닫힌 진보가 아닌 진정한 열린 진보를, 차갑고 메마른 진보가 아닌 따뜻하고 기름진 감성을 지닌 진보가 되기를 바래본다.
- 덧 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되었으나 생나무 처리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그릇인지, 얼마나 '열린 진보'인지를 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