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이는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 체육시험이 걱정되서 책의 내용이 들어오지가 않았다. 특별히 체육 성적이 걱정되는 건 아니지만 반 아이들이 다 보는 데서 형편없는 실력을 보이는게 문제였다. 그런데 문득 책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신체는 위급한 순간에 엄청난 힘을 낸다. 다만 그런 힘은 몸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평상시엔 쓰지 못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만약 자기 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만 있다면 무리가 가더라도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민석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몸에 힘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집에 있는 온갖 무거운 물건들로 실험해보았다. 그러나 별 차이는 없었다. 애초에 그게 마음대로 되면 올림픽 신기록은 예전에 다 깨졌을 것이다. 결국 그는 체육시험을 형편없이 치뤘다. 그러나 민석이는 오기가 생겼다. 정말 이게 마음대로만 되면 그는 초능력이나 다름없는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매일같이 온갖 방법으로 연습했다. 하지만 그저 근육이 붙어서 힘이 늘어날 뿐, 뭔가 초인적인 힘은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사고가 났다. 방바닥에 벗어놓은 양말을 밟고 그만 미끄러져버린 것이다. 민석이는 머리를 의자에 세게 부딫히고 기절해버렸다.
잠시 뒤 민석이는 가까스로 깨어났다. 머리가 윙윙 울리고 깨질듯이 아팠다. 시계를 보니 그는 세시간이나 기절해있었다. 만약 뇌진탕이 심했다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 부모님은 두분 다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시기 때문이다. 이미 학원은 삼십분이나 늦었기에, 민석이는 그냥 아팠다고 하고 빠지기로 했다. 머리는 조금 쉬니까 괜찮은 것 같았다.
민석이가 자기 몸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시간 뒤였다. 집에 있는 가장 무거운 물건 중 하나인, 평상시엔 온갖 용을 써도 꿈쩍도 안하던 아버지의 개인금고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건가?
그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스톱와치를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학교에 늦었을 때 뛰어가면서 시간을 재 보면 약 5분 정도가 걸렸다. 그는 달리면서 자기 몸이 달라진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귓가에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게 느껴진 것이다. 학교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2분이 채 안됬다. 민석이는 자기가 초능력을 얻었음을 확신하고 뛸듯이 기뻐했다.
"거짓말 하지마. 그런 게 가능하냐." 민석이의 친구 혁수가 말했다. 둘은 학원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냥 니가 평소에 운동 열심히 해서 쎄고 빨라진 거겠지." "아니라니까. 진짜 나 달리는 거 보면 모르겠냐." "하긴 보니까 되게 빠르게 뛰긴 하더라." "내가 말했잖아. 이건 진짜 초능력이라니까. 머리를 부딫혔을 때 얻은 것같아." 혁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그는 이야기하면서 떨어뜨린 펜을 주울려고 고개를 숙였다.
"으악!" 갑자기 혁수는 비명을 질렀다. "왜그래?" "너... 다리! 멍투성이야!" "뭐?" 민석이는 자기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반바지 아래로 그의 다리 이곳저곳엔 정말로 얼룩덜룩 피멍이 잔뜩 들어있었다. "왜이래 이거?! 뭐 묻은건가? 나 어디 부딫힌 적 없는데?!" "야... 그거 아냐? 니가 너무 몸을 무리하게 써서 부작용..." 그 말을 듣는 순간 민석이는 퍼뜩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다만 그런 힘은 몸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평상시엔 쓰지 못한다.' "민석이... 너 병원 가봐라. 힘들 것 같으면 내가 업어줄께. 이거 진짜 문제있는 거야." "아니야. 괜찮아. 상관없어. 이건 그냥 내가 너무 무리하게 많이 써서 그런거야... 그냥 앞으론 너무 자주 쓰지만 않으면 돼..." 혁수는 민석이의 몸이 정말로 이상해졌다고 느꼈지만 민석이는 끝까지 별일 없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추석이 되었다. 혁수의 부모님은 할아버지댁에 갔다. 혁수는 다음 주가 시험이라 가지 않았다. 한참 게임을 하는 중, 갑자기 민석이에게 전화가 왔다. 민석이는 도와달라고 말하며 울고 있었다.
몇십분 뒤 혁수는 민석이의 집에 도착했다. 아마 민석이의 가족도 할아버지 댁에 가서 혁수에게 연락한 걸것이다. 민석이가 가까스로 인터폰으로 문을 열어주자 혁수는 바로 뛰어들어갔다. 민석이는 눈물콧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움켜쥐고 쇼파에 주저앉아있었다. 옆에는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 혁수는 뭐가 문젠지 알 수가 없었다. 민석이의 다리는 이미 다 나아 있었다. 얼굴은 울상이지만, 특별히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야... 혁수야... 어떡하냐..." "왜, 왜그래. 너 뭐 문제있어?" "나... 진짜... 내 몸이 이상해졌어... 초능력이 아니야 이건..." "진정하고 야 무슨 일인데!" "내가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했잖아... 그게 아니었어..."
민석이는 침을 삼키고 말했다. "내가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제어장치가 고장났던 거야!" 민석이는 부자연스럽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너... 그게 무슨..." "처음엔 부작용도 신경안쓰고 엄청나게 힘이 강해진게 단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냐. 내 몸이 스스로 제어를 하는 기능이 사라진 거였어. 그래서 근육이 손상되든 말든 엄청난 힘을 생각대로 쓸 수 있었던 거야. 근데 그게 갈수록 심해졌어." 민석이는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눈물이 뚝 멈춘 것 같았다. "내 몸의 작동과정을 다 내가 조절해야 해... 밥먹은 걸 소화하는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됬어. 난 소화과정 같은 것도 제대로 모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몰라. 처음부터 통증도 제대로 느껴지지가 않았어! 게다가 이젠 숨쉬는 것도 내가 억지로 쉬어야 해!"
민석이의 숨이 비정상적으로 거칠어졌다. 그러면서도 말을 똑바로 하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혁수는 충격을 받아서 꿈쩍도 하질 못했다. "심장도! 지금은 아직 심하지 않은데 심장도 이젠 내가 뛰도록 신경써야해! 이 상태라면 나중엔 잠도 제대로 못잘거야! 그때 머리를 부딫혔을 때, 내 몸을 알아서 움직이는 기능이 고장이 났나봐... 이대로는 어떻게 해야... 숨도... 눈 깜빡이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해야 해... 거기다... 진짜 X발 이거 병원도 어쩌라고... 근데이새끼야듣고있는거야!" 순간 민석이의 오른손이 혁수의 턱을 가격했다. 제어가 되지 않는 민석이의 팔 힘은 무시무시했다.
"퍼억!" 엄청난 힘에 혁수의 목이 꺾여버렸다. 베란다 유리창엔 혁수의 피와 이빨이 우수수 튀었다. 혁수의 턱이 박살나면서 민석이의 손가락 관절도 전부 박살났다. "으억... 혁수야..." 민석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순간적으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우두커니 서서 듣고만 있는 혁수가 괘씸해보여 자기도 모르게 때려버린 것이다. 혁수는 땅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혁수의 왼쪽 눈은 눈구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바닥과 유리창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악...어그억...으어..." 민석이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다. 더이상 생각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양 손으로 자기 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