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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 너는 나의 여름
게시물ID : readers_192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5
조회수 : 81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4/14 18:03:59

너는 나의 여름

 

가지 말라는 소리도 없이 나를 붙잡는 아이는 나의 막내 동생이었다. 여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팔에 달라붙는 동생의 손을 매번 내쳤던 것을 기억한다. 해가 져도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나는 모든 것에 그런 날씨와 멈추지 않는 내 땀을 탓했다. 그 순간 동생을 버리고 싶었던 이유는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름이라는 계절 때문이었고 아버지를 닮아 땀이 많이 나는 내 체질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봄과 가을이 사라질 것이라 들었다. 그것 참 다행이다. 여름이 끝나자마자 찾아오는 겨울은 더 매력적일 것이다. 내 이름은 여름이다. 오 여름.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내 밑으론 동생이 셋이나 있다. 모두 다 남자다. 그리고 나는 장녀다. 녀석들의 이름은 가을, 겨울, 봄이 아니다. 첫째 동생은 재우, 둘째 동생은 세준 그리고 막내 동생은 하진이다. 성은 다르다. 그들은씨가 아니라씨다. 새아버지가 데려온 아이들은 아니고 그가 내 어머니와 함께 낳은 자식들이다. 내 처지는 항상 이런 식으로 우습다. 동생들이 새아버지가 데려온 아이들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와 피가 반만 닮은 나이 어린 동생들을 사랑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러니 점점 불러오는 어머니의 배를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불쌍해지려는 표정을 감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 얼굴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담아낸다. 그리고 나는 굳이 그것을 막지 않는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동생들의 얼굴은 나와 닮은 점이 많았다. 사람들은 우리 네 남매를 볼 때마다 동생들이 모두 누나를 닮았다며 하하호호거렸다. 옆에 있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말을 참아내는 게 가장 힘이 들었다. 어째서 동생들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거울 앞에 서면 유독 내 입가의 점이 못나 보였다. 동생들은 하나같이 다 입가에 점을 달고 있었다. 나는 왼쪽, 재우는 오른쪽, 세준도 오른쪽 그리고 하진은 왼쪽. 이것은 혹시 저주가 아닐까, 유치한 생각도 해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이 점을 없애려 한다면 큰 벌을 받게 될 것만 같았다. 때문에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나의 입가에도, 그리고 동생들의 입가에도 말이다. 지저분하게 밥을 먹는 막내의 입 주변엔 밥알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진정 두려운 건 점 따위가 아니라 밥풀 하나 떼어내 줄 수 없는 내 손이었다.

하진이는 형들보다 누나가 훨씬 좋아. 빤한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그가 날 좋아할만한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동생들에게 따뜻한 누나도 아니었고 반대로 엄한 누나도 아니었다. 나의 무관심은 세 명에게 다 공평하게 나누어졌다. 막내는 그 무관심 속에서 무엇을 찾아낸 걸까. 설마 그 무엇은 녀석이 내게 지어주는 커다란 미소와 닮은 것일까. 그는 유독 나에게만 그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자신의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짓던 미소.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를 보며 짓던 미소. 그리고 그 미소들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바싹 마른 허수아비였다. 막내의 미소는 진정 거대했다.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직장에 다니셨다. 때문에 동생들의 점심과 간혹 저녁을 챙겨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동생들은 내가 차려주는 음식에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반찬투정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와 그들의 사이를 더욱 벌려놓았다. 그것은 불편함이었다. 옆에 싫은 사람이 앉아도 다른 자리가 없으니 내색 하지 못하는 그런 불편함. 그러기에 인내해야 하는 침묵. 우리들은 그런 것을 다 어디에서 배우는 걸까. 나는 부러 항상 똑같은 밥상을 차렸다. 그들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고 나 자신을 비웃어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 녀석 모두 밥을 남기는 일은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막내는 언제나 그렇게 말하며 꾸벅 인사를 한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입 안에 든 음식을 조금 더 천천히 씹을 뿐이다. 우리 네 남매 중 가장 늦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은 바로 나다. 재우와 세준은 자신의 밥그릇을 비우면 그것을 싱크대에 넣고 물로 채운다. 그러고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계속 식사를 한다. 잠시 후 들릴 두 개의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순간이건만 나는 아직도 나의 감정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몰랐다. 여태껏 비워지지 않은 내 밥그릇에어야 할지 그게 아니면 텅 빈 다섯 개의 의자에어야 할지 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그것은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도 같았다. 나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자마자 허겁지겁 남은 음식을 해치웠다.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언제부터였는지 거실 바닥에서 막내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녀석의 작은 머리통은 커다란 흰 종이를 가리지 못 했다. 거기엔 여섯 개의 얼굴이 나란히 있었다. 그는 이제 막 그 얼굴에 눈코입을 그리려던 참이었는지 검은색 크레파스를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차근차근 빈 얼굴들을 웃음으로 채워갔다. 나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바랐다. 적어도 그 여섯 개의 얼굴 중 하나만큼을 웃고 있지 않기를 말이다. 빈 얼굴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막내는 아직도 예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가 채울 마지막 얼굴을 보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막내가 보여주는 미소들이 나의 뒤를 쫓았다. 나도 모르게 방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오후 일곱 시 반. 부모님께서 퇴근을 하고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저녁을 차리시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그동안 안방 욕실에서 샤워를 하셨다. 고기 굽는 냄새가 방 안까지 흘러들어 왔다. 어머니는 고기를 잘 드시지 않는다. 나도 그런 그녀를 닮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새 아버지는 고기를 정말 좋아하셨다. 동생들은 고기가 있는 날이면 자기가 더 먹겠다고 서로 싸울 정도였다. 여섯 명이 모두 모인 저녁 식탁은 점심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네모진 식탁이 둥그렇게 변하고 썰렁하기만 했던 공간이 갑갑해진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모른 체 할 뿐이다.

나는 고기를 단 한 점도 집어 먹지 않았다. 그것을 누군가가 알아차려주길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다. 이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작은 것 하나씩을 포기해나가야 하는 힘겨움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수저를 내렸다. 벌써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배는 부르지 않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름아, 밥 다 먹었으면 나가서 고기 좀 더 사올래? 아마도 부족한 것 같다.”

“뭐로 사올까요?” 내가 물었다.

“글쎄. 너희들 뭐가 더 먹고 싶어? 당신은요?”

“엄마, 난 차돌박이.”

“나도 차돌박이!”

“허허. 그럼 차돌박이로 하지.”

어머니가 내게 차돌박이를 더 사오라 말씀을 꺼내기도 전에 현관으로 향했다. 그녀가 식탁에서여름아, 돈 챙겨야지!’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돈은 이미 챙긴 후였다. 운동화를 신을까 샌들을 신을까 하다가 샌들을 꺼내 신었다. 열 발가락을 찬찬히 보자니 점을 하나 발견했다. 오른쪽. 검지 발가락이었다. 이것은 또 언제 생긴 것일까.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옆에 슬리퍼를 신은 작은 발가락 열 개가 나타났다. 막내였다.

“누나, 나도 같이 갈래.” 나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내는 나를 따라 대문을 나섰다.

 

고기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육점은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다. 막내는 집을 나설 때부터 아무 말도 없이 내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녀석의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끊임없이. 나는 왠지 그 소리가 짜증이 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녀석이 바로 내 옆까지 달려왔다. 그러고는 내 손을 맞잡지는 못하고 내 팔을 잡았다. 그는 수십 번 고민한 끝에서야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동생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니까. 나는 그따위 생각을 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 손을 내쳤다. 그때 동생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표정들이 있다. 그는 분명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시무룩한 표정. 슬픈 표정. 누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것이 내 화를 돋웠다. 한번 떨어진 손이 다시 내 팔을 잡았다. 나는 또 그 손을 내쳤다. 똑같은 행동들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나는 끝내 녀석의 손을 내치고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고기가 담긴 봉지를 꽉 쥐고서. 뒤에서부터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마란 말이야. 그리고 슬리퍼 소리가 멈췄다.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조금 후에야 달리던 것을 멈췄다. 헉헉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막내가 맨발로 뛰어오고 있었다. 저 뒤에 벗겨진 슬리퍼가 뒹구는 게 보였다.

나는 제자리에 서있었다. 막내의 맨발이 아닌 그의 슬리퍼를 응시하며. 막내의 맨발을 볼 자신이 없었기에. 그리고 그가 나를 대신해 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사이가 좁혀졌다. 

“미안해 누나.” 막내가 먼저 입을 땠다.

“뭐가 미안한데?” 내 속은 배배 꼬여있었다.

“누나.”

“말 해봐. 뭐가 미안한 건지.”

“다 미안해 누나.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의 손이 아까처럼 내 팔을 잡았다. 우리 두 사람의 땀이 맞닿은 피부 위에서 서로 엉켜지고 하나가 되었다. 불쾌했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잖아. 이거 놔.” 나는 작은 손이 붙잡는 팔을 흔들었다. 매미를 떨어뜨리려는 나무처럼. 하지만 매미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네가 뭘 알아?” 나무는 사실은 매미가 무서워 몸을 떠는 것일지도 모른다.

“네가 뭘 아냐고?” 소리를 질렀다. 막내에게. 동생들에게. 부모님에게. 지금 날 울고 싶게 만드는 모든 것에게. 하지만 막내는 나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앞으로는 입에 케첩 묻히지 않을게. 밥 흘리지 않고 깨끗이 먹을게.” 그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밥 다 먹어도 누나가 다 먹을 때까지 식탁에 있을게.” 나는 궁금했다.

“누나 얼굴 허락 없이 그리지 않을게.” 너는 어째서

“누나가 제일 좋다고 하지 않을게.” 울음을

“누나. 누나. 미안해. 정말 미안해.” 참고 있는 것일까.

막내는 다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부모님의 핸드폰 번호도, 내가 한 번도 가출 따위는 한 적 없는 겁 많은 여자아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런 내가 매 순간 어떤 표정을 무슨 뜻으로 짓는지도 말이다. 나는 바보였다. 그가 나를 향해 웃으니까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잘 먹었다는 인사와 크레파스와 그리고 미소를 조금만 들여다보자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계속 땀이 났다. 몸은 무거웠다. 하지만 견딜 수 있을 만 했다.

“슬리퍼 가져 와.” 갑자기 들린 내 목소리에 녀석이 움찔했다. 그리고 고민을 하는 듯싶었다. 저 뒤에 있는 슬리퍼를 가지고 오려면 내 팔을 놔야 하는데, 그리 하기가 싫은 것이다.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빨리 가져 와.”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잠시 후 그가 천천히 내 팔에서 손을 뗐고 몸을 돌렸다. 전속력을 다해 뛰어 갔다 올 줄 알았건만 녀석은 다시 천천히 뚜벅뚜벅 슬리퍼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건지, 그것을 신지도 않고 손에 들고서는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녀석의 손에서 슬리퍼를 빼앗아 들고 그에게 등을 보이며 쭈그려 앉았다.     

“업혀.” 막내는 머뭇거렸다.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잡았을 때 문득 동생을 이렇게 업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이렇게나 작고 가볍구나.

   누나.”

“응.”

“고기 상했으면 어떡하지?”

“괜찮아.”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겠다.”

“괜찮아.”

“응.”

막내는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가슴을 내 등에 더 가까이 두었다.

 

눈이 따가웠다. 입으로 흘러들어 온 무엇에서는 짠 맛이 났다. 땀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땀을 계속 뻘뻘 흘렸다. 이제껏 참고 있었던 모든 것을 쏟아내듯이. 등 뒤에서도 짠 냄새가 났다. 분명 여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멈추지 않는 땀에 여름을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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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서 따로 올립니다. 3년 전에 쓴 단편입니다. 저희 학교에서 해마다 열리는 단편 대회에도 낸 적이 있는데 (외국이라 번역본을 냈어요), 최종 10인 안에 들어서 엄청 뿌듯했던 게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아버지께 보여드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엄청 떨렸었죠). 읽어 보시곤 제게 "이런 감정은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좀 힘들지 않을까?" 하시더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제가 자란 나라에서는 이혼, 재혼이 빈번해서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상처를 아예 받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비평, 의견도 감사히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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