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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눌린 썰
게시물ID : humordata_19282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식당노동자
추천 : 9
조회수 : 118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11/13 11:45:24
행주산성 산골짜기 깊숙한 곳 초입에,
형님의 작은 사무실이 있다. 차가 없으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인데 이유인즉 너무 외지다보니
택시기사를 불러봐야 오지도 않고, 온다 한들
사뭇 기분나쁜 표정으로 '내가 왜 택시를 세웠을까'
하는 후회가 온몸으로 느껴지는게 보일 정도로
가기 꺼려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낮에는 꽤 운치있는 곳이다.
무성한 수풀 사이에 얼기설기 지어진 작업장과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창고, 담쟁이와 늙은호박이
뒤엉켜 하우스 지붕을 전부 가려버린 탓에 하우스는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고 다만 담쟁이와 늙은호박
더미를 파내고 만든 집처럼 보인다.

동네 개와 고양이 심지어 닭도 몇마리 돌아다닌다.
그곳에서 동물들은 서로 그냥저냥 물건보듯 서로
신경도 안쓰는데 다만 사람에게만큼은 친절하다.

나는 그곳을 매우 좋아한다.


한번은 그곳에서 밤에 모여 바베큐를 한 적이 있었다.
낮에는 꽤 운치있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밤에는 화장실
한번 가려면 랜턴을 들고 다녀야 할 정도로 깜깜하다.
낮에 밟던 운치있는 나뭇가지소리는 내가 나뭇가지가
아닌 뭘 밟은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소름돋는다.
다정하던 동물들의 빛에 반사된 눈이 괴물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그렇다고는 해도 다들 모여 바베큐를 하고 있으니
그냥 정취있는 시골 모임처럼 다소 편안하다.

나는 이날 시간이 늦어져 택시도 버스도 잡을 수 없었다.
차를 가져왔지만 술을 많이 마셔서 대리를 부를래도
외진곳까지 올 대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하우스 주인이던
형님이 이왕 이렇게 된거 다같이 자고가라고 했는데,
다들 어떻게든 집에 간다고 하고는 가버리고 나만 남게
되었다.

나는 다들 떠난 그 난장판을 형과 함께 치우고 형은
다른 하우스에서 잠들고 나는 그 하우스에 남아 이불을
폈다. 그리고 잠들었다. 그게 새벽 세시 반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어느순간 몸이 무거워졌다.
몸을 뒤척이려고 했는데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위인 것 같았다. 예전에도 가위는 많이 눌려봤기에
별스럽지 않게 느껴졌는데 자박자박 하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겨...."

선명한 소리, 나이든 남자 목소리였는데 내가 잠에서
깨려고 하자 갑자기 한번 더 가벼운 무게감이 날 덮쳤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겨..."


무슨 말이지? 뭘 말하고 싶은거지? 몸이 더 무거워졌다.
발자국 소리가 한번 더 들리고 이번에는 여자목소리가
들렸다.


"....겨...."


나는 어떻게든 잠에서 깨야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날 깨우던 목소리가 조금 더 생생하게
들려왔다.


"...낼겨..."


그러자 여자목소리로 또,


"...아녀...."


나는 너무 소름돋는 그 목소리에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 벌떡 일어났다.






"여관비 낼겨? 얼마낼겨? 왜 안일어나는겨?"


새벽부터 작업하러 나오신 형님 아버님이였다.


"뒤진거 아닌가 했는디 살아있냐. 몇시까지 마신겨?"


아버님을 차에 태우고 오신 어머님이였다.
아버님이 크게 들숨을 하시더니,


"이불은 왜 걷어찬겨. 금강불괴여? 얼어 뒤지면
여기 파묻어버릴라니까 알아서 혀."


몸이 무거운건 이불을 세겹으로 덮어주신 어머님이였고,


밖에 왁자지껄한 소리는 작업나온 인부아저씨들이였고,


"근데 아버님 아까 뭐라고 하신거에요...?"


아버님은 더 자 하고 나가려다가 멈추더니 중얼거리며
나갔다.


"여관비 얼마낼거냐고 물어봤는디 젊은놈이 가는귀가
오늘내일 해는겨...."

같이 나가던 어머님이 거들었다.

"애는 착혀... 내비둬..."


쪽팔려서 차라리 가위였으면 좋겠다 싶은 새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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