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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에 얽힌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
게시물ID : readers_192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12
조회수 : 848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04/19 16:41:55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본 작은 서점에서 나보코프의 <롤리타> 원문을 보고 덜컥 사버렸던 적이 있다. 함께 산 책 중에는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그리고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 권 모두 끝까지 읽지 못했다. 첫 몇 장만 읽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롤리타>는 몇 장도 아니었고 첫 몇 줄이 전부였다.

 

이민을 오고 처음으로 한국에 가는 비행기에 홀로 올라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대충 챙겼던 책이 하필이면 <롤리타>였다. 읽지도 못할 글을 도착지까지 계속 옆에 두고 있어야 한다니,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보고 옆자리의 아주머니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놀랍게도 한국 분이셨고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신 분이셨다. 어린 학생이 <롤리타>를 갖고 있어서 말을 건 거라 하셨다. 하지만 비행시간 내내 우리는 책이나 나보코프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누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아들을 끝끝내 설득해 의대를 가게 했다며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셨다. 그 말에 나는 좋지 않았던 예감이 들어맞는 걸 느꼈다.

 

한국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정확히는 아버지께)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내게 아버지는 큰 한숨을 딱 한 번 쉬셨다. 몇 달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 그 숨소리에 무너졌다. 나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뭐라 말을 했어야 했는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아버지가 바라시던 대학의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는 모습에 비행기에서 만났던 아주머니의 아들분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었다. 그분은 지금쯤 좋은 의사가 되셨는지 모르겠다.

 

다시 몇 년이 지났다. 그 몇 년 동안 자퇴를 했고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도 버렸다. 그냥 글이 쓰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교를 두 번 옮겼고 과를 여러 번 바꿔 치웠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하고 싶다는 마음을 접어버린 문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선. 포크너의 두 책은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롤리타>는 처리를 하지 못한 채 계속 책장에 두었다. 그리고 바로 몇 달 전 <롤리타>를 다 읽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읽는 게 즐거웠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문장들이 있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소설 속에서 심리분석학을 향한 조소를 발견할 때마다 문학분석에 대한 내 심정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씩 문학을 공부하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롭다. 글을 분석할 때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책을 읽고 겪은 감정들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매번 책을 읽으며 느끼는 건 내 글을 쓰고 싶다였지 이 글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고 싶다가 아니었다. 아무튼, 좋지 않은 점수의 에세이를 돌려받을 때면 바보같이 안심이 들기도 한다. 빨리 졸업을 했으면 좋겠다.

 

책에 에세이를 쓰기 위해 붙여두었던 메모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다 떼어버렸다. 방학이 되면 한 번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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