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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하면서 본 제일 jot같았던 사건
게시물ID : humordata_19292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가가
추천 : 12
조회수 : 2106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21/11/23 09: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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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개입으로 북진통일이 좌절되고 국민방위군 법안이 발의됨

국민방위군은 만 17세 이상 40세 이하의 예비병임


또한 국회는 국민방위군을 50만 명으로 추산하여 209억 원의 예산을 책정함

하지만 이는 50만의 병력에 제대로 된 보급을 할 수 없는 금액 


12월 21일, 법이 공포되고 60만~70만 만 명이 국민방위군으로 동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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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소집명령을 받고 교육대가 있는 경상도, 제주도로 걸어서, 배를 타고 가야 했음

(당시 대부분의 국도는 통제 중이었기 때문에 산길 등으로 이동해야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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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산이 부족하여 열악한 와중에 장교, 간부들은 이를 착복, 횡령하였고

피복, 음식 등 제대로 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음


수 많은 장정이 동사, 아사 등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정부는 1~2천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

(실제 사망자는 9만여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안타깝게도 정확하지 않음)


교육대에 도착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시설에 들어갔느냐? 그것도 아님

교육대는 제대로 된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여기서도 기아, 동상, 전염병에 시달렸음

 

 

04.jpg


교육대가 있었던 영천시


당시 주민들은 장정들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사망한 이들을 매장해주었음


2002년 국방부는 유해발굴을 실시, 유해를 현충원에 모셨고  

영천시, 정선군은 추모비를 세웠는데, 이것은 국민방위군에 대한 유일한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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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회 조사에서 밝혀진 부정액 규모는 약 72억 원

 물론 사령부에서만 해먹은 금액임


이후 사건을 은폐하려는 등  많은 논란이 있었고

1951년 8월, 국민방위군 사령관 외 간부 등이 공개총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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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uv.kr/pds1110274
https://youtu.be/Xuc6GdB4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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