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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역사 다시쓰기, 이차대전때 소련이 독일침략
게시물ID : history_193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림자유희
추천 : 4
조회수 : 304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1/11 14:41:07
독일을 방문중인 우크라이나 총리 아르세니 야체뉵이 1월 9일 독일 티비와의 인터뷰에서 이차대전때 소련이 독일을 침략했다고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오르고 있군요.



그의 정확한 발언은,

"우리는 모두 소련이 우크라이나와 독일을 침략한 사실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으며, 이런 일의 재발을 막아야한다"는 것이었는데...

http://sputniknews.com/europe/20150109/1016706636.html

"All of us still clearly remember the Soviet invasion of Ukraine and Germany," he said. "We need to avoid it."


현재 우크라이나 땅의 대부분은 당시 소련 땅이었는데 나치독일에 점령 당한 땅을 수복한 것을 침략으로 부를 수는 없지요.

그리고 전쟁 후반기에 소련이 독일 본토를 침공하여 베를린을 포함한 동부지역을 점령한 것은 맞는데, 나치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민간인까지 포함하여 수천만명을 죽인 것을 쏙 빼놓고 그것만 이야기한다면 마치 독일이 소련에게 억울하게 당한 일방적이 희생자라는 이야기처럼 들리지요. 그리고 같은 논리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도 독일을 침략한 것이지요.

소련군의 독일진공시 독일 여성에 대한 대규모 강간등 상당한 잔혹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 나치독일이 소련에서 행한 것 같은 민간인에 대한 조직적인 대규모 학살은 없었으니, 독일으로서는 자기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그 정도에 그친 것을 감사해야할 지경이지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농업집단화에 따른 기근등 스탈린의 학정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고(우크라이나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지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학정은 학정이고 침략은 침략이지요. 서로 다른 것을 뒤섞어 놓을 이유는 없고, 이걸 뒤섞음으로 해서 나치독일의 전쟁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은 더 문제가 많은 발언이지요.

안 그래도 작년 이차대전 전승기념일에 우크라이나 남부 케르손 주의 주지사가 전승기념식에서 나치독일을 스탈린의 학정에 대한 해방자로 묘사하여 참석자들의 야유를 받은 사건이 있었느데, 이번 우크라이나 총리의 발언은 그의 견해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군요.

http://rt.com/news/158032-kherson-governor-hitler-liberator/




독소전쟁 초기에 독일군을 스탈린의 학정에 대한 해방자로 생각한 소련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치독일의 지배가 스탈린의 학정에 비해 몇배나 더 잔혹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스탈린에도 불구하고 나치독일에 대해 결사적으로 항전한 것이지요. 나치독일의 목표는 점령지 슬라브계의 교육 받은 계층은 모두 죽여 버리고 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지배층이 될 독일인 이주민들을 섬기는 농노계급으로 만드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당시 여기서 예외인 사람들이 있어 끝까지 나치독일과 협력을 유지하였는데, 그 사람중 상당 부분이 서부 우크라이나 갈리치아 출신이었지요.

이 지역은 이차대전 전까지는 러시아나 소련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지역으로, 중세 이후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다가 18세기말 삼국분할에 의해 폴란드가 없어질 때,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던 곳이지요.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폴란드 민족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적극 지원하는 이이제이 정책을 실시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지원하에 최초로 우크라이나어를 표준어로 사용하는 교육기관 설립되고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온상이 됩니다.

일차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자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역시 신생국인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결국은 폴란드 영토가 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이 지역에 강하게 남아있어 폴란드의 지배에 저항하면서 폴란드 정부각료를 암살하는등 테러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조항에 의해 폴란드가 분할점령되면서 이 지역은 몽고침입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처음부터 러시아에 적대적이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스탈린의 숙청과 소비에트화를 경험하면서 더 적대적이 되고 나치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이를 적극 환영하고 협력하게 됩니다.

이 당시 나치에 협력한 서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지도자는 반데라라는 사람인데, 반데라는 독일의 지원하에 서부만이 아닌 전 우크라이나 지역에 독일의 보호령으로서의 우크라이나 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했고, 독일군이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에 진주하자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 그 정도까지 양보할 생각이 없었던 독일 당국의 심기를 거슬려 연금을 당합니다. 그 후 전세가 독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나치 독일은 반데라를 석방하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와 적극적인 협력을 추구합니다.

SBanderajpg
(스테판 반데라)

반데라의 추종자들은 반데라의 연금에도 불구하고 나치독일과의 협력을 유지하는데, 러시아 점령지에서의 보조경찰, 강제수용소의 간수, 빨치산 토벌대 등으로 참여했으며, 서부 우크라이나 갈리치아 출신 지원병으로 구성된 제 14 전투 SS 사단을 구성하여 독일군 지휘하에서 소련군과의 전투에도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치독일의 유태인 학살에도 보조경찰로서 참여를 했으며, 폴란드계 십만명을 학살하고 나머지를 추방하는 인종청소도 했습니다.

이들은 독일이 항복한 이후에도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소련을 상대로 게릴라 투쟁을 벌였으며, 1950년에 와서야 완전히 소탕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소련기간 동안에는 억압이 되었는데 소련의 붕괴와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야누코비치 정권을 축출하고 등장한 신정권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온상인 서부출신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야체뉵 총리도 서부 우크라이나 출신입니다.

서부 우크라이나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말도 맞는 말인데, 문제는 그것이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의 경험과 역사의식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말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독일도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다는 말은 이차대전시 나치독일과의 협력을 정당화하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차대전에서 독일이 이겼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서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도 이유는 있으며, 나치독일과의 협력도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하는 어려운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체를 통치할 세력이고자 한다면 스탈린 보다 더 가혹했던 독일군 점령을 경험했고. 소련군에 가담해 독일군과 싸운 다른 우크라이나인들의 경험도 존중하고 그들과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치독일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역사적 과오로 선을 긋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요.

그러나 야체뉵 총리의 발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군요. 그러니 친정부 극우 민병대들이 나치깃발을 들고 설치고 있지요.





그런데 우스운 것은 문제의 발언을 한 야체뉵 총리는 유태인으로서 나치독일과 반데라세력이 승리했다면 태어나지도 못 했을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현재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런 세력을 지원하고 있으니, 우크라이나의 앞날에는 더 많은 피가 흐를 것이 걱정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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