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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readers_193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츄레비
추천 : 1
조회수 : 3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4/27 14:55:39
예전에 썼던 글인데요 오늘 날씨가 좋은데 뭔가 기분이 멜랑멜랑 해서 올려요. 부끄러워요.
 
 
 
  작은 책이였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내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그 작은 책이 얼마나 작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마는
나는 그녀에게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돌려서 옆에 있는 초록색 그래프를 본다. 그래프가 움직이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내 눈은 그 그래프를 쫓았다. 한번. 두번. 점점 낮아져가는 그래프는 결국 한 줄이 되었다.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머리를 박박 밀었을 때도, 밥을 넘기지 못해 튜브를 꽂을 때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언젠가는 아침에 아내가 해주는 오이무침을 또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아내는 32살이다. 우리는 7년간 연애했다. 처음 만난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대학로에 있는 호프에서 처음 만났다.
시작은 장난질 이였다. 그날은 과 동기의 전역기념 파티였다. 거나하게 마시다가 우리는 심심해졌고 내기를 시작했다. 친구들과 내기에 진 나는
이 호프집에서 가장 예쁜 여자 앞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와야 했다. 호프에는 사람이 많았다. 500을 원샷한 뒤에 옆 테이블로 갔다.
그녀가 내 눈을 쳐다봤다. 사실 내 목표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 옆에 있던 가슴이 보일 듯 말듯 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왠지 모를 무안함에 노래를 시작했다. 취중진담. 그리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그 때 눈이 왔던가... 비가 왔던가... 
 눈을 떴다. 침대 위였다. 병원 침대 위. 친구 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괜찮냐고 물어본다.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난 살아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가야지. 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근데 눈물이 났다. 말이 나오질 않았다. 빌어먹을. 기절해서도 그녀의 얼굴을 보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뜻 계획이 세워지질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왠지 부끄러워서 돌아 누웠다. 꺽꺽거리는 소리가 내 식도를 타고
흘러나온다. 친구는 각 티슈를 두어개 뽑아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한참 울다가 정신을 차렸다.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대충 비볐다.
 아내의 병실에는 아내가 없었다. 문밖에는 장모님과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장모님은 내 얼굴을 보더니 대뜸 울기 시작했다. 딸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참 많은 눈물을 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모님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보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되는 눈물은 전염성이 있는지 내 눈에도 자꾸만 맺혔다. 하지만 참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먼저 보낼 때도 이랬다. 우리 엄마는 한참을 울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근데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았다. 지금도 그랬다.
아까 한참을 울었지만 울고싶었다. 근데 참는다.
한 사람이 죽고 나면 생각보다 복잡한 절차가 많이 남는다. 죽으면 그냥 화장하고 태워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망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병원에서, 동사무소에서, 장례식장에서, 화장터에서. 나는 아내의 죽음을 거듭 확인해야 했고 해줘야했다.
  다 끝내고 집으로 왔다. 딱딱한 구두를 벗어버리고 앞을 쳐다 봤다. 실수였다. 그 곳에는 웨딩사진이 걸려있는데... 없었다. 도둑이 들었나.. 하지만
정돈된 집안을 보니 도둑은 아닌 것 같았다. 도둑이 집 청소를 해 주고 갈리는 없으니까.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였다. 그놈은 친절하게도 청소를 하고 있었다. 동생은 벽에 걸려있던 사진을 다 정리해서 한 곳 박스에 넣어두고는
밥을 지어놓았다. 부지런한 녀석. 식탁위에는 뚜껑이 덮힌 밑반찬이 꺼내져 있었다. 밥솥에선 김이 났다. 배가 고팠다.
밥을 퍼서 식탁에 앉았다. 유리와 밥그릇이 부딪혀 따그락 소리가 났다. 반찬통을 열었다.
김치. 오이지. 장조림. 계란말이. 물을 한잔 떠서 식탁에 다시 않았다.
따그락 소리가 다시 들렸다. 맞은편에 동생이 앉았다.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말도 없는 동생이 고마웠다. 동생의 몸에서는 락스향이 났다.
청소를 마치고 동생은 집으로 갔다.
거실에 앉아서 티비를 켰다. 소리가 컸다. 하지만 집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티비를 켜고 방으로 가 누웠다.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나... 생각하다 눈을 떴다.
오전 1028. 한참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밖을 보니 눈이 오는 듯 했다. 아니다. 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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