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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독서실 (7~9)
게시물ID : humorstory_1210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쟈일리톨
추천 : 1
조회수 : 26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6/07/05 23:52:34
#7
나는 우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다시 독서실을 바라보았지만, 창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으시시해졌다. 분명히 내 생각에는 그 괴기한 표정의 여자 애를 본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독서실에 남아있는 애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독서실을 나올 때, 좀 서둘러 나오기는 했지만,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히 확인했다. 한참을 서서 독서실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 보기는 괜히 꺼림직하고, 좀 귀찮았지만, 혹시 정말 독서실에 남아 있던 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올라가야만 할 것 같다. 잠시 고민하다가 독서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불꺼진 건물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나올 때 보다 더 으시시하게 느껴졌다. 첫 출근이었기 때문에, 복도와 계단의 전등을 키는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두운 복도 벽을 더듬어 봤지만, 스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불꺼진 곳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올라가기가 싫어졌다. 사실 무서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올라가기가 싫어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한 숨을 내쉬고 복도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에 의지하여 천천히 독서실을 향해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내 발자국 소리가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울렸다.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 올라가는 것은 으시시했다.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뭔가가 나를 노려보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는 내 뒤에서 뭔가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자꾸 등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봤지만 어두컴컴한 빈 계단만 보였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독서실까지 올라갔다. 생각해 보니, 그 여자애의 모습이 총무실 창가에서 보인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독서실 문을 열었다. 불꺼진 독서실안은 단지 자판기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희미하게 독서실 안을 비춰지고 있었다.
불과 몇분전만 해도, 내가 있었던 곳이지만 이런 희미한 불빛아래 보이는 모습은 음산했다. 나는 독서실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 없냐고 몇번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열람실을 돌아다녀 볼까 했지만, 불러도 대답없는 것을 보니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여자 열람실에서 바로 전에 내가 기괴했던 느낌이 마음에 걸려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독서실 현관에 서서 좀더 기다려봤지만, 아무도 없는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독서실 안에서 뭔가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상상에 시간 빼앗기기가 싫었다.
다시 독서실 문을 잠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확 뒤돌아 봤지만, 역시 어두 컴컴한 독서실 문만 보였다. 괜히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뛰어서 독서실 건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망설이지도 않고 봉고에 올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겠으려니 자위를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길 동안, 그 여자애의 기분 나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뒷자리에 그 여자애가 타고 있지는 아닐까란 이상한 생각마저 들어 자꾸 백미러를 쳐다보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자, 부질없는 생각에 떨었던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곧 군대 갈 놈이 독서실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별 상상을 다 했다는 것이 창피할 정도였다.
하도 여러번 긴장하고 떨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8

밤새 기억도 안 나는 악몽에 시달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왠 일인지 온 몸이 뻐근하고, 과음한 다음날처럼 머리도 지끈 거렸다. 집에서 오전 시간을 빈둥거리고 나니, 어느새 독서실로 출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3시쯤 도착하니, 오늘도 아무도 없었다. 주인 아저씨가 얘기하던 고시생이라던가 유학 준비생들은 오늘도 안 온 것 같았다.
나는 어제와 같은 자판기를 살펴보고 독서실을 청소하면서,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오늘도 그 창고라는 닫혀진 문에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몇 번을 어떻해든 그 문을 열어볼까 망설였지만, 쓸데없는데 너무 신경쓰는 것 같아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청소를 시작했다.
어제 고장난 줄 알았던 여자 독서실의 전등은 오늘은 아무런 이상 없이 켜졌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독서실 바닥에 청소기를 갖다대며 청소를 했다. 한참동안 구석구석까지 청소하다가 허리를 피려고 일어난 순간, 난 충격을 받았다.
전날 밤 소리가 났던 그 벽에 빨간 색으로 '4'는 숫자가 휘갈겨 써져 있는 것이었다. 그 빨간 색은 너무 선명해서 피 같이 느껴졌다. 어제 밤에 그 글자가 써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았지만, 저 위치에 눈에 확 띄는 빨간색 글자를 모르고 지나쳤을리는 없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독서실을 나간 사이에 누군가가 써놓은 것인 셈이었다.
충격 때문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글자가 써 있는 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누군가가 빨간 잉크로 휘갈겨 써 놓은 것 같았다. 써 놓은지 시간이 꽤 지났는지, 잉크는 말라 있었다. 그렇지만 흘러내린 자국하며, 이 글자가 피로 쓰여졌는지, 빨간 잉크로 쓰여졌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피로 써졌겠냐라는 생각을 하고, 물걸레를 가지고 와서 지우기 시작했다. 잉크를 썼다면 유성 잉크를 썼는지, 생각보다 잘 지워지지 않았다. 아세톤을 가져와서 지웠지만, 유성 잉크도 아닌지 별로 지워진 것 같지 않았다. 물걸레로 닦아보고 한참을 지우다 보니, 어느 정도 지워졌다. 희미한 자국은 남았지만, 벽지가 아닌 페인트가 칠해진 콘크리트 위해 써 놓은 글씨라 그럭저럭 지울 수 있었다.
글씨를 지우고 나니, 누가 그 글씨를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굴까?
어제 창가에 있던 소녀...
그 여자애의 얼굴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만 상상이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애들이 써 놓은 낙서를 어젯밤에는 보지 못하고, 이제서야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총무실로 들어와, '독서실 벽에 낙서 금지'라고 종이를 만들어 독서실 문 앞에 써 붙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기분나쁜 빨간색의 낙서가 불가사이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낙서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는데, 어느새 시간은 학생들이 독서실로 몰려올 시간이 되었다. 
 
#9

학교가 끝났는지 애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총무실로 들어와 가져온 책을 펼쳤다. 하지만, 아까 그 글씨하며, 어제 그 여자애의 얼굴하며, 책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제 독서실을 나가기 전에 내게 이상한 경고를 해주었던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왜 나보고 나가라고 했으며, 또 '그 애들' 무엇을 얘기했던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처럼 먼저 중학생들이 몰려왔고, 저녁식사 시간이 끝날 때 쯤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고등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는 독서실이 거의 없는지, 꽤 많은 독서실 자리가 한달 등록하지 않은 애들 자리를 제외하곤 자리가 거의 찼다. 어제 그 얘기를 했던 아이는 보충수업을 하고 오는지, 다른 학원을 갔다 오는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독서실의 풍경은 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독서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자기 몸 반만한 무거운 가방을 힘겹게 매고 독서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축쳐진 어깨와 지친 모습은 괜히 보는 이의 가슴마저 무겁게 하는 것 같았다. 독서실에 들어와봤자,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시덥지 않은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우리때와 똑같았다. 가끔씩 화장실 복도에서 담배피는 애들이 보였지만, 왠일인지 모른척 해주고 싶었다.
10시쯤 되니, 주인 아저씨가 보충 수업하는 애들을 태우고 나타났다. 별일 없냐는 이례적인 질문을 하고 수고하라며 바쁜 듯이 나가려던, 주인 아저씨는 내가 써 붙인 낙서 금지라는 벽보를 보더니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무슨 낙서가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오늘 발견했던 그 빨간 글씨의 '4'에 대해서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주인 아저씨는 큰일이 났다는 얼굴을 하고, 낙서 있던 자리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주인 아저씨를 데리고, 낙서를 지운 곳으로 갔다. 아저씨는 낙서 자국을 한 참 뚫어지게 보더니, 뭔가 두려운 듯한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얘기했다.

"자네 말대로, 애들이 낙서한 것 같군....
앞으로도 만약 이런 낙서가 발견되면 나에게도 알려줘.
어떤 놈인지 혼내줘야겠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주인 아저씨는 뭔가 쫓기듯이 황급히 독서실을 나서면서, 내게 말했다.

"요즘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 독서실은 이 시간에 잠깐 들리는 것이외에는 잘 올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자네가 잘 운영해 주길 바라네.
그리고.... 밤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연락하고..
요즘 애들도 일찍 가는 것 같으니, 애들만 없으면 자네도 일찍 문닫고 들어가게..."

그러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황급히 독서실을 나갔다.
좀 이상했지만, 정말 무슨 일이 있는지 바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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