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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잡스러운 이야기들.SSul
게시물ID : humordata_19396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식당노동자
추천 : 14
조회수 : 1719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22/02/10 02:20:23

 

 

 

 

'미스터 고' 라는 영화가 있다.

대충 고릴라가 나와서 뭐 애기랑 같이 야구하고

그런 영화인데... 사실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이야기를 왜 하냐면, 나는 죽을때까지 이 영화를

자세히 볼 마음이 단 한개도 없기 때문이고, 별스럽게도

그 이유를 이야기하려 함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스터 고' 표지만 봐도 불쾌감을 느낀다.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년이였던가?

어쩌면 15년이였을 수도 있다. 글쎄다. 하여튼 나는 당시에

소기업쯤 되는 철강공장에서 일했는데 다만 입사 한달이

채 안됐었고, 회사는 일을 배우라는 명목아래 나를 명절출근까지

시켰다. 그 때 일당이 오만원인가 그랬다. 수습이라고.

 

명절 당일날인가 하여튼 밥을 먹으면서 봤던 영화가 '미스터 고'

였고 밥수저를 다 뜨기도 전에 선배들이 밥을 다 먹었다는 이유로

티비는 꺼지고 나는 또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다음날 점심때 쯤 젊은애가 열의가 없다는 선배의 호통에

나는 화장실 가는 척을 하며 퇴근했고 그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뒤로 희한하게 그 영화 표지만 보면 온몸에 기분나쁨이

진흙처럼 묻어난다. 다른 많은 불쾌함도 겪었는데 왜 하필

그 영화만 그럴까.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티빙 들어가서 뭘 좀 볼까 하다가 그 영화가 눈에 띄어서

한번 써 봤다. 생각이 나서.

 

 

 

 

#2.

 

현재까지 17키로를 감량했다.

문제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식욕이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요새 식욕을

엄청나게 느끼고 산다. 심할때는 자다 일어나서 냉장고를

뒤지다가 닭가슴살과 고구마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쥐어 뜯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이번이 아니면 정말로 나에게 남은건 돼지같은 먹성과

돼지같은 삶 뿐이라는 것을 매일 떠올리며 밤마다 혹은 때도없이

찾아오는 식욕과 나태함과 싸운다. 그래 내가 뭔가와 이렇게

싸운게 내 인생에 단 한번이라도 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온전히 맞이한 아침에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그래 너는 닭가슴살을 먹을 자격이 있어'

라고 중얼거리며 아침부터 닭가슴살을 씹어 밀어넣고 출근한다.

 

근데,

 

 

월요일날 그게 한번 무너졌다.

그날은 뭔가에 홀렸던 것 같다.

퇴근하고 나서 나도모르게 치킨을 시켰다. 맥주도 시켰다.

호텔델루나를 틀고 치킨을 깠다.

 

냉장고 깊숙히 당분간은 꺼낼 일 없을 것 같던 소주도 꺼냈다.

먹었다. 계속 먹었다. 흡사 아무생각없이 먹던 그 시절처럼

그냥 계속 먹었다. 먹다가 라면에 눈이 갔다.

라면도 끓여먹고 밥도 말아먹었다. 남은 술을 모두 마셨다.

취한데다가 너무 많이 먹어서 속에서 올라오는데 꾸역꾸역

술을 마셔댔다. 중간에 술이 너무 써서 초콜렛도 세개를

까먹고 빵과자도 먹었다.

그사이에 호텔델루나 2회분을 봐버렸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술병과 과자, 치킨과 라면이 있었던

그릇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웃다가 담배를 피웠다.

 

컴퓨터화면에서는 여전히 호텔델루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문득 그 전날 밤 런지 200개를 채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새벽같이 헬스장에 나가 뛰고 웨이트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기어코 올게 왔다며 나를 비웃는 내면의 자신이 눈앞에 보였다.

 

모든걸 포기하려는 생각이 빠르게 들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고작 이딴걸로 포기할 정도로 무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맑아졌다.

 

나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술이 빠르게 깼다. 미친인간처럼 칼로리 기입장에 쳐먹은 그것들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휴대폰을 끄자마자 바로 자고 세시간뒤인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또 헬스장으로 향했다. 이어폰에 음악을

최대 음량까지 올린 채 네시간을 웨이트와 유산소만 반복했다.

 

'죽을것 같으면 죽으라지. 근데 이딴 개같은 모습을 죽을 수는 없어'

 

그런 생각으로 나는 네시간의 지옥같은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돼지같이 쳐먹은 그 다음날 나는 모든 용기를 짜내 체중계 위에

올라갔고 1키로가 불어나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것을 잊어버렸다.

 

쳐먹은 것은 과거의 내가 사죄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미래의 나만 보기로 했다. 다행히 몸무게가 더 불어나는 일은 없이

마의 90대 초반에 입성했다. 조금 굴곡은 있었지만 다행이였다.

 

그래도 이번 일로 인해 느낀것이 있었다.

무조건적인 채찍은 독이된다. 나는 2주에 한번은 좋아하는 것과

술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글에 댓글로 '니 안에 있는 그

나태한 너도 너 자신인데 걔도 보듬어 안아줘라' 라고 써주셨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좀 이해할 것 같다.

 

아 근데 피자랑 햄버거는 안됨. 그건 진짜 안됨.

 

 

 

 

#3.

 

살빠지고 몸 만들고 진짜 하고싶은게 하나 있다.

시카고에 나왔던 케서린제타존스처럼 화장하고

(참고로 난 남자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누가봐도 여장남자 티가 나는데 그상태로 화보처럼 

스튜디오에서 사진한장 찍어보고 싶다.

 

왜하냐고 묻는다면, 유니크 하잖아. 내 생에 그런 사진

하나 남긴다는게.

 

오버워치라는 게임에 나오는 케릭터 코스프레도 하고싶고,

요새도 부산 벡스코 가야 하나...

상의탈의하고 수영장 한번 가보고 싶다.

욕심도 많지 나란 놈은.

 

 

 

 

#4.

 

오래간만에 집청소를 좀 했다.

아령밑에 양말 택배봉지가 깔려있어서 그냥 치우려다가,

묠니르를 힘겹게 드는 캡틴아메리카를 흉내냈는데 손을

삐끗하는 바람에 엄지발가락에 10키로짜리 아령을 찍어버리고

말았다. 나도모르게 헔컰 하며 주저앉아서 엄지발가락을 붙잡고

 

"전하. 소신은 아무 죄가 없나이다." 하면서 부들거렸다.

 

아프긴 진짜 아팠다. 죽을뻔했다. 누가 그러던데?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근데 이 상황에 써야 하는 말인가.

하도 아파서 스타 한 두판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결론 진짜 이상해. 제정신 아닌 것 같아.

 

 

 

 

#5.

 

 

같이 다이어트를 시작한 사장은 간헐적 단식이라며

10시간을 굶고 한번 식사를 하는데, 카스테라에 냉면을 한끼에 먹는다.

식사 대용이라며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고... 그만 이야기하고싶다.

 

한번은 웨딩촬영한다고 턱시도 사이즈를 맞추러 갔다온 사장이랑

대화를 좀 했는데,

 

"야. 오늘 턱시도 사이즈 재러 갔다왔는데..."

 

 

"잘 다녀오셨나요."

 

 

"어 근데 허벅지를 맞추면 배가 안맞고 배를 맞추면 허벅지가

헐렁하고 아 이새끼들 사기꾼 아니냐."

 

 

"...그건... 형이 그만큼 배가 나왔다는 거에요..."

 

 

"그러면 샵에서 그런걸 맞춰줘야지. 안그러냐?"

 

 

"...세상엔 수학으로 안되는 일들도 많아요... 맞춤정장...

뭐 그런걸로 하세요..."

 

 

별 도움 안되는 말이란거, 잘 알고 있었지만 글쎄다.

내가봤을때 사기꾼이라고 그사람들을 몰아가기 보다는...

그렇게 굶고 한번에 먹고 그러는게 더 사기같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 본인에게도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그래도 어찌저찌 맞췄는지, 내일 웨딩촬영 하러 간단다.

좋겠네 결혼 시발거 행복해라 이새끼야.

 

 

 

 

 

 

 

#마치며.

 

 

일단 잠을 좀 자야겠다.

내일 아침엔 헬스장도 가야 하고, 오전 열시 반에 미용실
예약도 좀 해놨고, 이번에야 말로 부분염색 끝내고 머리좀

다듬어야지. 혹시라도 머리 기를 생각하는 남자분들 계시다면

저를 반면교사 삼으세요. 기르지마세요. 힘들어요 이거.

 

오후에는 동네형도 좀 만나야 하고 고구마도 좀 깎아놔야 하고

서점가서 책도 좀 봐야 하고 하여튼 주제에 할일많은 척은 아주

누가보면 일론머스크만큼 바쁜줄 알겠어.

 

그래도 기분은 좋으니 봐준다 나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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