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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출신 형조판서 반석평
게시물ID : history_194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varez
추천 : 10
조회수 : 2501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5/01/22 16:05:31
http://www.bannampark.co.kr/LJ_board/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6719
중종조에 정2품 한성부 판윤을 지냈으며, 지중추부사로 졸한 반석평은 본시 서울에 살던 참판집의 종이었다.
종은 조상이 포로이거나 채무자, 범죄자로 공민권이 없어, 과거에 응시할수 없었다.

그러나 종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참판집에 부탁하여 공부를 하여 과거에 응시할수 있게 해달라하였고,
참판은 이를 기특히 여겨, 반석평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양자로 들였다.

석평은 열심히 공부해 중종2년(1507년) 식년문과와 병과에 급제했고, 
예문관 검열, 경흥부사, 만포진첨절제사, 함경남·북도 병마절도사, 동지중추부사, 형조참판을 역임했다. 

그런데 그가 형조판서로 있을 때, 초헌을 타고 입궐하는 도중에 거지가 다 된 옛주인 집 도령 이오성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 그동안 양반행세를 한 죄를 사과하고 다시 옛 주인의 종이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왕에게도 나라를 속인 죄를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 그를 용서해주고 이오성에게도 사옹원 별제 자리를 내려 주었다.

그의 시호는 장절공이며, 반기문 UN사무총장이 그의 후손이다.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tid=kka&pos=91&mTree=0&inResult=0&indextype=1&keyword=%EB%B0%98%EC%84%9D%ED%8F%89
중종 91권, 34년(1539 기해 / 명 가정(嘉靖) 18년) 7월 25일(경인) 1번째기사
반석평·강현·정유선·안위·권찬·김만균·나세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반석평(潘碩枰)은 단망으로 주의(注擬)되었으니 반석평을 한성부 판윤에, 강현(姜顯)을 예조 참판에, 정유선(鄭惟善)을 병조 참판에, 안위(安瑋)를 사헌부 집의에, 권찬(權纘)을 장령에, 김만균(金萬鈞)을 홍문관 부응교에, 나세찬(羅世纘)을 부수찬에 제수하라.”

관리 임명은 삼망(3명의 후보)이 일반적이었으나, 적절한 후보가 1명일 경우 단망이라 했다. 

http://love.seoul.go.kr/SEOULSARANG.asp?cs=634
한성부 판윤은 정2품의 당상관 고위관료로, 그 중요성때문에 영의정보다도 더 오르기 어려운 자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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