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봐요. 지금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 했다. 눈 앞에 보이는 양주임의 입가가 유난히 실룩거리고 있었다. “지금 빨리 잠그지 않으면...” “후우, 문이 워낙에 낡아서... 엿같네. 정말.”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돌리기만 하면 돼요. 조금만 더.” 대체 아까부터 그놈의 조금만을 몇 번이나 말 하는 건가. 이제 괴물이 손만 뻗으면 모든 게 끝날 지경이었다. -스르륵, 쿵 괴물이 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 빠르진 않았지만 워낙 가까운 거리였다. 거기에 공교롭게도 양주임의 얼굴이 내 얼굴과 거의 비슷한 높이였다. 그러니까 시야 전체를 양주임의 얼굴이 차지하기 시작했단 말이다. 몇 가닥 있는 흰 머리와, 땀구멍까지 보일 거리가 되자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나는 고개를 최대한 뒤로 빼고, 가능하면 눈은 마주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내렸다. -우쉬위우후위휘 괴물이 소리를 냈다. 그리고 가슴팍에 붙어있던 손을 앞으로 내민다.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콰앙!! -철컥 두 가지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콰앙! 콰앙!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후아. 진땀 뺐네요. 한 번 잠그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가 까치발을 풀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도 손에 넣었던 힘을 풀었다. “돌아가면 당장 이것부터 보고해야겠군.” 그는 문 너머에 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저 괴물들 말인가요?” 나는 문 위쪽에 잠금 장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이 엿 같은 문 말이에요.” 내 말에 그가 "훗"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책상 쪽으로 가나 싶더니 의자 두 개를 집어 들고 돌아왔다. “이 문, 안심할 수 없어요. 우선 이 의자들로 막아놓고 같이 책상을 끌고 오죠.” 그가 바퀴가 달린 낡은 사무용의자를 문 앞에 눕혀 놓았다. -위휘시위시후이 괴물의 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콰앙! 콰앙!! 아까보다 더 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둘러요! 3층도 이런 식으로 당했다고요!” 그가 그렇게 말 하며 문에서 가장 가까운 책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 쪽 끝을 잡고는 나에게 소리쳤다. “어서 반대쪽을 잡으세요. 이것만 막아놔도 안심할 수 있을 거예요.” 달려가서 그가 하라는 대로 책상의 끝 부분을 붙잡았다. 그와 마주선 자세가 되었다. “셋 하면 들어요. 자 하나, 두울, 셋!” “으읍...” 엄청나게 무거웠다. 결국 지면에서 5센치도 못 든 채 문으로 움직여야했다. -콰앙!!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저 의자들 좀 치워주세요. 여기서는 손으로 밀어서 붙이죠.” 아까 놓아두었던 의자를 치우라는 말 같다. 책상을 내리자마자 재빨리 의자로 달려갔다. 의자를 옆으로 빼면서 힐끗 문 쪽을 쳐다보았다. 재수 없게 또 다시 양주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젠장. 의자 다 뺐으니까 어서 밀라고!” 그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르륵 책상이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나도 재빨리 그의 옆에 붙어 함께 책상을 밀었다. -드르르르 쿠웅. 그리고 문 앞에 책상을 붙이는데 성공했다. -콰앙! 콰앙! 여전히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쉽게 뚫지는 못할 것이다. 그만큼 책상이 견고해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거친 숨을 고르며 멍하니 문 밖을 쳐다보았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서 있던 그가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흐읍... 푸후...” 길게 빨은 만큼 길게 내뱉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털썩하니 주저 않는다. “대리님. 한 대 피실래요?”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덕에 담배와는 예 저녁부터 인연을 끊고 살아왔다. 게다가 미식가인 나에게 담배는 어울리지 않는다. 껌이라면 모를까. “아, 괜찮아.” 대답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머리에 두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몸이 떨리고, 열도 나는 것 같다. 아마 단물이 다 빠지지 않은 껌을 억지로 뱉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남은 껌도 없으니 정말 큰일이었다. “괜찮으세요? 아. 잠깐만요.” 그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엄지손가락 한 마디정도 크기의 울퉁불퉁한 덩어리를 꺼냈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그것을 나에게 건 낸다. “이거 씹으세요. 조금 괜찮아 질 거예요.” 얼떨결에 그 덩어리를 받았다. 자세히 보니 웬 털 같은 것들이 숭숭 나 있다. 입에 넣기 상당히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그래 뵈도 껌이랍니다. 맛은 별로 없지만. 어서 씹으세요, 몸부터 챙기셔야죠.”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눈 딱 감고 그 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아그작. 단물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조금 비릿하다. 하지만 역겨울 정도는 아니어서 무시하고 씹을수 있었다. “어때요. 조금 괜찮아졌죠? 저도 그것 때문에 고생 엄청 했죠.” 묵묵히 덩어리, 아니 껌을 씹었다. 다행히 몸이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어디서 봤었지?” 불현듯 내가 말을 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외모만으로 보면 내 나이가 위일 것 같았지만, 그래도 초면이라면 실례가 되는 부분이다. “아, 대리님. 저 기억 못 하시는구나. 기억 안 나세요. 오티 때?” 입사한 지 5년이 되었으니 총 다섯 번의 오티에 참가한 기억이 있다. 재수 없게 그 때마다 장기자랑의 사회는 꼭 내가 보았었다. 두 번째 까지는 순전히 제비 뽑기였는데, 세 번째부터는 하던 사람이 해야 재미있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때문에 하게 되었다. 말솜씨가 좋거나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어서, 매 해 오티 시즌이 되면 신입사원들 보다 더 긴장하곤 했었다. “언제 적 오티를 말 하는 거야?” “아, 올해요. 기억 안 나세요? 저 필승 불러서 1등 먹었는데.” “필승... 아! 김, 필...중? 맞나?” 필승이란 말에 갑자기 기억이 났다. “하하하. 맞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노래를 하겠대서 곡명을 물어봤더니, “필승이요” 라고 대답했던 것이 기억난다. 심하게 망가지며 열창을 했던 터라 모두가 필중이 1등을 할 거라 생각했고, 결과도 그렇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네 정말. 자네도 이쪽으로 출장 나온 건가?” 내 말에 필중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뇨. 저는 원래 근무지가 여기에요.” “그래? 어쩌다가 강원도로 배정받았어?” 필중이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그리고 시선은 문 밖의 괴물에게로 돌렸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실력이 없던 탓이죠. 동기 중에는 벌써 주임 단 애도 있는데...” 말끝을 흐렸다. 평소 같았으면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문 밖에는 여전히 괴물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나에게는 이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그건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후배 직원 앞이라 그런지,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이 놀라웠다. 속마음은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은데 말이다.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원래 제 부서는 3층이니까요.” 4층은 기획부, 3층은 영업부였다. 하긴 장기자랑 때를 생각하면 영업 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긴 하다. “1층에서 뭔가 이상한 거 보지 않았어요?” 1층이라. 계단 쪽에 있던 괴상한 덩어리들이 생각난다. “봤지. 이상한 덩어리들 말하는 거지?” 필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콰앙!! 그리고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소리가 문에서 들렸다. 괴물의 흥분상태가 절정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강화유리니 쉽게 깨지는 못 하겠지만. 소리에 반응하느라 필중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있었다. “어이 어이. 계속 말 해봐.” “아, 아. 죄송해요. 근데 저 새끼 제법 끈질기네요.” 필중이 이제 꽁초가 다 된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후우... 그거, 오부장님이에요.” “뭐?” 순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뭐가 오부장님이라고?” “그 덩어리들이 오부장님이라고요.” “대체 무슨 말이야... 덩어리가 오부장님이라니?” 상식 밖의 이야기어서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했다. “좀 더 쉽게 말 해봐.” 필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저는 정말 재수가 없었죠. 바로 앞에서 그 모습을 봤으니까요.” 필중이 담배를 바닥에 문지르며 담뱃불을 껐다. “터졌어요. 콰앙~ 하면서. 대단했죠 정말. 여직원들은 기겁해서 소리를 지르고.” “그게 대체 무슨...” “껌 때문이래요. 오주임 그 재수 없는 인간 말로는요.” 오주임에게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덩어리는 오부장의 산산조각 난 몸이에요. 시뻘건 건 핏덩이고, 길쭉한 건 내장이죠.” 소름이 끼쳐왔다. 손과 발에 닿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전히 내 신발 바닥에는 시뻘건 잔해가 붙어있었다. 이게 오부장의 피란 말인가? “이, 이해가 안 돼. 피는 액체잖아. 어떻게 그런 덩어리가 된단 말이야? 마치 껌처럼 물컹거리고 끈적거렸는데.” “말 그대로 껌이니까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묘하게 머릿속에 뭔가가 정리 되고 있었다. 괴물로 변한 양주임과, 이주임. 그리고 몸이 폭발한 오부장. 이들의 공통점은 한가지였다. 바로 그 껌을 씹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떠오른 것이 그 구멍가게 주인의 말이었다. -명심해야 돼. 절대 삼키면 안 된다 “껌...을...삼켰겠지.” “저 대리님?” 왠지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필중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 아냐. 계속 말 해봐.” 필중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아, 예. 오부장님이 그렇게 되고나서 직원들은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어요. 저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죠. 그 때 오주임이 나타나 모두에게 소리쳤어요.” “그 새끼가 뭐라고?” “경찰에 신고했으니 진정들 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대부분이 1층, 2층 사람들이었죠.” 필중이 계속 말을 이었다. “걔 중에는 저와 같이 그냥 사무실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어요. 미친 짓이었죠.” “그게 언제 일어난 거야?” 필중이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 그게, 어제 오전인데 음. 한 열 시정도였을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그렇게 안 받은 건가? “그래서 경찰은 왔어?” “아니요. 안 왔어요. 오주임이 경찰을 불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거든요.” -우쉬위무이휘취 괴물의 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턴가 문을 두드리는 것은 그만두고 있었다. 대신, 문에 찰싹 달라붙어서 끈적끈적해 보이는 몸을 비비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후엔?” 필중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4층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말이 들리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그리고는 뭐, 보시는 그대 롭니다. 저렇게 생긴 놈들이 나타났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도 있었다. 필중이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리님은 어떻게 껌을 씹게 되셨나요?” 필중의 말에 나도 모르게 당황을 했다. 뭔가 캥기는 생각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아, 아니, 뭐 어쩌다보니... 그러는 넌?” 대답이 애매해서 그런지 필중이 고개를 갸웃 거린다. “저는 오주임에게 받았어요. 저 말고도 대부분이 오주임에게 받았죠.” “대부분이라고?” “예 맞아요. 대부분이요. 그리고 대부분이 껌 때문에 고생을 했죠. 아까 대리님처럼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오주임에게 껌이 떨어진 것은 분명히 두 눈으로 확인했던 일인데. “오주임, 오주임은 어떻게 됐어?” “글쎄요. 마지막으로 본 건 오늘 새벽이에요. 그 때는 괴물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뭔가 말이 안 맞는 게 있었다. “괴물들에게 얘기를 했다고? 오주임은 괴물이 되지 않은 거야?” “예? 아 예. 4층 사람들 모두가 괴물이 된 건 아니니까요.” 이상하단 생각을 하고 나니, 그런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내 예상은 껌을 삼킨 사람이 괴물이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왜 오주임은 괴물이 되지 않은 걸까? 그리고 오부장은 왜 괴물이 되지 않고 폭발을 한 거지? 그리고 오주임은 왜 괴물에게 당하지 않은 걸까? 그리고 필중이 나에게 준 껌은 대체 어디서 난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증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든 것이 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말이다. 출처 :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건방진똥덩어리'님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