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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자료 4. 문화
게시물ID : sisa_229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람향기
추천 : 11
조회수 : 2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6/07/07 17:30:50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의 문제점

문화침약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하려면 한국영화부터 죽이고 오라!” 
이 오만방자하고 후안무치한 미국의 끈질긴 요구에 노무현 정부가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 1월 26일 한덕수 부총리의 스크린쿼터 73일 축소방침 발표에 이어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은 5년간 4천억 원을 한국영화산업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곧 이어 2월 2일 미국정부와 재계의 대대적인 환호 및 <100%전면개방+경제와 정치군사안보를 포괄하는 협정>이 되어야 한다는 천명 아래 한국과 미국 정부는 FTA협상 개시를 공식 발표했다. 한국정부가 미국에 FTA를 구걸하는 대가로 한국영화시장을 건네준 것이다. 이로써 지난 8년간 우리 사회를 뒤숭숭하게 흔들어온 "쿼터축소=한미FTA"라는 '유령'이 그 실체를 드디어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정부의 쿼터 축소 근거는 한국영화가 이제 국제경쟁력을 확보했으므로 쿼터 축소가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는 막연한 '여론'과 98년 이래 지속된 미국의 강력한 축소 압력이다. 만일 정부 주장대로 쿼터축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으로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4천억 원을 추가 지원받게 될 영화인들이 '집단이기주의라는 누명'을 쓰면서까지 이를 결사반대할 이유가 결코 없다. 또 우리 영화인들은 한국영화가 손해를 보더라도 한미FTA가 진정 미래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스크린쿼터를 얼마든지 축소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쿼터 축소를 통한 한국영화 경쟁력 유지론과 한미FTA의 국익증대론이라는 두 유령의 실체를 이제 정확히 파헤쳐 보자. 


유령 1-쿼터축소를 통한 한국영화 경쟁력 유지론
지난 8년간의 쿼터전쟁을 통해 밝혀졌듯이 영화산업 성패의 관건은 제작이 아니라 배급이다. 87년 헐리우드 영화 직배허용 이후 60%가 넘던 한국영화시장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93년 15%로 바닥을 쳤다. 당시 존재했지만 정부의 방치로 유명무실했던 쿼터제도를 실제로 작동시키기 시작한 것은 영화인들 스스로 결성한 스크린쿼터감시단의 활동이었다. 93년 쿼터위반 일수는 연평균 60일에 달했으나 감시활동의 결과 최근에는 0일로 감소했고, 그 결과 한국영화산업은 이제 연평균 50% 대를 유지하게 되었다. 쿼터제도가 영화산업 발전의 필요조건임을 입증하는 역사적인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국영화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수많은 연구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스크린쿼터 1일 축소 시 영화시장은 160억 원 감소, 50일 축소 시 5,380억 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살인의 추억> 한 편이 자동차 EF소나타 2,800대를 생산한 것과 맞먹는 부가가치를 유발한다고 한다. 2004년 기준으로 한국영화산업의 직접매출은 1조 2천억 원이지만 부가가치생산효과는 5조 5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 이런 기준만으로도 향후 쿼터 50%의 축소는 매년 6천억 원 대의 직접매출 손실 뿐 만 아니라 적어도 3조원 이상의 부가가치생산효과의 감소를 가져온다. 더 큰 문제는 영화산업의 특성상 이런 감소가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매출감소-투자감소-제작편수감소-배급기회감소-매출감소의 악순환의 고리로 3~5년 사이에 영화산업 전체가 붕괴한다는 역사적 선례들이 이를 입중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멕시코는 스크린쿼터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정부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채택했지만 90년 80편에 이르던 제작편수가 98년 10편으로 급속히 감소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은 5%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세계영화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헐리우드의 힘 역시 우연적 소산이 아니다. 엄청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인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의 양산은 연간 15억 명의 관객을 가진 자국의 거대규모 시장으로부터 연유한다. 동시에 세계화된 그들의 언어와 문화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우월적 지위가 세계 어느 나라든 헐리우드와의 경쟁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평균제작비 1천억 규모의 영화를 연간 800편씩 지속적으로 생산하여 엄선된 200편을 세계시장에 내보내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이것이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헐리우드 배급력의 원천이다. 
지난해 10월 제33차 유네스코 총회는 찬성 148, 반대 2라는 회원국의 압도적 지지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채택함으로써 자국문화 보호를 위한 정책과 제도가 국제협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 문화적 자신감 결여와 문화예술인의 집단이기주의에서 연유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의 일부 관료가 한국영화인에게 퍼붓는 집단이기주의 공세는 결국 세계 문화예술인을 조롱하는, 이미 국적 없는 ‘국익’을 쫒는, 다국적 자본에 충성을 맹세한 신자유주의자들의 맹목적 공세일 뿐이다. 


유령2 - 문화관광부의 허구적 지원 대책 
문화관광부의 지원대책이란 것 역시 일고의 가치도 없다. 2004년 6월 이창동 장관의 자진 축소 예정 발언이 나온 지 1년 반 이상의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 50% 축소로 연간 6천억 원대 이상의 직접 매출 감소를 향후 연간 1천억 원도 안 되는 지원규모로 대처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지원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산업의 핵심고리는 배급에 있다는 일반화된 인식을 주무부처가 애써 외면하려 한다는 것 역시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문화관광부가 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 투자/배급과 극장간 부율 개선 역시 진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만은 90년 이후 WTO 가입을 위해 외화쿼터를 폐지한 결과 90년 초반 자국시장점유율 35%에서 98년 5%로 떨어졌다. 동시에 제작환경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90년대 초반 50편에 이르던 제작편수가 96년 이후 20편 내외로 급락하면서 만성적 콘텐츠 부족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결과 헐리우드 직배사인 컬럼비아는 부율을 8:2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부율조정을 통해 투자/배급 부문의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문화부의 의지는 스크린쿼터 축소를 전제한 상태에서 한국영화시장을 지배하게 될 헐리우드 직배사의 수익률 제고를 부추기는 것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말한다면서 국부 유출을 조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영화계가 줄곧 제기해 왔던, 스크린쿼터제의 존재를 전제한 상태에서의 한국영화와 헐리우드영화 간 불공정한 부율 개선 요구를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필요조건을 제거해야 충분조건의 일부를 해결하겠다는 이런 태도는 마치 범정부 차원에서 쿼터축소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유령 3 -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 다양성을 해친다는 흑색선전 
최근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일부 악의적인 여론이 돌고 있다. 원칙적으로 스크린쿼터는 헐리우드 독과점을 견제하는 장치이므로 한국영화 내의 다양성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오히려 스크린쿼터 축소는 간접적으로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쿼터일수가 146일인 지금도 블록버스터급 한국영화가 쿼터의 대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저예산, 독립예술영화는 설 자리가 부족하다. 쿼터 일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쿼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저예산영화, 독립영화의 말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한국 국민들을 감동시킨 <동막골>, <너는 내 운명>, <친절한 금자씨>, <말아톤>, <왕의 남자>와 같은 저 예산 영화들을 볼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영화의 국제경쟁력 저하를 야기하고, 급속한 시장점유율 하락, 해외수출 저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령 4 - 한미FTA를 통한 국익 증대론
이번 사태의 핵심 요체는 한미FTA를 체결하면 우리에게 어떤 국익이 돌아오는 것 인가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국민들에게 국익의 실체를 제대로 제시한 적이 없다. 자동차, 반도체, IT 산업의 일부를 제외한 농업과 서비스, 제조업의 대다수 분야에서 미국과 1:1 경쟁이 안 된다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3개의 경쟁력 있는 분야를 주도하는 4대 재벌에게는 상당한 이익이 예상될 수 있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2001년 미 국제무역위원회와 2004년 미 국제경제연구원이 발표했듯이 한미 FTA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21% 증가하는 반면, 미국의 대한수출은 54% 증가할 것이고, 현 98억 달러의 적자를 보이는 대한 무역수지가 4년 내에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이익 때문에 미국은 94년 이래 한미FTA 체결을 강력히 희망해 왔다. 98년 IMF 처방으로 자본시장을 개방한 이래 국민의 정부 시절만도 80조원의 자본이득을 본 것도 모자라서 아예 한국경제를 미국 투기자본의 카지노판으로 만들자는 것인가? 그에 반해 우리 영화의 발전으로 우리가 얻고 있는 이익은 얼마나 실감나게 큰 것인가? (2004년 기준 연간 1조 2천억 원의 직접매출과 5조 5천억 원의 부가가치생산효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경제성장에 기여하며 국민적 자부심을 갖게 하는 유일한 효자가 바로 한국영화가 아닌가? 군사적 힘에는 밀리지만 문화경제적으로 미국을 자국시장에서 능가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은 근대화 이래 우리가 처음으로 맛보는 쾌거이다. 이런 자부심의 "필요조건"인 스크린쿼터를 왜 줄여야 하는가? 비열한 수사학을 제거하고 나면 답은 간단하다. 미국의 압박 때문이다. 
재경부는 대미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다고 해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량이 줄어 전체적으로 상쇄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어떤 품목, 어떤 교류의 변화에 의한 것인지는 함구하고 있다. 한 나라의 운명을 바꿀 국제협정을 체결하려 하면서 뜬구름 잡는 미래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미국의 국익을 한국의 국익으로 착각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국민적 인기어가 된 ‘국익’의 국적 자체가 의심스러운 지경에 처해진 것이다.


소수 유령들의 '집단이기주의"에 의한 진정한 국익의 파괴 
따라서 쿼터 축소 반대는 단연코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의가 결코 아니다. 쿼터 축소를 전제로 한 한미FTA 추진이야말로 미국의 국익 증대로부터 실익을 얻게 될 극소수의 한국 재벌-경제관료 연합의 집단이기주의인 것이다. 우리 영화인들이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매도로 여론을 호도하며 한국 문화주권과 경제주권은 물론 국익 전체를 미국에 팔아넘기려는 이들과 결단코 투쟁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쿼터축소 반대투쟁은 국민의 문화적 권리 보호와 문화산업의 자립적 발전을 위한 정당한 투쟁이다. 쿼터 축소로 한국영화가 크게 위축되면 영화인들만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한국영화를 볼 문화적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므로 국민 전체의 손실이다. 또 지난 몇 년간 "한류"를 통한 국가 브랜드 이미지의 전 세계적 제고는 단군 이래 최대의 문화외교적 성과였다. 그간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시각을 폄하에서 사랑과 존경으로 변화시킨 힘은 임진왜란 이후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으로 수출되는 문화상품은 수출 자체로 벌어들이는 수익 뿐 아니라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국가브랜드 홍보효과와 한국제품의 이미지 제고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압력이 단지 한국영화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방송쿼터, 외국인 방송주식지분율 제한 등 국내 영상산업 전반의 보호장치의 폐지를 겨냥하고 있다. 실제로 헐리우드와 미국의 재계는 한미FTA를 통해 중국과 아시아 시장을 쉽게 개척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이렇게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아시아의 문화 트랜드를 주도하며 신천지를 개척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쿼터축소와 한미FTA를 통해 급팽창하고 있는 아시아 영상시장 전체를 미국이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문화인들과 유네스코 역시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세계영화시장의 85%를 독점하고 있는 헐리우드에 유일하게 맞서온 한국영화의 힘이 스크린쿼터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난 해 10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이 국제적으로 채택된 현실적인 근거 역시 한국의 스크린쿼터 운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전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의 실익에서 오는 부스러기 몇 개를 주우려는 소수 재벌-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한국 사회 전체가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 전 세계 영화인과 문화예술가들로부터 개망신을 당해도 좋다는 것인가? 


'약체정부'의 비열한 여론 조작과 미국의 노골적 협박에 당당히 맞서자!
그렇다면 이렇게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손익 분석 앞에서 왜 노무현 정부가 앞장서서 한미FTA 체결을 서두르는가? 그 답은 한미FTA가 경제협정 차원을 넘어서서 정치군사안보 차원을 포함하는 포괄적 협정이 될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에 들어 있다. 결국 남북 관계를 흥정의 고리로 걸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가 모든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면서 FTA 체결을 마무리해낸다면 북핵 압박과 경제봉쇄를 풀겠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협박에 다름 아닐 것이다. 
IMF 경제위기를 탈출했던 국민의 정부 5년간 최악의 경제조건에서도 한미FTA 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한미투자협정(BIT)조차 체결하지 않았던 우리 정부가 현재 잘 나가는 한국의 영상산업 전체는 물론 농업과 대다수 산업 기반 전체를 파괴함과 아울러 거대한 국민적 투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또 다른 이유를 상상할 수 있을까? 물론 정부가 주장하듯이 한미FTA가 GDP 2%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규모 전체가 성장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이익과는 무관하다는 것은 이미 IMF 경제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두 정부가 실증적으로 입증해 왔다. 고용 없는 성장, 내수시장과 무관한 수출 증대, 정규직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점증하는 사회적 양극화와 급속한 범죄증가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양극화 과정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자들이 바로 '삼성'과 4대 재벌, 강남의 부자들이다. 그래서 민주화의 가장 큰 수혜자가 자본이고, 한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회 양극화의 '모범'을 보이는 미국과 100% 개방 형태의 FTA를 체결하는 것이 이런 흐름에 휘발유를 붓는 격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급부상, 유럽연합의 확장은 미국과 일본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자신의 뒷마당으로 생각해온 중남미 지역에서 좌파정부가 확산되는 현실변화로 당황해 하고 있다. 또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결국 정당성 확보에 완전히 실패한 이라크전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함과 아울러 국내에서는 베트남전 때와 비슷한 파급효과가 나타나자, 화살을 이란과 북한 등지에 돌리기 위해 고심 중이다. 그밖에도 지난 60여 년 간 유지해온 미국 헤게모니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는 징후는 수없이 많다. 헤게모니가 약화되면 대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일본의 급속한 우경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치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과 일본에 종속되어 온 한국사회가 87년 민주화 이후 어느 정도 종속상태를 벗어나 자립의 길을 개척한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현상적 자립이 구조적 종속을 능가할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리며 치사하게 말 돌리지 말고 국민들에게 솔직히 사정하는 것이 낫다. 큰 형님이 "뒤에서 팔을 비트니까" 좀 봐달라고! 
 하지만 "팔을 비튼다고" 팔이 부러지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공갈협박을 할 수는 있으나 세계경제 11위인 한반도의 허리를 부러트릴 수는 없다. "약체 정부"는 공갈에 놀랄 수 있으나 국민들까지 약체는 아니다. 이 엄중한 국제정치경제의 현실역학 속에서 미국의 공갈협박에 전율하는 "약체 정부"에게 한반도의 운명을 무작정 맡겨둘 만큼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만만하다고 생각하는가? 2004년 총선 때의 지지율 60%가 이제 바닥을 치는데도 그 이유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미국도 이런 식의 노골적 압박을 철회해야 한다. 한반도 전체를 반미투쟁의 용광로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우리가 미국을 동맹국으로 인정해온 것은 호혜적인 한에서이지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주권을 박탈 당하면서 까지는 아닌 것이다. 
미국은 ‘한류’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영화를 앞세워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문화산업 전체를 무너뜨리려 한다. 바로 이것이 그토록 집요하게 미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매달리는 이유다. 결국 한국영화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 한 미국의 압력과 횡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래서 미국은 자국의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에 로비를 하고, 주한미국대사를 앞장세웠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를 통해 한국 내 여론을 만들어 가며 한국영화를 굴복시키기 위해 파렴치한 작태를 벌이고 있다. 
 미국은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잃고 한국의 영화 팬들이 할리우드의 지배에 놓일 때까지 끊임없이 물고 늘어질 것이다. 지금은 73일을 요구하지만, 일단 한미FTA가 체결되고 나면 다음에는 50일, 30일, 10일 아니 아예 폐지하라고 할 것이며 그 어떤 형태의 보조금도 세제혜택도 막아 버릴 것이다. 사태의 본질은 스크린쿼터 축소의 일수 문제가 아니라 한국영화의 대미 경쟁력 자체에 있는 것이다. 급증하는 아시아 시장 전체에서 잠재적 경쟁 가능성을 지닌 한국영화 자체의 싹을 잘라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싸움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이유다. 


국가적 지원 의무와 대안적 세계화의 길 
영화인들이 대안 없이 축소 반대만 주장하고 있는가? 거짓말 마라. 우리는 필요조건의 하나인 쿼터만이 아니라 다양한 충분조건이 시급하다고 주장해 왔다. 배급만이 아니라 제작과 상영 등 모든 차원에서 다양한 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영화는 콘텐츠의 시대인 21세기 경제의 엔진이므로 IT, BT 산업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관료들은 아직도 20세기 하드웨어시대의 관습에 젖어 콘텐츠에 대한 투자 마인드를 결여해 왔고 투자의 선결 조건으로 쿼터 축소를 은밀히 요구해 왔다.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2003년 12월 대통령 보고대회에서 밝혀졌듯이 영화산업/문화산업은 2010년 대에는 GDP 10%대가 넘는 한국경제의 제1산업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산업에 적극 투자하지 않는 게 일국의 경제정책인가? 

이제 1천만 시대를 연 2단계 도약 단계를 맞아 한국영화는 더 폭넓은 제도적 정비와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스크린쿼터는 본래 세계영화 시장에서 민족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이다. 지난 10년간 이 정책이 성공한 현 시점에서 이제는 한국 영화 내부의 다양성 증진을 위한 보완책이 시급하다. 예술영화전용관과 시네마테크 대폭 증설 및 관련 전문배급회사 지원, 독립저예산영화 제작지원 대폭 확대, 수익률 개선을 위한 부율 합리화와 완성보증보험제도, 전산망 완비 등이 그것이다. 분명코 말하지만 이런 정책적, 제도적 지원은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가가 아니라 정부와 재계가 수행해야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점을 환기하자. 2006년 들어 한국영화산업은 시장점유율 50%대를 유지하면서도 적자 상태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가 영화인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충분조건 충족요구를 계속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쿼터축소 방침을 철회하고 충분조건 충족을 위해 정부와 재계는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한류열풍에서 예상되는 아시아시장의 진출에서 우리가 새로운 패권주의자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공동제작협정 역시 제도화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 강요하는 일방적 세계화, 자유롭지만 극심하게 불공정한 경쟁 정책에 맞서 <호혜적인 개방>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상호발전과 문화다양성을 증진하는 세계화>를 촉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는 이런 모든 이유에서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제도로 더욱 발전해야 한다. 이미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이 제도를 대안적 세계화의 모범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 우리는 이를 통해 21세기 문화경제의 최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인들이여 자부심을 갖고, 미국의 공갈협박과 미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약체정부"의 비열한 수사학에 당당히 맞서자.
 1905년 고종황제와 일부 친일 관료들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막강한 군사적 압력과 경제합방이 가져올 사탕발림에 눈이 멀어 한반도의 미래를 팔아먹고 만 '을사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정확히 100년이 지난 오늘 노무현과 일부 친미관료들의 밀약에 의해 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지난 세기 천추의 한이 되었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이제 양자의 차이와 공통점을 정확히 비교하면서 진정으로 미래의 국익을 따지는데 온 국민이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통해 문화주권과 한반도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이 필요함을 선포하며 이 투쟁을 영화인들과 문화인들, 농민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전 국민이 참여하는 범국민 투쟁으로 발전시켜 갈 것임을 비장한 마음으로 결의하는 바이다. 
한 시대의 영화문화가 세계적인 공감과 열광을 이끌어낼 만큼 높은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과 정치적 민주주의 개화, 철학과 다양한 예술적 성취들이 한 데 모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모여졌다고 해서 진정한 영화문화가 꽃피는 것은 아니다. 이 모두를 하나로 꿰어 열린 무한한 공간에서 진실로 양극화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삶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킬 수 있을 때 그 꽃이 피는 것이다. 20세기를 힘겹게 달려온 한국인과 전 아시아인들의 영혼을 울리고 있는 이 힘은 그간 미국과 일본 등의 강대제국들이 만들어 놓은 인종의 벽을 단숨에 뛰어넘어 버리는 매혹적인 위력을 갖고 있다. 오늘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이라는 범선을 조정하여 이 무한한 영혼의 바다를 힘겹게 항해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과 한국 정부의 위협 속에서 늘 침몰의 위기에 처해졌지만 지난 10 여년 이상 단호히 견뎌 온 것은 한국과 아시아인들의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전적인 지지 탓이다. 우리에게 자부심을 불어넣고 미지의 놀라움과 바닥없는 감동의 무게를 선사하는 한국영화의 빛나는 이 항해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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