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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안들이 싫어하는 신문 '리얼뉴스' 주목해 주세요.
게시물ID : comics_194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난반메갈이다
추천 : 11
조회수 : 5754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09/20 09:11:30
리얼뉴스라고
 
메갈리아 비판 칼럼을 르몽드 디폴로마티크에 기고하셨던 이영희 정의당 여성분과위원이 참여하고 있는
인터넷 언론입니다.
 
메갈리안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관련글도 많습니다.
제가  메갈리아와 트페미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언론을 찾아서 응원하고
트위터 퍼나르기 운동등을 최초 제안했는데요.
 
이번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계속 지인들 통해서 알게 된 정보로  이곳을 알게 되었고
다시 글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분도 있을테지만,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아서
리얼뉴스에 대한 정보와 어떤 기사들이 올라가 있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래 리얼뉴스 링크이고요.
 
http://realnews.co.kr/
 
어제와 오늘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가 류근 시인의 기사를 익명으로 써서
지금 실검에 오르고 있는데.  그 황수현 기자의 기사를 비판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아래는 그 전문 입니다. 살펴들 보시고 기사 트위터에 퍼나르고 주변에 한번씩 소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올린 이  글도 여러곳에 퍼날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타 커뮤니티에서도 읽고 동참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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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의 <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 – [촉·감] 한국 문단과 여혐> 기사를 보자.
먼저 인터넷에서 널리 비난받았던 맥심코리아 표지가 이미지로 뜬다. ‘여성살해’를 희화화했단 취지로 비난받았다는 이 이미지는 글에서 비난하는 현상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을까?
맥심코리아 표지
맥심코리아 표지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다. 글 내용을 모두 분석하고 보면 과한 유비로 보인다. 막상 읽어보면 글 내용은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1) 익명의 청탁권력(?)에 대한 고발
2) 그 익명 시인의 시의 ‘여성 혐오적’ 성격에 대한 고발
3) 김현 시인의 문단 내 성차별 고발에 대한 소개(‘끼’ 비난에서 ‘여성혐오 범죄 기록물’ 제안까지)
류근 시인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에 대해 류근 시인이 이 익명의 시인이 자신임을 드러내고, 자신이 청탁을 한 건 아니라는 의견을 페이스북에 표명했다고 한다.
류 시인이 자신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오직 처세의 영역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류 시인의 억울함에 일리가 있다면, 그 기사를 방치하란 요구는 1) (익명 시인이 류근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때엔) 자신의 이름에 먹칠이 가는 것을 방관하라거나 2) (익명 시인이 류근임을 쉽게 유추할 수 없을 때엔) 익명으로밖에 쓰일 수밖에 없었던 장난질을 묵과하라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류 시인의 ‘본인 인증’ 자체엔 탓할 바가 없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론 다른 맥락이 있다. 류 시인의 ‘본인 인증’이 그의 약소한 팬덤을 움직여 황 기자를 공격했다는 정황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죽이니 살리니 하는 원색적인 용어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선 류 시인이 모종의 책임감을 느끼거나, 적어도 자제를 요청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황 기자가 자신의 기사의 인터넷 파장을 모두 예측할 수 없었듯 이는 류 시인에게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류근 시인(출처 KBS)
류근 시인(출처 KBS)
또한, 나는 이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일의 파장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 시인은 슈퍼스타가 아닌 데도 그 약소한 팬덤으로 황기자 개인을 충분히 괴롭힐 수 있었다.
가령 메갈리아 등에 온정적인 이들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고 반박하기 이전에 그 사회적 약자들의 집합이 충분히 일개인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혹자는 팬덤 반응의 부적절함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들이 황 기자를 비난하는 내용에 도를 넘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거야 그렇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런 의견은 이런 종류의 문제에서 널리 통용되는 논점이탈이다. 어떠한 글이 논쟁적인 사안에서 한쪽 편을 들면 악플은 달리기 마련이다.
그 글이 얼마나 완성도가 있는지 혹은 얼마나 부실한지 아닌지와는 상관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악플의 부적절함을 쳐다보며 글쓰기를 옹호한다면 우리는 논쟁적인 글쓰기의 완성도에 대해서 할 말을 잃게 된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그들’을 자극한 글은 언제나 옳다”란 식의 도그마에 빠지게 된다.
다시 위에 정리한 글의 구조를 보자. 이 글의 구조는 어째서 이러한가.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한국 문단의 여성혐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므로, 황수현의 기사는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뭉뚱그리기 어렵다.
논점 2)는 (익명으로 처리한) 류근의 시의 ‘여성 혐오적’ 성격을 비평하는 내용이다. 정당하다. 그러나 이걸 논점으로 삼으려면 여러 사람의 시를 실명으로 언급했어야 했다.
행여 이번 주에 류근이 특히 미울 이유(그게 아마도 1)일 테지만)가 있었다고 해도 류근 한 명이라도 실명으로 했어야 했다. 그래야 반론도 가능하고 논의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평’의 영역이다.
‘고발’인지 ‘비평’인지 도통 의도를 모르겠다
그런데 이 글은 이상하게도(!) ‘고발’의 형식을 띄고 있다. 그리고 이 ‘고발’이 정당하려면 1)의 상황이 심각한 것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류근의 항변을 들어볼 것도 없이 이 글만 봐도 1)의 상황은 전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해당 논점을 반영한 글의 도입부를 보자.
“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
지방에 출장 가 있는 동안 한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최근 시집을 낸 시인은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시집 기사를 쓰지 않은 것에 서운함을 토로했다고 했다. 읽은 시집이다. 그러나 나는 시집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않았을뿐더러 토요일자 신문 맨 뒤에 시 한 편씩을 소개하는 ‘주말의 시’란 에도 싣지 않았다.
여기 어디에서 기자가 느낀 ‘압력’이 전달되는가? 그저 ‘불쾌감’만 전달될 뿐이다. 직접 통화를 한 것도 아니니 글에 쓰지 않은 여타의 맥락을 짐작할 여지도 없다. 녹취록 따위도 없을 것이다.
사실 위 서술만 본다면 기자 스스로가 이 익명의 시인에 대해 ‘권력’의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찌질함’의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황수현 기자의 다른 기사(출처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의 다른 기사(출처 한국일보)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도출된다. 대체 이 얘기는 왜 하는가? 이게 공적인 가치가 있는 얘기인가?
만약 한국 문단의 모종의 현실에 대해 꼬집는 취지라면, 왜 한 사람을 특정해서 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굳이 한 사람을 특정하려고 기사 본문에서 그렇게 애썼다면, 왜 이름은 굳이 가렸는가?
논점 1)은 ‘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란 제목을 구성한다. 물론 제목이야 편집부에서 뽑았을 것이다. 아마도 기자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쪽은 부제인 ‘한국 문단과 여혐’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논점 1)은 ‘한국 문단과 여혐’이란 주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저게 심각한 청탁의 문제도 아니었다면, 왜 이 글의 도입에 등장하는지 알 수가 없다.
논점 3) 역시 비슷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황 기자가 소개한 김현의 분개 중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그가 거기서 본 것은 여자 시인들 이름을 열거하며 “따먹고 싶은 순으로” 점수를 매기는 남자 시인들, 동료 여자 시인에게 “걸레 같은 년”이라고 욕하며 스스로 ‘명예 남성’을 자처하는 여자 시인들이다. “아 저 끼가 말로만 듣던 그 끼구나. 술에 취하면 여자 시인들 아무한테나 걸레 같은 년이니, 남자들한테 몸 팔아서 시 쓰는 년이니 하는 바로 그 끼로구나. ‘술이 죄지, 술에서 깨면 사람은 착해’라는 말을 들으며 점점 끼가 된 그 끼구나.”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가) ‘여성 혐오적 문학작품’과 나) ‘여성 혐오적 삶의 행태’는 논리적으로 별개다. 그게 어떻게 별개냐 ‘광광 우럭’하기 전에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라.
첫째, 여성 혐오적 시를 쓰는 시인이 술자리에선 조용한 인물이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는가?
둘째, 술자리에서 온갖 진상질을 부리는 이가 문학작품이나 기고문에선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광경을 상상할 수 없는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둘 다 우리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가)와 나)는 어떤 문맥에서, 큰 틀에서 묶어서 비평할 수 있을지언정 논리적으론 별개다.
어떻게 해석해봐도 논점이 정리가 되지가 않는다
심지어 윗글에서조차 그렇다. 다시 논점 세 개를 고발하려는 대상을 따라 정렬해보자.
1) 청탁권력 류근
2) 여성 혐오적인 류근의 시
3) 김현이 고발한 ‘술자리 xx끼’
여기서 1)과 3)은 실제의 류근과 상관없다. 적어도 윗글에서는 그 상관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1)에 대해선 본문만 봐도 류근이 서운함을 토로했을 뿐 딱히 권력적 처신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3)에 대해선 일단 글로 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그냥 갖다 붙여놓았다.
하지만 글을 저렇게 쓰면 사람들은 대체로 저 익명의 시인이 ‘엄청난 청탁권력’이며, ‘술자리 끼’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어서 저렇게 칼럼을 쓴 것으로 여기게 된다. 글을 이렇게 써도 되나?
이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가 있다. 사실 글을 꼼꼼히 읽는다면 논점 2)와 3)이 따로 놀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논점 1)과 2)는 ‘여성혐오’로 묶이진 않지만 한 사람의 에피소드다. 논점 2)와 3)은 ‘여성혐오’로 묶이긴 하지만 각각 한 사람의 에피소드와 한국 문단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적한 것이다.
김현 시인(출처 서범석의 시와 풀꽃 사랑)
김현 시인(출처 서범석의 시와 풀꽃 사랑)
더구나 ‘한 사람’과 ‘문단 전체’라는 차이만 있는 게 아니라 앞서 지적했듯 ‘작품의 여성혐오’와 ‘삶의 여성혐오’란 별도의 범주에 대한 지적이다. 글 자체로는 류근과 ‘술자리 끼’를 연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독자가 오해하면 무조건 필자의 잘못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통용되는 요즘의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러니 이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선의적으로 봐준다면, 이 글은 한 마디로, 다만 문제의식만 인정될 뿐 너무 성긴 글이다. 그런데도 문제의식만 올바르면 옹호할 수 있을까?
“한국 문단의 여성혐오 조류를 비판한 글로 보면 되지 왜 광광 우럭하냐?”라고 반응해도 될까?
류근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어떤지와 상관없이 황 기자조차도 류근의 술자리 사생활을 폭로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건 너무 위험하고, 대체로 공적인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논란을 일으킨 한국일보의 기사는 비평이 위치해야 할 곳에 고발을 놓았다.
그리곤 그 고발이 사실이 아니라는 당사자의 항변을 듣자 ‘여성혐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는 다른 이들이 그저 비평으로 들어달라고 변명을 한다.
그리고 류근이 억울한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는 그저 논점 바깥으로 사라진다. 이래도 될까?
매체가 매체답지 않은 것이 문제다
나는 이 글을 공적인 문제의식을 살려서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이 그중 어떠한 길도 가지 않은 것이 참으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제 제기가 ‘여성혐오’ 비판이나 페미니즘 담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그 쉽지 않은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상기해보는 기회가 되기만을 참으로 바랄 뿐이다.
생각해보자. 이렇게 지면 기사가 고발인지 비평인지 모를 글을 올리고 논란이 되니 SNS에서 류근의 시의 구절구절을 올리면서 ‘여성 혐오적’이라고 난도질하고 있다. 매체가 해야 할 비평을 대신하고 있다고 믿을지 모르나, 역시 일종이 조리돌림이다.
SNS란 매체의 성격상 어쩔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지면은 ‘고발’과 ‘비평’을 더욱 구별하고, ‘고발’할 일이 아니라면 ‘비평’의 자세로 문학작품을 대했어야 한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여성혐오’란 단어가 다른 나라에서 그런 방식으로 형성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마치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것마냥, 언론의 영역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SNS의 분노한 대중의 아가리에 밀어 넣을 땔감들을 골라내느라 바쁘다.
SNS가 주인이고 언론이 하인인 것처럼 보인다. 이럴 거면 페이스북과 트위터만 있으면 되지 매체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간 한국 페미니즘 진영은 한국 진보 담론의 마초성 내지 꼰대성을 ‘자신들의 대의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문제 제기를 억압하는 이들’이란 모습으로 정리해왔다. 그렇게 볼 소지가 있었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는다’란 문구가 보여주는 것도 그러했다. 하지만 저 ‘대의’의 위치에 들어가는 것이 바뀔 때 페미니즘과 진보 담론이 어떻게 처신하게 되는지가 흥미진진하다.
진보 담론의 사건 대처는 적절할까?
내가 보기에, 진보 담론은 ‘하던 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대의’의 영역에 ‘페미니즘’이 들어오고 심지어 그것이 대세가 되자, 역시 ‘하던 대로’ ‘자신들의 대의에 충실하면서 다른 모든 종류의 문제 제기를 억압하는 이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진보 담론의 방식을 맹비난하던 페미니스트들은 과거와는 다르게(사실 자신들의 영역 내에선 다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자) 자신들의 대의만 충족하면 무슨 종류의 문제가 발생하든 그건 별 게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광어·우럭 철도 지나고 전어·방어 철이 왔는데,이놈의 논란은 언제까지나 이 모양 이 꼴일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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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11:06:03추천 3
자꾸 엑박이 보이는데 저기 그 뭐야 맥심코리아 표지가 매우 궁금한데요...

딴것도 궁금하지만 저건 진짜 매우매우 엄청엄청 궁금해요
댓글 2개 ▲
2016-09-20 15:06:10추천 3


2016-09-22 00:30:11추천 0
야 진짜 이거 얼마안된 사건인데 왜이렇게 오래된 것 같지?
2016-09-20 15:06:19추천 0
아마 트렁크에 발 빠져나왔는 사진이 아닐까요? 추측입니다.
2016-09-20 12:56:27추천 1
들어가서 봐보니 괜찮네요. 여기도 찜.
일단 르몽드부터..
댓글 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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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오리상륙작전
2016-09-20 15:01:53추천 0
댓글 0개 ▲
2016-09-20 15:38:42추천 11/15
기사 내용은 좋은데 이 글을 쓴 기자가 한윤형이에요. 데이트 폭력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라서 이 사람이 쓴 글들이 맍이 묻히더라구요.

저도 이 사람이 쓴 좋은 글을 딴데다 소개한적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윤형이란 말을 듣고 그 다음부턴 안 퍼올라고 하고 있습니다.

딜레마네요. 결함이 있는 사람의 좋은 글을 어떻게 봐야할지요. 결함을 떼놓고 좋은 부분만 봐야한다면 한경오, 시사인등의 모든 행위를 인정해줘야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댓글 8개 ▲
2016-09-20 17:17:41추천 4/5
한번 실수로 앞으로의 모든 것들이 다 평가받는 시대라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저 신문사들은 영원히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2016-09-20 17:21:56추천 2
그리고 귀 사건과 메갈리아 논쟁은 결이 다른 부분이기도 하고요.
정치인들 범죄 저지르고 사면복권까지 되는 시대에. 과거의 과오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앞으로의 것들을 평가 하는건 부당하다고 생각되요.
그건은 그건대로 평가 받고 이건 이것대로 평가 받는게 맞는 거라고 봅니다.

pedant 님에 대한 개인 반박은 아닙니다.
2016-09-20 18:10:46추천 10/5
따로 떨어져서 평가받으면 좋겠죠. 그 부분은 두가지 선행이 따릅니다.

첫째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있느냐. 진보언론이 지금껏 해온 좋은 일과 달리 이번에 비판받는 이유는 친메갈에 대한 사과가 없어서입니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 없으니 예전에 잘한점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한거죠. 단, 진정한 반성이어야합니다. 한윤형에 대해 잘 알지못하다가 데이트폭력 반성글을 봤는데 약간 애매하더라구요. 글잘쓰는 이의 변명문같은.
2016-09-20 18:13:42추천 8/5
둘째 사안과 무관한지 봐야합니다. 어찌됐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있는 상황에서 한윤형이 메갈반대글을 써도 반대편입장에선 너가 여혐이기때문에 그렇다는 인신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원죄죠. 이 부분이 특히 걸려서 메갈반대논리에 이분 글을 퍼왔다가 공격당했습니다. 하필이면 여성 폭력과 연관돼서 안타까워요. 글 내용은 진짜좋은데
2016-09-20 18:51:19추천 21
pedant/
죄송하지만 아직 사실관계가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은 일에 대해 낙인 찍는 것이 정당하다 보시는지요
한윤형 씨의 경우 쌍방이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윤형씨의 주장에는 자세한 정황과 목격자도 존재합니다
아직까지 공방이 오고가는 가운데 피해자 중심 원칙이 존재하더라도 낙인 찍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또한 낙인 찍는 이유 자체가 정당하지 않았다면요?
정말 사건의 맥락에 대해 본인이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한윤형씨의 데이트폭력 건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pedant님이 동조하며 함께 낙인찍는 것과는 다르게요
2016-09-20 21:47:37추천 6
저도 그동안 한윤형씨가 데이트폭력범(?)이라고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었는데 아직 결론이 난건 없고 상반된 쌍방 의견이 맞서고 있는 중이라 한윤형씨 개인에 대한 판단은 일단 자제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윤형씨의 데이트폭력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당시 한윤형씨를 폭행범으로 규정한 진보진영 일각(한윤형씨가 한때 몸담았던 노동당을 포함해서)의 대응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런식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반성폭력 운동의 장해요소가 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2016-09-20 22:51:44추천 3
원글님의 의견은 동의하기가 힘드네요.
그런 논리라면 독자들을 도다리 취급한 작가여도
그 작품이 재밌으면 계속 코인 주며 봐야하는거 아닙니까? 음주운전한 연예인도 음주운전과 연예활동과는 관계가 없으니 그냥 방송 나와야 하는거 아닌가요?
댓글들 읽어보니 명확히 밝혀진게 아니라 아직 공방 중이네요. 그럼 일단 보류하는게 맞지 않나 싶네요.
2016-09-21 06:48:18추천 2
개인적으로 저자, 작가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빚거나 작품 외적으로 맛이 가거나 간 상태였음이 드러나고
반성이나 회생의 기미가 영영 없거나 불가능하다 싶으면 좋게 생각해온 작가 작품 모두 버리는 쪽입니다.
이왕이면 윤리적 소비를 하자는 쪽이라 웬만한 불매 기업 제품들은 꾸준히 불매하고 있기도 하고요.

한윤형은 수년 전부터 글이 좋다는 생각에 주목해온 쳥년인데
진보 성향 논객으로서 인권 관련하여 취해온 스탠스가 있는 마당에 데이트 폭력 얘기가 나오길래
뭐랄까 표리부동함에 실망하게 되면서 이후로 챙겨 보거나 관심 두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아래 블로그에 한윤형 본인이 정리해 올려놓은 글들을 보게 되면서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달까 암튼 판단이 바뀌더라고요.
http://201506.tistory.com/archive/201609

한윤형 본인 역시 사람들 많은데서 여친 손에 뺨 맞고 안경 날아가고
술 자리에서 역시 여친 손에 그릇으로 머리를 찍혀 피가 흐르는 등
치고 받고 파란만장한 것이 상호 폭력적인 사이였더라고요.
2016-09-20 15:45:16추천 2
꽤나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뉴스 사이트로군요.
댓글 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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