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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빙빙 돌던 한 마리 매가 산 어딘가로 갑자기 급강하 하였습니다.
"아앗!"
다람쥐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에 든 도토리를 떨어뜨리며 공중으로 붕 떠올랐습니다. 몸부림 쳐보았지만 매섭게 움켜쥔 매의 발은 꿈쩍도 안했습니다.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을거라 예상은 했지만 굴 속 내 새끼들은 어떡하지?'
다람쥐는 나무 굴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새끼들이 우선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집은 점차 멀어지더니 종국에는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람쥐는 자신을 잡고 날고 있는 매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거칠고 날카로운 부리를 앙다물고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매는 매우 사나워 보였습니다.
잠시 지켜보던 다람쥐는 한 숨을 쉬며, 체념한 채 축 늘어졌습니다.
아래로 숲과 건물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넌 좀 이상하군"
날던 매가 움켜쥔 다람쥐를 힐끔 보며 말했습니다.
"보통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끝까지 발악해야 정상인데, 별로 살고싶지 않나보지? 뭐 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아 좋긴 하지만."
그 말을 듣고 힘없이 다람쥐가 물었습니다.
"...발버둥쳐서 빠져나간 먹이가 있었어?"
"음... 뭐...세네번 쯤? 다들 너보다 좀 크긴 했었지만."
그 말을 들은 다람쥐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 다람쥐를 보고 매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살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다니, 정말 한심하군, 한심해."
그러자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이 높이에서 발버둥쳐서 떨어진다고 해도 둥지를 찾아갈 수 없고,
또 크게 다쳐서 새끼들을 만난다해도 키울 수 없을테니까."
"새끼들이 있나?"
"그래"
"몇 마리나?"
"다섯 아이들"
"너 말고 새끼를 키울 다른 다람쥐는 없나?"
"몇 일전, 지금 나처럼 사냥을 당했는지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매는 잠시 아무말없이 비행을 하였습니다.
침묵을 깨고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너무 말도 안되는 부탁인줄은 알지만, 내 새끼들을 딱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주면 안될까?"
"먹이일뿐인 너에게 내가 왜 그런 관용을 베풀어야하지?"
매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내 새끼들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 굴 속에서 다 굶어죽을꺼야.
내가 먹이를 모은 다른 저장창고의 위치를 알려주지 못했어.
그 위치만 새끼들에게 일러주면 그걸먹고, 그 후엔 자기들일 알아서 커갈 수 있을꺼야.
그것만 알려줄 수 있도록 잠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자비를 베풀어주면 안될까?"
"넌 그냥 먹이일뿐이야."
매는 차갑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매가 말했습니다.
"둥지에 내 새끼들은 몇 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번번히 내가 사냥에 실패하는 바람에...
오늘 사냥에도 실패했다면 내 새끼들은 전부 굶어죽고 말꺼야."
그 말을 듣고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너에게 잡힌 이상 반드시 네 어린자식들의 먹이가 되어야 돼. 이해해."
"이해한다고?"
매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난 포식자일 뿐이고, 넌 쥐일 뿐이야. 자기 생명을 빼앗아가는 자를 결코 이해할 순 없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야.
너의 삶 또한 존중하고, 너의 자식들도 역시 소중하지.
그런 자연 속에서 난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만 남겨진 내 아이들에게 일어주지 못한 말에 한이 맺힐 뿐이야."
그 말을 듣고 잠시 묵묵히 비행하던 매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습니다.
"너같이 말이 많은 쥐는 딱 질색이야."
매는 갑자기 선회하여 여지껏 날아온 하늘의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다람쥐는 물었습니다.
"어... 어딜 가는거야?"
"잠깐만이야."
"...응?"
"새끼들에게 네가 저장해둔 저장창고의 위치를 알려줘. 그리고... 다시 돌아와."
다람쥐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기쁜 마름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뭐?... 뭐라고?... 정말이야? 정말... 정말 고마워."
다람쥐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매는 묵묵히 날개짓을 했습니다.
자기가 사는 산의 익숙한 나무가 보이기 시작하자, 다람쥐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가득찼습니다. 매는 다람쥐를 잡았던 곳에 그대로 내려놓았습니다.
다람쥐는 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내 다리 하나를 쪼아. 절뚝거리면 도망가지 못할테니까."
"아니, 그냥 갔다와."
"내가 도망가면 어쩌려고?"
"나와 내 자식들의 삶 또한 소중하고 존중한다며. 너는 도망치지 않을꺼야.
나 역시 최소한 네 자식들의 삶은 존중해주고 싶어."
"... 정말 고마워. 꼭, 반드시 돌아올께"
매는 옆의 한 나무 가지 위로 날아올라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람쥐가 뛰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저멀리 꼬물거리는 새끼들 5마리가 어미 다람쥐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나무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는 가지 위에서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바보같은 짓을 한 것인가?'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저 멀리 자기쪽으로 달려오는 다람쥐가 보였습니다.
다람쥐는 숨음 헐떡거리며 가지 위에 앉아있는 매를 올려다보고 말했습니다.
"늦어서 미안해."
"약속은 지켰군."
다람쥐는 매 앞에 머리를 숙였고, 매는 다람쥐의 머리를 쥐고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매는 날면서 물었습니다.
"근데 아이들한텐 뭐라고 하고 나온거야?"
다람쥐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먹이창고 위치, 먹이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 먹이창고를 만드는 법...
아, 그리고 먹이를 구하러 나갈 때는 주변만 조심할게 아니라 하늘을 나는 매를 꼭 조심하라고"
그 말을 들은 매는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다람쥐도 함께 웃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웃다가, 웃음을 멈추고 매가 말했습니다.
"솔직히 후회하지? 돌아온 것."
"아냐, 난 나를 믿고 자비를 베풀어 준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해."
"아이들을 봤을 때, 돌아오기 싫었을텐데."
"......................"
"날 너무 원망하진마. 나 역시 누군가의 부모니까."
"... 원망안해. 나와 같으니까."
"... 매와 다람쥐와 같다고?"
"자식과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하나야. 그건 다 같아."
다람쥐가 말했습니다.
잠시 후, 매는 저 멀리 아파트 단지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이 아파트 단지만 지나면 저 숲에 내 둥지가 있지."
"그래, 아이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을꺼야."
"고통은 걱정하지마, 널 산채로 내 자식들에게 던져주진 않을꺼니까.
고통없이 한 번에 숨을 끊게 하는 법을 알아."
"그래, 끝까지 자비를 베풀어줘서 고마워."
매가 아파트 단지 위를 날고 있을 때, 통통하게 살이 찐 닭처럼 보이는 비둘기 무리가 보였습니다.
그 비둘기들은 아파트 단지 내에 말리려고 내놓은 호박들을 열심히 쪼아먹고 있었습니다.
문득 매는 저 뚱뚱한 닭둘기를 잡아 새끼들에게 먹이고,
이 말 많은 다람쥐를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는 잠시 다람쥐를 내려놓기 위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아래로 나려갔습니다.
다람쥐는 매가 갑자기 아파트 단지 아래로 내려가자, 이상해서 매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때,
매의 몸에 무언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람쥐에게까지 그 진동이 전해졌습니다.
매는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땅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땅에 내팽겨쳐진 다람쥐는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의 여파 때문인지 주변의 수 마리의 비둘기들이 동시에 푸드덕 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다람쥐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매는 아무런 요동도 없이 몸이 굳은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괘...... 괜찮아?"
매는 숨이 끊어진 듯,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다람쥐도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온몸이 점점 싸늘하게 발끝부터 굳어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떤 왁자지껄한 소리와 수많은 발의 진동들도 느껴졌습니다.
다람쥐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말했습니다.
"... 누군가도 우리의 생명이 필요로 하나봐...
이게 자연의 법칙이라면 난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너의 새끼들은 어떻하지?...
둥지에서 너만 기다리고 있을... 너의 가련한 새끼들은......"
다람쥐의 볼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우와~ 열라웃겨!!! 1석2조, 1석2조!!! 열라 신기해.
봤지? 내가 잡았어! 날 스나이퍼 김~ 이라고 불러라.
폰카로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야지. 아, 그리고 오유하고 디씨에도.
ㅋㅋㅋㅋㅋㅋ"
빙 둘러싼 아이들 무리에서 장난끼 많아보이는 한 초딩아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큰 BB탄 총을 등에 둘러매며, 두 동물의 굳어진 사체에 연신 찰칵찰칼~ 폰카의 셔터를 눌러했습니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 속 그 아이들 무리위로, 9월의 푸른 가을하늘이 넓고 높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출처 | 오래된 내 하드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