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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거인아줌마로 불리지 않습니다...네이버펌
게시물ID : lovestory_195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빈
추천 : 10
조회수 : 6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5/12/25 12:41:12
"더 이상 거인아줌마로 불리지 않습니다"
[노컷뉴스 2005-12-25 11:22]    

조용하던 '사랑의 집'이 순식간에 활기가 넘쳤다. "퉁.. 퉁.. 퉁.."하는 소리와 함께 농구공을 하나씩 든 정신지체장애인들이 공을 튕기면서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거인병으로 고통받는 김영희씨(42)가 서있었다. '거인아줌마' 김영희씨. 그러나 이곳에서 그녀는 더 이상 거인으로 불리지 않았다.

거인병(말단비대증). 김영희씨의 병명이다. 성장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돼 뼈는 물론 장기까지 함께 커지는 병이다. 이미 수술 시기를 놓쳐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김영희씨는 "잠들 때 내일 아침 눈 뜰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할 만큼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형편도 넉넉치가 않다. 부천구 오정동에 위치한 8평짜리 단칸방에 살고 있는 김영희씨의 한달 수입은 30여만원. 체육 연금으로 받는 20만원과 양말 실밥 떼는 일을 해서 버는 수입 10만원이 전부다.

그러나 김영희씨 이 돈으로 소녀가장을 돕고,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는 등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김영희씨는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제야 사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거인이 된 내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김영희씨는 80년대를 풍미한 여자농구선수다. 84년 LA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87년 뇌종량 수술과 함께 코트를 떠났고, 이후 거인병으로 인해 20년이 넘도록 고통받아 왔다.

거인병으로 인해 외모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김영희씨에게 고스란히 상처로 돌아왔다. "저게 인간이냐", "남자야, 여자야" 등의 수군거림은 견디기 힘들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세상과 담을 쌓은채 온종일 집에서만 지냈다.

어머니는 자기만의 세상에 꽁꽁 숨어사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98년, 암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간호하던 중 어머니가 뇌출혈로 먼저 세상을 떴다. 그리고 불행은 계속됐다. 암투병을 하던 아버지마저 2000년 생을 달리한 것.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죽기를 결심하고 3개월간 식음을 전폐했다. 130kg이던 체중이 70kg이 됐고, 맥박은 점점 희미해졌다. 숨을 거두기 직전 응급실에 실려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

아버지의 투병생활로 인해 가세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남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방한칸을 마련했다. 좁은 방안에서 칩거하면서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아침마다 "거인나와라!"라고 외치는 소리조차도 무서워 집밖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머니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항상 혼자될 딸을 걱정을 했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영희야, 네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이쁜이에요. 이쁜이"

김영희씨에게는 요즘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바로 '이쁜이'다. 동네 노인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그녀에게 이웃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김영희씨는 매주 독거노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정작 자신은 반찬 하나 없이 컵라면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도, 동지였던 지난 22일에는 팥죽을 쑤어 어른들을 모셨다. 처음에는 그녀를 꺼려하던 노인분들에게 이제 그녀는 딸 같은 존재다.

양말 부업으로 번 돈 전부는 아래층 단칸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녀가장을 돕는데 쓰고 있다. 양말 한 켤레 실밥을 뜯어 받는 돈이 12원임을 감안하면 그 어떤 돈보다 소중한 돈이다.

김영희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광명시에 위치한 '사랑의 집'을 찾아 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 김영희씨의 모습을 보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동네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는 사장님은 짜장면 봉사를, 양말공장에서는 수십켤레의 양말을, 택시기사분은 무료 운송을 도맡아 하는 등 김영희씨와 함께 '사랑의 집' 돕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김영희씨는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른다. 약물 치료로 병이 진행되는 것을 막고는 있지만 여전히 심장과 뇌를 비롯한 장기들이 계속 자라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밤에 눈을 감으면 혼자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전 이제 혼자가 아니거든요."

CBS체육부 박지은기자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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