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봄엔가 남자 셋, 여자 셋이 1박 2일로 놀러 갔었다. 첫 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숙소를 구하고 저녁을 지어 먹으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몇 가지 게임과 술 마시기 뿐이었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백련사에 오르기 시작했고, 내려오는 길에 한 여자가 발이 삐었다며 절뚝이는 거였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인 내 친구 사이의 눈빛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저건 꾀병이 분명했다. 정상적으로 내려와도 대구로 돌아오는 차를 타기에는 조금 빠듯한 시간이기는 했는데, 그녀는 확실하게 1박을 더 하기 위한 작전을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하면 나도 남자가 아니지. 나도 그녀의 부상 소식을 확실히 전하며 일행의 발걸음을 확실히 늦추었다. 그래야 돌아갈 차가 먼저 떠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1박을 더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녀의 연기 덕분에 우리는 총 2박 3일의 일정을 하게 되었고, 당시 만났던 일행들과는 잠시 동안 연락을 계속 할 수 있었다. 물론 한 여자를 둘러싼 경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 연락이 계속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