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김우중 회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옥포아파트 사거리에서 동료, 가족들과 평화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지 않기 위해, 스크럼을 짜고 앉은걸음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평화시위를 보장하겠다던 경찰은 갑자기 직격 최루탄을 난사했고
백골단은 흩어지는 시위대를 골목 구석까지 쫓아가서 짓밟고 옷을 발가벗기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 아이들과 임산부까지 나선 평화시위를 무자비하게 짓밟던 와중에
스물한 살의 대조립부 외업반 이석규 열사가 직격최루탄을 맞고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운명했다.8월 28일, 노동자, 지역주민 등 2만여 명의 애도 속에 대우조선 운동장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오후 3시경 총 28대의 버스에 나눠 탄 1천 5백여 명의 노동자들은
옥포호텔 앞 도로에서 노제를 지낸 뒤, 영구차를 앞세우고 망월동 묘지로 향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차량 행렬이 고성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 시신을 탈취했다.
주변 야산에 잠복하고 있던 2천 5백여 명의 전경과 백골단이 몰려나와
장례집행위원 등 재야인사들의 차와 동문인 광주직업훈련원 출신들이 타고 있던 버스 창문을 박살내고
이들을 집단구타하며 강제 연행했다. 연행자 중 이상수, 노무현, 박용수는 구속되었다.
이어 경찰은 나머지 버스에 타고 있던 노동자들을 강제 하차시키고
유족 3명만을 태운 채 시신을 남원으로 이동, 밤 9시경 남원 선산에 시신을 매장했다.
8월의 향기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