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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퍼뜨려주세요. [펌]故정경아씨 모친 “구두 사주라던 모습이
게시물ID : freeboard_5360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건축장이
추천 : 1
조회수 : 5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9/09 01:12:30
5년 전 자살로 종결됐던 ‘정경아 사건’이 지난 달 결정적 증거가 제출됨에 따라 수사 재개됐다는 사실이 본지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각종 포털에는 ‘정경아’, 혹은 ‘정경아 사건’이 실시간 이슈검색어로 올라왔고 네티즌들은 당시 파주경찰서의 졸속 수사를 비판하며 사망한 정씨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 정씨의 모친 김순이씨(61)는 지금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8일 김씨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씨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에 위치한 한 허름한 가옥. 비닐하우스촌 인근의 한 가건물에서 김씨는 홀로 살고 있다. 가재도구라곤 냉장고와 전자렌지, 그리고 몇몇 취사도구가 전부다.

“별일 없으셨나요”란 기자의 첫 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김씨의 기구한 인생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김씨는 지난 5년 동안 딸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왔다. 사망하기 12분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모습으로 CCTV에 찍힌 딸이 자살했다는 수사결과를 김씨는 인정할 수 없었다.

 
▲ 故정경아씨의 모친 김순이씨. 5년 동안 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싸워온 그동안의 억울했던 일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 

억울함을 해소하고픈 마음에 경찰을 찾아가보고 검찰청앞에서 1인 시위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트럭을 몰고 청와대로 돌진해봐도 돌아오는건 ‘돌아이’라는 빈정섞인 시선뿐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미 종결된 사건을 특별한 증거없이 재수사를 하는 경우는 없다. 김씨는 “친구들이나 친척들도 이제 그만할때도 되지 않았냐고 충고했다”며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지인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억울하게 딸을 잃은 심정을 안다면 내게 그런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도움의 손길을 가장한 악마의 손을 잡았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2007년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가며 지쳐있는 김씨에게 한 파계승이 찾아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의 ㅇ의원을 잘 알고 있다”며 문제해결의 댓가로 김씨에게 2800만원을 요구했다. 파계승은 요구를 하기 이전에 김씨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 수년 전 사망한 한 중견연예인과 경찰간부를 동행해 김씨와의 만나기도 했다. 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생각에 김씨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파계승에게 2800만원을 건넸고 파계승은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

좌충우돌하며 지켜가던 김씨에게 지난 5월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범죄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서초동에 위치한 L법무법인의 사무장 유 모씨였다. 김씨는 유씨를 만나기 위해 그동안 모아온 자료들을 들고 밤늦은 시간 유씨의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여동생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혼자 찾아가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라고 말렸지만 김씨는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라고 대답했다.

김씨는 유씨에게 그동안의 고충과 당시 사건과 관련해 모아온 모든 것들을 털어놨다. 김씨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나서 유씨는 곧바로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그 고마운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 그동안 법률적으로 김씨를 돕겠다며 수 십만원씩 요구하던 사람들과 유씨는 달랐다. 유씨는 김씨에게 어떤 댓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자비를 털어 책자를 만드는 등 김씨를 돕기위해 물심양면 노력했다. 

덕분에 지금은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아 수사가 재개됐지만 이미 떠나버린 딸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김씨는 안타까워한다.

김씨는 이미 첫 딸을 잃은 바 있다. 71년에 태어난 첫 딸 故정지영씨를 전북진안에 있는 시댁에 맡겨놓고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김씨는 이후 시댁으로부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김씨는 ‘죽은 아이를 길에다 묻었다’는 등 앞뒤 상황이 맞지 않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직감적으로 시어머니가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김씨는 “시어머니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딸아이에 대한 행방을 물었지만 ‘그 아이는 못찾는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딸 아이의 생사도 모른다는 사실에 한이 맺힌 김씨가 두 아들을 낳고나서 얻은 막내딸이 바로 숨진 정경아씨다. 김씨는 “큰딸을 잃은 후 몇년만에 태어난 딸인 경아가 얼마나 내게 귀했겠느냐”며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이 그날 방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면..”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경아씨를 잃고 나서 김씨에게는 또하나의 한이 생겼다. 바로 경아씨가 살아생전했던 작은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한이다. 김씨는 “경아가 죽기 두 달전 나와 함께 집에 들어가다가 구두 한켤레를 사주라고 했는데 ‘신발 많은데 뭘 또 사느냐’라며 거절했던게 너무 한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경아씨의 나이는 스물 네살. 한창 이쁜 구두에 눈이 갔을 나이다. 당시 경아씨의 마음에 들었던 구두의 가격은 단돈 3만원이었다.

 
▲ 숨진 정경아씨의 생전 사진. 당시 스물 네살이던 정씨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배씨 부부의 아파트 화단에서 꽃다운 생을 마쳤다. 

경아씨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김씨에게는 2억원이라는 거액의 부채와 흰머리만 남았다. 하지만 이제 김씨에게는 희망이 생겼다. 지금이라도 꽃다운 나이에 하늘로 떠난 경아씨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다. 김씨는 “만약 이번에도 사건이 흐지부지 종결된다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막내딸 경아와 나의 한이 풀리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경아씨가 숨질 당시 함께 있었던 배씨(당시 30ㆍ여)와 그녀의 남편 국씨, 그리고 조씨(당시 28ㆍ남)에 대한 경찰의 수사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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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fnnews.com/view_news/2011/09/08/110908180916.html

기사에 댓글 보시면 추천순에서 첫번째에 기사에 나오는 유씨라는 유규진사무장님이 사건의 정황들과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을 올려놓은 카페를 올려 놓으셨네요.
오유에서 검색을 해보니 '2323'이라는 분께서 먼저 올리신 글도 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이렇게 제가 다시 한번 올려 봅니다.
저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기사 링크를 해두었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알게 되어 재수사가 꼭 이루어져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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