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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리전투 군단장 유재흥은 도망갔나
게시물ID : history_195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varez
추천 : 10
조회수 : 2764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5/02/10 12:29:25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160134
대부분 한국전 현리전투를
"중공군 보고 무서워서 군단급제대가 무기랑 장비 다 팽게치고 때지어 도망간 전투. 특히 군단장이 먼저 도망감" 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그 오해를 풀고자 합니다.

저는 군사사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군사용어는 최대한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현리전투의 핵심은 당시 유재흥 장군이 지휘하던 3군단 왼쪽에 위치했던 국군7사단이 방어하던 오마치고개의 상실입니다.
여기를 예상치 못하게 뺏기면서, 3군단이 중공군에 완전 포위되고, 그러면서 붕괴됐으니까요.

1. 왜 오마치 고개가 상실됐나?
    유장군은 오마치고개의 중요성(상실되면 군단 전체가 포위될 수 있음) 때문에, 군단예비 연대를 배치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유장군의 3군단 좌측에 위치한, 미 10군단에서 담당구역 침해라는 항의가 들어와 부득이하게 철수시켰습니다.

    이 상황에서 미10군단 예하의 한국군 7사단이 6개 사단 중공군의 집중공세를 받고, 와해되면서, 오마치를 상실합니다.
    
2. 미10군단의 책임
    예하 7사단이 붕괴된 상황에서 상급부대인 10군단은 그 사살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군단에서 7사단이 무너진같다고 확인요청을 했을때 무사하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으니까요.
    
    이 잘못된 정보로 인해, 포위당하기 전에 질서있게 퇴각할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3. 유재흥은 포위망 완성직후 도망쳤는가?
    포위망 완성직후, 유장군은 포위망 바깥인 하진부리에 위치한 군단사령부에서 작전회의를 위해 비행기편으로 포위망내로 돌아왔다
    회의후에 다시 하진부리로 복귀했습니다. 이게 유재흥이 적전도망을 했다는 루머의 근원입니다.

    적전도망을 했다면, 포위망내로 들어올 이유도 없을 뿐더러, 유정군은 이후 하진부리에서 계속 퇴각병력 정리, 화력지원 및 수습 작업을 지휘했습니다.
    도망간건 유장군이 아니라 아니라, 예하 사단장들입니다.

더 자세한 디테일은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결론을 내자면, 유재흥은 적전 도망을 한적이 없으며, 현리의 패배를 유재흥 개인의 잘못된 지휘만으로 책임추궁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육군대학 전훈분석에서는 이 전투를 중공군이 구사한 일점집중 전법에 관할권이 애매한 부대간 경계선이 공격당해 패한 전형적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유재흥이 적전도망하면서, 현리에서 3군단이 무너졌다는 신화는 한국전에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어붙여 승리했다는 신화만큼이나 잘못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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