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우리 집안은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난을 견디다 못해, 가족을 이끌고 무작정 상경한다. 먼 친척의 소개로 공장에 취직을 하셨다. 물론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일은 힘들고, 쉴 시간은 없었으며, 월급은 올랐지만 물가는 더 높이 뛰었다. 그래도 커가는 우리 형제들을 보면서 상경한 것이 잘 한 것이라고 여기셨다.
하루는 술에 취해 들어오셔서, 우리 형제들의 인사도 안받으시곤 바로 이부자리에 누워버리셨다. 자다가 부모님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엿들었다. 아버님이 별 일도 아닌 일로 공장장한테 맞았다고 하신다. 분하셨겠지만 별 수 없으니 계속 다니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나는 사장님의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장님의 딸이 아버지와 같은 항렬이니 나에겐 고모뻘이지만 누나처럼 대해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안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는 데, 내가 집에서 빈둥거리는 꼴을 보던 아버지가 자신이 근무하셨던 그 회사에 지원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사장을 미워한 적도 있지만, 그 덕에 너희들을 키웠다고 하신다. 그 회사는 고모뻘이라는 사람의 남편이 사장이 되었다. "제가 알아보니, 그 회사 사장이 공금횡령이고 뭐고 지저분하게 해먹었어요, 임금은 동종업계 최저수준이었고요". 아버지가 기분이 상해서 심한 말씀을 하시자, 나도 삭인 분을 풀어버렸다. "맞고 다닌 회사에 아들을 취직시키다니, 억울하지도 않아요? 누가 회사에서 맞아가면서 키워달래요?"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른 식구들은 모른다. 아버지에게 나는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 망덕한 놈이 되었지만, 결국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열살 차이나는 동생이 예전에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이 놈은 가정형편이 좀 나아질 때 자라서 부모님 고생한 것은 못보았다. 나는 슬쩍 구타 사건만 빼고 간단히 말한다. 동생이 묻는다. "잘 모르지만, 그 회사 이미지 좋던데. 우리 집안과 연고도 있고, 월급만 잘 주면 되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