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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반자이 어택의 안습일화- 람리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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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알라의하렘
추천 : 4
조회수 : 353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9/14 15:59:33
람리섬 전투

제2차 세계대전 말 1945년 2월 19일 버마의 람리섬에서 영국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 
별볼일 없어 보이는 전투지만 연합군 뿐만 아니라 제3세력에 의해 일본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낸 사건.
기네스 북에도 올랐다. 동물에 의한 가장 큰 재앙(The Greatest Disaster Suffered from Animals)이라는 항목이다.



1 사건의 발단 ¶


산키 작전 중 1945년 1월 26일 영국 해병대는 체두바 섬에 상륙했다. 체두바는 람리 남쪽의 섬으로 아직 일본군 수중에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람리에서 일본군 수비대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제4, 26, 71인도여단이 영국 왕립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람리에 상륙했다. 해병대가 일본군 거점을 포위하자 900여명의 수비병력이 진지를 버리고 섬 건너에 있는 보다 규모가 큰 일본군 병력에 합류하기 위해 행군했다.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16킬로미터 가량의 악취나는 망그로브 늪을 건너야 했는데, 일본군이 늪지에서 헤매고 있을 때 영국군은 늪지대를 포위하였다.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일본군은 열병 등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1.1 재앙의 시작 ¶


안 그래도 망그로브 늪 때문에 행군속도가 느린데 안개까지 심하게 낀 상태였고 한밤중 영국군의 추격과 공격으로 일본군은 최악의 상태였다.
영국군은 일본군에게 수차례 항복을 권하였으나 묵살되었고 일본군은 곧바로 "텐노 헤이까 반자이!!!"로 들어갔고 영국군의 공격 시작!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하필이면 이곳이 수백마리의 '소만악어'[1]의 서식지였던 것이다.
2월 19일 일본군은 장장 16km의 지옥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1.1.1 증언 ¶


부르스 라이트 등 일부 사람들은 악어들이 수많은 일본군을 공격하여 잡아먹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날(1945년 2월 19일) 밤은 해병대 보트에 타고 있던 그 어느 대원도 경험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검은 늪지에서 소총의 발사광은 악어의 턱에 분쇄되는 부상병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중단되곤 했다. 악어들이 움직이면서 내는 흐릿하면서도 살벌한 소리는 지상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지옥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새벽녁 독수리들이 악어들이 먹다남은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도착했다. ... 람리 늪에 들어간 약 1,000명의 일본군들 중 겨우 20여명만이 살아서 발견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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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존하는 악어중 최대종.
[2] 20명의 일본군이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고 약 500명이 무사히 도망쳤으나 나머지 400여명은 악어에게 먹힌 것으로 추정되었다. 물론 전쟁중에 벌어진 일이므로 악어의 공격 외에 전투에 의한 사망자도 있었을지 모른다.하지만 전투 중에 발생한 부상병들을 확실한 전사자로 만들어 줬을 것임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참고로 당시 악어늪에서 살아남은 인원들 중 2명은 악어들에게 서로 싸움을 붙여 탈출했다는데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출처 엔젤하이로 위키: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B%9E%8C%EB%A6%AC%EC%84%AC%20%EC%A0%84%ED%88%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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