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이 오기 전이었습니다.
광화문의 세월호광장은 열린 공간이라는 특성상, 관계자분들 외에도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게 되는 곳입니다.
광장 자체가 차도 한가운데에 섬 처럼 떠 있는 구조라 지나가는 자동차들과의 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한것도 특징인데요.
특히 교보문고방향 횡단보도는 광장의 입구에 있어, 해당 위치에 정차한 차량들은 세월호광장 입구에 서 있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구조 입니다.
여느때처럼 막히는 세종대로.
아주 고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고급형의 승용차 한대가 광장의 입구에서 차량의 행렬에 맞춰 대기중이었습니다.
그 앞에는 대형 화물트럭이 정차해 있어서 "광장에 계시는 분들도 참 고생이 많으시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화물트럭 뒤에서 달리는 운전자들은 보통 창문을 내리지를 않는데 이 운전자는 참 특이하게도 갑자기 창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큰 소리로 "야! 이 빨갱이새끼들아!"하고 외치더군요;;
멀쩡해보이는 인간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자동차 에어컨에서 환각제라도 나오는건 아닌지 오만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 앞에 서 있던 대형트럭의정차등이 꺼지면서 베충이도 잽싸게 창문을 닫고 악셀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막히는 차선이 으레 그렇듯 트럭은 2미터 가량을 전진하다가 '움찔' 하듯 멈췄고, 분명 손꾸락을 병신처럼 꼬며 "민주화 했다 이기야!"하고 있었을 베충이는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채 트럭의 궁둥이를 선명하게 핥아버렸습니다.
작달막하지만 현장의 관록이 풍기는 트럭기사 아저씨가 내리고, 베충카 보닛은 사정없이 긁혔고, 고급차랑 사고나서 미묘해진 아저씨 얼굴과 창문 뒤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대충 어떤 표정일지 집작이 가는 베충이의 얼굴까지....
마치 프랑스 예술영화같은 한 폭의 이상한 그림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짜증과 조바심이 섞인 아저씨의 놐-놐이 베충카를 열심히 두드렸지만 끝내 베충이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채로 길은 뚫렸고, 가방에 있는 왕만한 노랑리본 스티커가 생각난 제가 베충카 궁둥이에 리본을 달아주려 한 순간 베충이는 잽싸게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마 집에 돌아간 베충이는 벌레굴에다가 앞뒤사정 다 잘라먹은 "민주화썰"을 풀면서 견적서를 안주삼아 쓴 소주를 마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