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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활동을 했었나요?
게시물ID : history_198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주와평화
추천 : 0
조회수 : 35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3/01 00: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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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친일 행적 

애국가 논란과 더불어서 안익태에 대한 논란거리는 바로 친일 행적이다. 안익태가 미국에서 있을 동안에는 친일행적과는 거의 무관했던 건 분명해 보이는데, 문제는 유럽으로 건너간 이후, 특별히 1938년부터 1944년까지의 행적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간 안익태의 유럽에서의 행적은 김경래와 부인 롤리타 탈라베라의 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었지만 연구자들이 이들 자료의 오류를 이것저것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대체로 알려진 바로는 안익태는 일본의 관변단체인 "일본-독일협회"(이하 일독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고, 이들의 지원을 받아서 유럽 각국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2000년에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발굴되었다. 발굴 당시에도 일장기가 걸려있는 것 때문에 논란이 일었는데, 2006년 송병욱이 "객석"지에 이 영상의 정체를 발표해 국내 음악계를 충공깽으로 몰고 가버렸다.

송병욱이 밝힌 영상의 정체는 바로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실황이었다(...). 실제 영상에도 버젓이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음악회"라는 자막과 나레이션이 붙어있고, 촬영된 장면은 "만주국"(혹은 만주환상곡)의 후반부 연주였다. 그리고 첫 발견 때 베를린 필 공연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베를린 대(大) 방송 관현악단과 라미 합창단이 출연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의구심이 드는점은 여기서 표기된 안익태의 이름이 "에키타이 안(Ekitai Ahn)"이라는 것이다. 필립 제이슨의 비서였고 1960년대 UN 주재 한국 대사를 역임했던 임창영 박사는 안익태가 미국에서도 에키타이 안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써서 꾸중을 했다고 회고했는데, 안익태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인다.

안익태가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을 쓴 데 대해 이탈리아에서 건축사로 근무하고 있고 안익태의 유족들과도 친분이 있으며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라는 책을 집필한 유명 건축사 정태남의 주장에 따르면, 에키타이는 일본식 표기가 아니라 안익태 자신이 스페인에서 살면서 현지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이해하기 쉽도록 바꾼 스페인어식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안익태는 스페인에 살기 이전에도 이미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안익태의 미국~유럽 활동 시기를 면밀히 연구하고 있는 음악학자 허영한은 현지에 남아 있는 안익태 관련 자료를 분석해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계간지인 낭만음악 2006년 겨울호에 발표한 논문 '자필 기록에 의한 안익태의 유럽 활동 재구성'에 따르면 1941년 9월에 안익태가 자신이 직접 관현악 편곡한 바흐의 파이프오르간 작품인 토카타와 푸가 C장조 총보에 EkiTay Ahn으로 자필 서명한 것이 익태 안이 아닌 에키타이 안으로 자신을 칭한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자필 서명보다 더 이전인 1940년 9월 3일에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공연에서도 프로그램에 EKITAI AHN (Tokio)이라고 인쇄된 것을 볼 수 있어서, 유럽 활동 초반기부터 안익태의 이러한 일본어식 이름 표기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이미 일반화되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정태남 등의 주장 대로 안익태는 2차대전 종전 후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 활동할 때도 1950년대 초반 까지는 에키타이 안 또는 안 에키타이라는 이름을 간헐적으로 사용했지만, 그 기원이 스페인 정주가 아니라 그보다 이전 시기인 2차대전 중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에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는 동정적으로 본다면 안익태가 일제 치하의 식민지인으로서 어떻게든 살 길을 찾기 위해서, 또 비판적으로 본다면 쉽고 빠른 친일을 위해(...) 일찍부터 자신을 일본인으로 생각하거나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안익태의 스페인어 표기는 Iktai Ahn이다.

게다가 안익태는 이 시기에 일본의 궁중음악 "에텐라쿠"를 바탕으로 한 같은 이름의 관현악 환상곡(또는 교향시)을 작곡했는데, 이것을 적당히 손질해서 나중에 내놓은 게 한국의 아악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강천성악"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4] 만주국 동영상 공개 이후 송병욱이 헝가리 국립영상보관소에서 이 곡의 연주 장면 일부를 담은 기록영화 동영상을 찾아냈는데, 이 동영상에서도 강천성악과 대동소이하게 일본 에텐라쿠의 선율이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중간부가 생생히 촬영되어 있다.

이런 행적들이 드러나면서 결국 안익태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고, 안익태의 형인 안익조도 친일인명사전의 군 부문에 포함되어 있다(...).

https://mirror.enha.kr/wiki/%EC%95%88%EC%9D%B5%ED%83%9C




심심해서 엔하위키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보게된건데....
진짜 친일활동한게 맞나요? 

충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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