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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어떤 새엄마
게시물ID : panic_196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
조회수 : 44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9/18 19:18:51
하늘까지 청명한 어느 봄날이었다. 아름답고 화사한 정원과 매치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스산한 집. 그 집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유난히도 깨끗한 정원으로 애호랑나비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이제 막 한살이 된 간난아이 유연은 그런 나비가 신기할 뿐이다. 방긋 입으로만 웃으며 어색하게 나비를 잡으려는 유연. 이제 세살인 지연 은 그런 동생 유연을 가만히 바라본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빼곡히 박힌 연두빛 풀 사이에서 어린 자매는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호랑나비는 아름다운 진달레 꽃 위에 사뿐히 앉았다가 이내 파라랑 날아가 버린다. 늦은 봄기운에 마당에 있는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펴있었을 때는 이미 옛 추억으로 벗나무 밑에는 연분홍 벚꽃 잎들이 소복히 쌓여있었다. 어린 두자매는 세상의 어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눈으로 가장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 볼 따름이었다. 지연은 유연의 옆에서 문득 집 안을 바라 보았다. 깨끗이 닦인 창으로 어렴 풋이 방 안의 사정이 보인다. 엄마 방에 어떤 여자가 들어온다. 그 여자는 엄마를 향해 잔인한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더니 품에서 무시무시한 칼을 꺼낸다. 그리고 두려움에 흠칫 거리는 엄마의 가슴을 그대로 찔러버렸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지연의 커다란 눈망울에 창문 넘어의 잔인한 광 경이 그대로 비친다. 그러나 지연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직 죽음을 이해하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 그저 고개를 한번 갸웃해 버리고 나서 자신의 머리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배추 흰나비를 바라보며 다시 꺄르륵, 웃음을 터뜨릴 뿐이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빼곡히 박힌 연두빛 풀 사이에서 어린 자매는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 * -십 년 후- "유연아!" 얌전하게 유연을 부르며 웃는 지연. 창백하리 만치 하얀 피부와 허리까지 닿는 유난히도 까만 생머리와 흑구슬 같이 까만 눈동자. 그리고 하얀 얼굴만큼이나 하얀 지연의 무늬 없는 하늘거리는 원피스. 마치 어느 나라의 공주님 처럼 지연에게는 얌전함과 우아스러움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지연은 정원에 마련된 야외의자에 앉자 유연을 부르고 있다. 하얀 벚꽃잎 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구르다 지연을 바라보는 유연. 옷 곳곳에 연분홍 벚꽃 잎들이 묻었다. 그러나 그 모습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유연. 하얀 피부는 지연과 닮았지만 유난히도 까만 지연의 생머리와는 반대로 살짝 곱슬거리며 밝은 갈색인 머리칼의 유연. 도톰하고 붉은 입술에는 행복한 미소가 서려 있다. 밝은 갈색의 나슬거리는 머리카락에 체구가 작고 발랄한 여자. 유연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왜?" "거기 꽃잎 묻었어. 털어" 지연은 까만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눈을 크게 뜨더니 자신의 결좋은 머리칼을 더듬는 유연. 입이 뾰루퉁하게 튀어 나왔다. "언니, 언니가 때줘" 이내 종종 걸음으로 지연에게로 다가가는 유연이다. 피식 웃더니만 유연의 머리카락에 붙어있는 흰 벚꽃 잎을 때어주는 지연. 유연의 흰 원피스에 달라 붙어 있는 벚꽃 잎도 탁탁 털어준다. 아름다운 용모의 작고 여린 두 자매.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봄의 수채화의 맑은 한 부분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들어가. 배고프다" 얼굴에 투정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지연의 손을 이리저리 흔드는 유연이다. 지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유연의 손을 잡았다. 두 살 차이라지만 별 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둘. 가득히 쏟아지는 햇살과 같이 그들의 미소에도 따스함 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왔니? 유연인 이게 뭐야, 엄마 빨래 또 늘겠네?" 호리호리한 몸매와 늘씬한 키,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 미현은 웃으 며 자매들을 맞았다. "아아앙, 엄마. 내 빨래 해주는게 싫어? 응? 아니지?" 어리광을 피우며 미현에게 매달리는 유연. 미현은 그런 유연을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죄송해요…엄마" 지연은 못내 미안한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아냐. 빨래도 재밌는걸" 발랄하게 말하는 미현을 뒤로 한 채 지연과 유연은 식탁으로 갔다. 식탁에는 신문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 가 있었다. "유연인 왜 벚꽃을 묻히고 다녀" "아빠아! 왜? 재밌단 말예요" 미현과 아이들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다. "어서 먹어. 맛있겠지?" 언제 들어왔는지 밝은 표정의 미현. 지연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예, 냄새 좋아요" "앉아. 어서 먹어" 유연과 지연은 자리에 앉았다. 엄마의 발랄한 목소리가 식탁 가득히 넘쳐났다. 지연만이 간간히 조용한 웃음으로 응할 뿐, 그 외에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는 식사시간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하늘의 까만 빛에 별마저 빛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밝은 달만이 희미하게 윤곽만 드러나 겨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두운 분위기에 어디선가 드라큘라가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을 것 같다. 유연의 방의 하얀 커튼이 흔들린다. 작은 조명등을 켜두어서인지 노란빛이 방안을 희미하기는 하지만 포근하게 감싸안는다. 갈색 곰 인형을 품에 꼭 안고 하얀 잠옷을 입은 채 하얀 방안에서 조용히 자고 있는 유연. 잠자는 아기 천사 같은 유연의 모습이다. 하얀 방만큼이나 유연은 순수했다. 뭔가가 불편한지 잠깐 뒤척거리다가 조용히 눈을 뜨는 유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유연은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곰 인형을 안은 유연의 가느다란 팔뚝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죽어…죽어버려…죽으란 말이야!! 유연의 눈에서 잠깐 걱정스러움과 두려움이 뒤썩인 알수 없는 표정이 떠오른다. 곰인형을 안은 하얀 팔은 이미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부들거리고 있고, 도톰하고 빨간 입술은 미세하게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갈색의 나슬거리는 가슴까지 닫는 머리카락에서는 땀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미현의 방. 짙은 자주색과 남색으로 치장되어 있는 지독히도 암울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의 방이다. 창은 삭막하다 싶을 정도로 꽁꽁 닫혀서 달빛 조차 들어오지 않는… 겨우 실루엣만 보인다. 보라색 어찌보면 딱딱할 정도로 다려진 침대 시트 위에서 사악한, 창백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미현. 그녀는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두 손에 가느다란 송곳을 쥐고 있었다. 흡사 작은 참새 앞에서 기뻐하고 있는 뱀의 눈처럼. 그녀의 눈이 빠알갛게 물들어 있는 것 같다. 비정상적으로 길고 마른 손가락 사이로 은빛 송곳이 까맣게 보인다. 빛이 없어서 일 것이리라…. 파바박. 빠른 속도로 침대 위에 놔둔 무엇인가를 송곳으로 찌르는 미현. 그것은 사진으로 보였지만 깜깜한 밤이라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 네모난 사진을 무섭게, 송곳으로 천천히 찌르는 미현. 광기. 미쳐버린 것 같았다. "죽어버려…죽어버리란 말야…으아아아악" 예리하고도 집요한 눈빛으로 미현은 사진을 향해 송곳을 휘둘렀다. 순간이었다. 어두웠던 방 안의 불이 반짝 하고 켜졌다. "엄마?" "…지, 지연아…유연아…" "엄마, 뭐해요?" "아, 아냐…" 잠옷을 입은 유연과 지연이 쌍둥이 처럼 두 손을 꼭 잡고 미현의 앞에 서 있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마치 비둘기들 같다. "엄마! 이거 뭐야?" 유연이 눈을 굴리며 미현이 송곳으로 난도질 하고 있던 사진을 보려 한다. 화들짝. 유연이 다가가자 놀라는 미현. 미현은 잔뜩 굳은 자세로 허둥지둥 서랍 안으로 난도질 하던 사진을 치운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매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미현. "과…과일 깎아 줄…까?" "이 밤중에요?" "…그, 그래도…안 먹고 싶…니?" "음…사과 깎아주세요" "그래. 기다리렴…" 역시 어색한 걸음으로 나가는 미현. 지연은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갸웃거리며 쳐다보았다. "뭔데 저렇게 허둥지둥이지?" "그러게…" 의아하다는 듯이 말하는 유연. 이내 발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린다. 엄마에게 가려는 것이리라. 유연의 뒷모습 마저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지연은 잠깐 고민하는 낯빛을 보인다. 고요가 아닌 적막. 형광등 불빛아래의 지연. 혼자 남았다. 보라색과 남색의 방에 지연 혼자 남았다. 결심했다는 듯이 입을 살짝 깨물고는 지연은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아까 미현이 송곳으로 난도질 하 던 '사진'의 정체를 밝혀내고 싶었다. "………?" 그곳에는 어느 사진이 하나 있었다. 송곳으로 마구 난도질 되어 버린 사진. 끝이 너덜너덜 해 져 버려서 사진의 원래 직사각형 형태를 구분 할 수 조차 없었다. "뭐지?" 이상하다 싶어 그 사진을 들어보는 지연이다. "내…내 사진…?" 그 사진 속 인물은 분명히 어린 지연이었다. 이제 갓난 아기때였을 듯한 사진 속의 지연…. 사진 속의 지연은 이름을 모를 한 여인에게 안겨있었다. 여자 어른으로 보이는 그녀는 짧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커트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얼굴 가득히 인자한 모습으로 행복한 미 소를 지으며 어린 지연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연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어릴 적 사진에 왜 이토록 격하게 송곳 자국이 난도질 되어 있는 지, 그리고 자신의 옆에 찍혀져 있는 이 여인은 누구 인지 도통 알길이 없었다. "엄…마…?" 지연의 머릿속이 혼돈되기 시작한다. 잊은 줄 알았던 끔찍한 기억들이 하나 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다. 엄마 방에 어떤 여자가 들어온다. 그 여자는 엄마를 향해 잔인한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더니 품에서 무시무시한 칼를 꺼낸다. 그리고 두려움에 흠칫 거리는 엄마의 가슴을 그대로 찔러버렸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엄마 방에 어떤 여자가 들어온다…… 그 여자는 엄마를 향해…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더니 품에서…… 칼을 꺼낸다. 그리고 ………엄마의 가슴을 그대로 찔러버렸다. …………………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엄마 방에 …… 여자가 들어온다. 그 여자는 ……… 잔인한 웃음을 한 번 ……… 칼을 꺼낸다.……………가슴을 ……… 붉은 피가 사방으로 ……………!!! "지연아 사과 먹어라" 그때 복도에서 미현의 목소리가 들리고 퍼뜩 놀라나는 지연. 지연의 눈빛에는 무엇인가 혼란스런 빛이 나타나 있었다. 난도질 된 사진…그 사진 속에 이름모를 여인과 간난 아이떄의 자신… 부르르. 지연은 무섭다는 듯이 몸을 한번 떨었다. "예 엄마"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사과를 먹으로 나가는 지연이다. 손에 과도를 들고서는 사과를 깎고 있는 미현의 모습이 보였다. 과도를 들고 사과를… 과도…칼…? 미현은 칼을 들고 있었다. 과도를! 칼을 들고 있는 미현. 칼을 들고 있는 미현. 칼을 들고 있는 미현. 칼을 들고 있는 미현!! "꺄아아아아악!" 자신의 엄마를 겁에 질린 눈초리로 보더니 픽, 주저 앉고는 두 손으로 귀를 꼭 틀어 막은 채 소리를 질러대는 지연. 움추려 앉아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머릿속으로 필름 같은 장면이 그림처럼 하나하나 끊겨서 나온다. 엄마 방에 어떤 여자가 들어온다. 그 여자는 엄마를 향해 잔인한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더니 품에서 무시무시한 단도를 꺼낸다. 그리고 두려움에 흠칫 거리는 엄마의 가슴을 그대로 찔러버렸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여자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방을 나갔다. 한 손에는 과도로 보이는 칼을 들고선. 빨간 손잡이 부분과 날카롭게 선 날. ………회심을 미소를 지으며 창가로 고개를 돌리는 여자. 순간 어린 지연과 눈이 마주쳐 버린다. 잠깐 놀란 기색이 있었지만 이깟 어린 지연은 괜찮다는 듯 피식 웃어버리는 여자. 그 여자는 … 그여자는 바로 미현이었다. 그래…생각났어. 엄마가 엄마를 죽였어! 엄마가 엄마를 죽였다고! 아악! 뭐…무슨 소리야…엄마는 엄마야…어떻게 엄마가 엄마를 죽여…아악! 이사람은 엄마가 아냐… 아냐…엄마가 맞아…아냐…엄마는 죽었어!…누구 맘대로?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악…꺄아아아악" "지, 지연아!" "언니! 왜이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모습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지연을 보고 미현은 당황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이 꼬마가 알아버린걸까. 아니겠지? "언니! 언니 왜 그래? 정신차려! 언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발작하는 지연을 말리는 유연. 눈에 얇은 물안개가 끼어 있다. "아악…아아아아악!!" "언니!" "꺄아아악…" "언니! 언니 이러지마! 언니…" 뱀 앞에서 먹이가 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참새처럼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지르는 지연을 본 유연은 덜컥 겁이 났다. 아마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직감적으로 예상했던 것이리라. 지연은 가느다랗지만 날카롭게 악을 쓰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댄다. "지연아!" 당황스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걱정스러움이 뒤범벅된 떨리는 손으로 미현은 지연의 어깨를 짚었다. "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미현의 손을 팍 밀쳐 내며 눈물 맺힌 눈으로 미현을 노려보는 지연. 땀에 절어 이마에 딱 달라붙어버린 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 가득 고인 오싹한 지연의 눈만 미현을 뚜러지게 직시하고 있을 뿐이다. "……픽-," 비웃음. 아니 그보다도 더한 원망서린 웃음으로 피식 거리는 지연. 동시에 굵은 눈물 방울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것은 바닥에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엄마가……엄말 죽였어…" 지연은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로 조그마하게 속삭인다. "언…니?" 큰 눈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 하는 유연. 지연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타타타탁… 차가운 마룻바닥에 비틀거리는 지연의 발자국 소리가 스산하게 들린다. 쾅. 차가운 공기에 문 닫는 소리마저 삭막하게 들리는. 그렇게 지연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원망스런 눈동자에 투명하게 고인 눈물만을 잔뜩 달고선 그렇게… "언니!" 유연은 급히 지연을 뒤따라 갔다. 철컥. 그러나 하얀 지연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연은 한숨만을 내쉰다. "……후우" * 털썩. 식탁 의자에 힘없이 주저 앉아버리는 미현이었다. 가느다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이상한 눈동자로 불안하게 주위를 휘휘 둘러보는 그녀. 손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꽉 움켜 진다. 저 꼬마가 어떻게 알아낸걸까…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미현은 중얼거렸다. 미현은 무언가에게 쫓기는 듯 서성대다가 팍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 "언니…" 애원하듯이 문 밖에서 불러보아도 지연은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채로 유연은 발길을 옮 겼다. 무엇이 언니를 그렇게 발악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삐이걱. 문열리는 소리가 스산하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유연.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져 있는 갈색 곰인형이 보였다. 유연은 그 곰인형을 집어 들고는 침대 안으로 파고 들었다. 언니의 걱정에 잠이 쉽게 들진 않았다. 하지만 까만 밤의 고요한 자장가에 유연은 힘겹게 잠이 들었다. 차가운 달빛만이 비웃듯이 유연을 내리비추고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집 안의 정적을 깨뜨리지 않았다. 그때… 토톡…토옥…유연의 방의 천장에서는 무엇인가 떨어지고 있었다. * " 잘 먹겠습니다…" 힘없이 헝클어진 머리의 지연이 자리에 앉으면 "으응. 일어났니?" "언니…일어났어?"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가족들. 어젯 밤의 발악 때문일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있는 그들에겐 다소 억지스러움이 맴돌고 있었다. 애써 괜찮은 척 한다는 것이, 이상하리 만치 눈에 잘 띄었다. "으응…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런 장단에 맞추어 지연 또한 엉거주춤 대답한다. 마치 어젯 밤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고 무언의 약속 을 한것 같은 그들. 바짝 말라버린 붉은 입술에 물잔을 가져가는 지연이다. "엄마…왜 그랬어요…?" "뭐?" 나즈막한 지연의 음성에 필요 이상으로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수저를 놓쳐 버리고 마는 미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수저. "……아냐…아니에요…" 지연은 무언가를 말할 듯 입술을 달싹 거리더니 하지만 고개를 저어버리고 입을 앙다물어 버린다. 불안한 눈빛으로 있던 미현은 그제야 한숨을 포오 내쉬며 다시 예전의 미소 띈 얼굴로 돌아간다. 문득, 자신의 앞에 내려져 있는 음식을 보는 지연. "아침 밥이에요…?" "응. 어서 먹어" "…아니…안 먹을래요…" 가만히 밥을 보고 있다가 두 손을 꼭 쥐고서는 지연은 고개를 저어버린다. 아무 이상한 점이 없는 밥을 공포의 대상이라도 되는 듯이 보고 있는 지연. "왜? 먹어…아침을 먹어야 속이 든든…" "안먹어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나는 지연이다. "앉아. 지연아. 너 몸도 약하잖니…" "안 먹어요…" "지연아. 먹으라니깐" "안 먹는 다고 했잖아요" "지연아…?" "안 먹는 다고!!!" 참다 못한 지연이 휙 돌리며 카랑거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 쫘악. 듣기 싫은 마찰음이 허공을 가른다. 거친 숨을 내쉬며 지연을 노려보고 있는 미현. 그리고 한쪽 뺨이 빨갛게 부어오른채 맞은 그자세로 얼굴이 옆으로 돌아가 있는 지연. "엄마!" 놀란 유연이 미현의 팔을 붙든다. 그러나 미현은 그런 유연의 팔을 거칠게 빼 버리고 지연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너 엄마한테 말 버릇이 그게 뭐니? 먹으라면 먹어!" "…싫어요…안 먹을래요…" "먹어!!" "………" 지연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고인다. "먹어! 먹으라고 했지! 먹어!" 금방이라도 울거같은 자세로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지연. "엄마, 이상하다? 왜 언니가 먹기 싫다고 하는걸 억지로 먹여요?" "먹어! 안 먹어?" "엄마! 하지 말라니까요…" "……안 먹을꺼에요……" "뭐? 언니…무슨…말이야?" "안 먹어…죽기 싫어…안먹…안먹을꺼야…흑…" 털썩, 힘없이 주저 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지연. "………" 아무 말 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던 미현은 신경질 적으로 식탁 위에 있던 지연의 밥그릇을 들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버린다. 탁. 식탁에서 떨어진 밥그릇이 산산이 깨어지면서 들어있던 밥알들이 흩어져 나온다. 곧 찰기없이 부스러져 버리는 밥알들. 겁에 질려 부들거리며 울먹이는 지연. 그들사이를 찬바람 한줄기가 쏴아 하고 훑고 지나간다. 유연만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할 뿐. 지연은 여전히 서럽게 울며 겨우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들어…갈…께요" 힘없이 말하고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지연, 유연은 그런 지연의 뒤를 따라갔다. 자매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자 싸늘한 눈동자로 그 곳을 뚜려지게 직시하는 미현. "이년…눈치하난 빠르군…쿡…힘들게 구한 독약이었는데…" 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밥알들을 신고 있던 실내화로 꾸욱 밟으며 중얼거리는 미현이었다. 미현에게 밟힌 밥알의 사이에서 무언가 소량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 "언니, 언니 요즘 대체 왜이래? 무슨 일…있는…거야?" 걱정스럽다는 유연의 눈빛에 한층 더 창백한 낯빛으로 고개를 저어버리는 지연이었다. 망설이는 듯 하더니 떨리는 입술로 이야기를 꺼내는 지연. "…유연이 넌…뭔가 가끔 이상하단 생각들지 않아?" "응?" "예를 들어서…음…엄마에 대해…" "응?" 지연은 알 수 없다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유연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이내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린다. "왜? " "…아냐…그냥…" "뭔데…?심각한거야?" "…우리 엄마…친 엄마가 아니라…아, 아냐." 뭔가 비밀을 가득 담고 있는 듯한 지연의 침울한 눈동자에 유연은 고개를 휘저을 뿐이었다. 저 비밀을 알아내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언니의 베일이 너무 두꺼워…내 힘으로는 걷어 낼 수가 없어… * * '지연아, 유연아. 엄마아빠 어디 나갔다 올께. 늦게 올꺼다. 자고 있어' 현관문 앞에 약올리듯 붙여져 있는 작은 포스트 잇. 지연과 유연은 그 포스트 잇에 적힌 글자를 뚫어지듯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서 자자…유연아" "으응." 자매는 둘 다 힘없는 목소리로 발길을 돌렸다. 유연은 차가운 문고리를 돌렸다. 어둠에 묻혀버린 방이 모습을 들어냈다. 숨이 막힐 듯이 유연의 몸을 뒤덮고 있는 어둠. 새카만 밤의 장막 아래에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유연. 가끔 뒤척이며 잠꼬대를 하는 유연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그 유연의 모습만. 토옥…톡….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토오옥…. 투둑, 그 이름모를 액체는 자고 있는 유연의 하얀 뺨 위로 투툭, 떨어져 버린다. 반짝. 무언가 뺨에 닫는 느낌이 들자, 잠에서 깨어나버린는 유연. 자기 뺨 에 묻은 액체를 손가락으로 닦아낸다. 뭔가 상당이 찐득거린다. 뭐지…? 어디서 떨어진거지…? 어두운 방 안에서는 무엇이든 제대로 식별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액체가 무엇인지도 볼 수 없었다. 유연은 몸을 찌뿌둥하게 일으킨 채 전기 스위치를 켰다. 타탁, 환한 형광등 불이 켜졌다. 유연은 불 빛 아래에 '그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하얀 천장의 거의 반을 덮어버릴 만큼의 빨간 액체 … 피. 그것은 한방울씩, 한방울씩 천장에서 배어나와 땅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무언가 공포감이 스멀스멀, 유연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천장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다!! "유연아?!" 순간 유연의 방 문이 벌컥 열린다. 걱정스런 표정의 지연….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던 지연은 문득 피에 젖은 천장을 바라본다. 충격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지연. 피…그 알수없는 공포감에 미세히 흔들리는 그녀의 눈망울. "저거… 천장에서 배어나오는거…맞지?" "으응" "…!!!!" "왜? 언니…"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더니 유연을 바라보는 지연이다. "뜯어보자" "뭐?" "저 피…. 정체를 밝혀내자고" "언니!" "뜯어보자…응?" "언니! 지금 제정신이야? 맨손으로 어떻게 천장을 뜯어, 언니 미쳤어?" "뜯어야해……" 지연은 뭔가 굳은 결심을 한 듯, 입술을 앙다물더니 침대 위로 올라선다. "언니 내려와! 언니…"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지연을 바라보던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언니 맘대로 해. 난 안볼꺼니까" 더이상 그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뒤도 안돌아보고 방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유연. 지연은 유연이 뛰쳐나가거나 말거나 의혹에 가득 찬 눈빛으로 천장을 뜯기 시작한다. 부우욱, 그녀의 손에 의해 피에 절은 벽지가 뜯어진다. 지연의 손에서 진득거리는 피가 베어나온다. 코를 찌르는 피냄새.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올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지연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말 없이 , 천장을 뜯는 지연이다. 벗겨진 벽지에 들어나는 시멘트. 시멘트는 이미 피로 빨갛게 물들어있다. 단단한 시멘트를 물들이고도 벽지로 세어나오다니. 얼마나 많은 양의 피이면 가능한 일일까. 문득 오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그러나 포기는 안된다고 시멘트를 멍하니 보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지연. 잠시 뒤 돌아온 지연의 손에는 그녀의 손목으로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이 커다란 망치가 들려 있었다. * 공포는 유연의 몸 구석구석을 휘감아 들었다. 유연은 지금 방 문 앞에 쪼그려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다. 계속 방 안에서는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가 천장을 부수고 있는 것이리라. 눈 앞으로 깜깜한 복도가 펼쳐진다. 저 멀리 창가에서 은빛 달의 부스러기들이 빛나며 복도로 쏟아지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보이는 까만 암흑. 문득 자신의 손에 묻어있는 피의 존재를 느끼고 "으으…" 하고 신음을 내는 유연이다. 언니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광기어린 눈을 빛내며 천장을 깨부수고 있을 지연을 상상하니 그런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손가락 조차 볼 수 없는 어둠에 유연은 막연히 문의 차가운 감촉만을 느꼈다. 유연은 가슴속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부서지는 공포심을 어떻게 해보려는 듯,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쾅쾅쾅…지연이 천장을 깨부수는 소리는 마치 어둠의 전주곡 처럼 유연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가슴에 커다랗고 날카로운 상처를 하나 내 놓고는 다시 빠져나가고는 했다. 유연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꼭 감고 얼굴을 젓는다. "…언니…" 저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무엇인가가 튀어나와 유연의 숨통을 조를것 만 같다. 유연은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촉각 만으로 문고리를 찾아 돌리고, 언니가 있는 방 안으로 유연은 들어갔다. "언니!!?" 유연은 방 안의 풍경에 입을 딱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시체…?그래, 시체였다. 짧은 커트 머리의 여자의 시체가 가슴에 날카로운 단도를 박고서는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유연의 방바닥에서.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허겁지겁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천장의 한 쪽 면이 깨져있다. "언니?" "이 시체…천장에 매장되어 있었어. 내가 꺼낸거야" 시체는 죽은 지 꽤 되었을 것 같지만, 얼핏 살아있는 사람같을 정도로 생생했다. 전혀 썩지 않았고, 그렇다고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흔들어 깨우면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았다. 심지어 작은 손톱하나하나 까지 죽었을 때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연은 지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연은 힘겨운 숨을 내 쉬며, 자신도 충격이라는 듯이 침대 위에 앉아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연의 옆에 놓여있는 커다란 쇠망치…천장을 깨부수고는 매장된 시체를 꺼내는 데 사용 되었으 리라. "언니, 무슨 일이야?!" 지연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유연의 목소리에 애달프게 유연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유연아……" "대체 어떻게 된건데! 응?" 절박한 외침.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는 듯 그렇게 유연은 울부 짖었다. "……뭐냐고…?…진짜 엄마…"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대는 유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자한자 또박또박 말해주는 지연이었 다. "뭐…?" "이 사람이 진짜 엄마라고" 말을 멈춘 지연에게 유연은 암울한 눈망울로, 그러나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가득 담은 채 눈빛으로 지연을 재촉했다. "…웃기지…?이때까지 우리가 엄마라고 믿고 지내왔던 사람은…진짜 우리 친엄마를 죽인 새엄마야…" 지연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됬다. * "하하…언니…나 언니 말 못믿겠어…하…그러니까…우리 엄마, 아니 엄마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실 새엄마 였고, 진짜 친엄마는 옛날에 죽었다고? …그리고 이 시체가 바로 친엄마라고…?하" "응…" "그런데 진짜 친엄마를 죽인 사람이 바로 지금 엄마, 그러니까 새엄마라고?" "…응…" "언니…이런 장난 재미 없다는거 알잖아…왜이래…응?" "…장난…아니란거 알잖아…" "제발…언니…장난이라고, 장난이라고 말해줘 응?…나 이거 못믿어…아니 안믿어…" "니 눈앞에 증거가 있잖아, 아주 생생한 증거가…" "언니! 그만!! 안들어, 안듣는 다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이었을 까, 쓰러지듯 침대 위에 엎어져 꾸역꾸역 울음을 토해내는 유연이다. 지연은 그런 동생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툭, 눈에서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흑흑…흑…" 제발 하룻밤 자고 나면 이것이 다 꿈이길…그냥 눈만 뜨면 다시 평화로운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를… 엄마는 밝은 미소로 날 맞아주고…설령 새엄마라 하더라도…언니랑 벗꽃잎 위에서 다시 뒹굴 수 있길… "꿈이 아니야…" 지연은 유연의 마음을 읽어내리기라도 한듯 단호하게 그러나 애절한 목소리로 흐느끼며 말했다. "…이때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엄마는…모두…가식이었어…너무나도 완벽한 그 가면에 우리는 속고 있었던거야…" "흐흑…안믿…어…흑…안들을 꺼야…언니 제발 더이상 말하지마…흑…흐흑…싫어…" "봤잖아, 이미 우리엄마 시체 봐버렸잖아. 새엄마 이런 사람이야. 사람 죽이고서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천장에 매장하고! 그리고서 우리들 엄마노릇하고, 결국 우리도 피해자일 뿐이라고" "그래도 우리 즐거웠잖아?…흑…새엄마라도 아무리 친엄마 살해했다고 해도 좋았잖아…흑… 같이 좋은 시간 보냈었잖아…흐흑…기억나지도 않는 과거가 무슨 소용이야? 응? …흐흑… 흑…" 말을 잇지 못하겠는지 유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울음소리 사이로 파묻혀 버린다. 유연의 방 안에서 두 자매는 조용히 눈물을 떨구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이 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친엄마의 시체는 그들 한 가운데 우뚝 누워 감긴 두 눈으로 자신의 친딸들을 보고 있는 듯 했다. * 아침이 찾아왔다. 밝은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비추는 날이었다. 이미 말라붙은 피들의 사이로 환한 햇살이 찾아 든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무말도 못하고 푸석하게 말라 붙은 얼굴로 일어서는 두 자매. 약속이나 한 듯이 무엇인가 눈길을 주고 받는 두 자매였다. "아빠도 알고 계실꺼야…" "……" 몇 시간 쯤 지나자, 딩동. 집 안으로 경쾌한 벨소리가 울린다. "네 나가요" 발랄한 아이들의 대답 소리가 들리고, 유연과 지연은 손을 꼭 잡고 철컥, 대문을 연다. "다녀오셨어요?"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미현과 아빠에게 인사하는 지연. "잘 있었니? " 미현동안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아빠와 유연도 밝은 미소를 교환했다. 집은 아무 이상 없어보였다. 평소때의 모습 그대로 따듯하고, 깨끗하고, 밝았다. "들어가자. 아침 먹었니?" "아니, 엄마 나 배고파 죽겠어. 빨리빨리! 응? 된장찌개에" "알았어. 좀만 기다려. 엄마 짐 좀 내려놓고 해 줄께"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미현에게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언니가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부드러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잠깐 마음이 혼란 스러워졌다. 식탁에서는 웃음 꽃이 피어났다. 지연은 밝은 미소로 그 분위기를 한층 더 띄우고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연의 속은 이미 굳어진 원망과 복수심으로 새카맣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됬다는 듯,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입술을 여는 지연. "엄마, 아빠…나 어제 이상한 거 봤거든요?" 나른한 지연의 이상할 만큼 태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유연의 얼굴이 바짝 긴장감으로 굳어졌다. 마음을 다 잡긴 했지만 막상 친절한 엄마를 보니 마음이 마구 흔들렸다. 진짜 이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까. 이런 유연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지연의 나른하고 낮은 목소리는 자꾸 이어져 갔다. "어제…유연이네 방 천장에서 빨간게 배어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여자 시체가 나오는 거있죠? 단발이었어요…쿡,…어머, 왜그러세요?" 딱딱하게 굳은 미현의 얼굴과 아빠의 얼굴. 그 미세한 표정들을 놓칠 지연이 아니었다. "왜그래요…장난이었는데. 비위 약하구나! 몰랐어요…밥 먹는데 이런 얘기해서 미안해요… 내 딴에는 놀래라고 장난친건데. " "엄마 아빠 엄청 비위 약하나 보다…언니 우린 왜 그걸 몰랐지?" 유연은 장난스럽게, 지연의 말에 덧붙였다. "어…지, 지연아…다음부터 그런 무서운 장난은…하지 마렴…" 미현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지연의 말을 받았다. 마치 송곳으로 어린 지연의 사진을 난도질 하다 들켰을 때 처럼 어색한 웃음이었다. * "얘들이 알아버렸다고요, 이런" 누군가가 쫓아오기라도 한다는 듯이 방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목소리를 낮춘 채 자신의 남편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미현의 다급한 말에 고뇌하는 표정으로 한숨만 내 쉴 뿐이었다. "어쩔려고 그래요? 얘들이 우리 신고하면요? 그럼 끝장이에요" "…알아…하지만 대책이 없잖아, 말린다고 아이들이 가만히 있겠어?" "여보!" "솔직히 우리가 무모한 짓을 했어. 착하디 착했던 사람을 죽였잖아. 그냥 간단하게 이혼하면 끝나는 거였을 것을!" "그럼 그녀한테 딸린 재산들은요? 이미 지난 일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잖아요?" "그냥 마음을 비워. 이제 콩밥먹을 생각이나 하자고" 눈에 수많은 고뇌와 한숨을 담고서는 손으로 이마를 짚는 남편이다. 이미 그는 마음을 비웠다. 지난 죄 값을 받으려는 것이다. "난 그렇게 못해요! 난 아직 젊어, 젊다고요!" "…들켜버렸잖아. 대책이 없잖아" "왜 없어요?"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힐책하듯 울렸다. 미현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없애버려요. 지연이 유연이 둘 다" 미현의 말을 듣자 그의 동공이 커졌다. "뭐? 당신 미쳤어? 내가 그 아이들을 얼마나 끔찍히 아끼는 지 몰라서 그래?" "…우리의 행복이 먼저 아니었나요?" "아니야. 우리 그냥 아이들이 신고하기 전에 자수하자. 그럼 형기 조금이라도 줄어들고, 난 나 스스로 뉘우칠꺼야" "여보!" "당신 이렇게 까지 하면 나 당신한테 질려. 아이들을 죽이다니 지금 제정신이야?" 그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방에 있는 무선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이미 결연한 눈빛, 죄를 뉘우치고 있었다. 전화로 자수를 하리라. 그럼 경찰들이 이곳으로 자신을 잡으러 오겠지. 아내도 함께… 싸아. 미현의 눈동자가 얼어붙었다. 이상한 기운을 느낀 그는 눈을 들어 아내를 바라보았다. "싫어. 난 내 인생을 그렇게 낭비하기는…쿡, 애초에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 당신이 가진 재산이 부러웠던거 뿐이야. 아니 자세히 말하면 당신의 아내의 재산 말야. 이제 그만 없어줘 줘야겠어. 핏" 허리에 알싸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툭. 그가 손에 들었던 무선전화기가 힘없이 떨어져 버린다. 미현은 십 년 전, 남편의 전 부인에게 했던것 처럼 손쉽게 남편을 죽였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들은 지연과 유연은 슬프게 울었다. 아무리 어머니를 죽인데 동참했다고 해도 그들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언제나 자상했던 아버지였다. 그의 일생에 어느 치명적인 실수만 빼면 말이다. 아무튼 그것만 빼면 좋은 아버지였다. 지연과 유연이 만족했을 만큼. 초라한 상복을 입고 구슬프게 울고 있는 유연, 멍한 눈빛으로 천장만 올리고 있는 지연. 문상 온 사람들은 그 자매의 애달픈 모습을 보고 누구나 다 혀를 차고 갔다. 그 와중에 잔인한 눈빛으로 자매를 노려보고 있는 미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조그만 그 곳에서 지연과 유연, 그리고 미현은 긴장감 속에 서로를 대하며 지내왔다. 미현은 언제나 두 자매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유연과 지연, 둘 다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조췌하고 푸석해 진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미현은 그런 두자매가 골치였다. 자신의 삶의 유일한 옥의 티. 자신은 아직 젊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아이들만 없다면…또한 이아이들은 유일하게 자신의 범행을 알고 있다. 옥의 티라도 큰 티가 아닐수가 없었다. 탄탄한 자신의 앞 길의 유일한 장애물…. 그러며, 미현은 마음 속으로 세번째 범행을 계획했다. "지연아, 잠깐만 나와 볼래?"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는 최근 며칠간 볼수 없었던 가식적인 웃음. 지연은 그런 웃음을 보고선 피식 웃더니 자신의 손을 꼭 붙들고 있는 유연에게 말했다. "유연아, 다녀 올께…" 유연은 아직도 미현이 엄마를 살해한 것이 믿기지 않는 다는 듯 꿈꾸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새엄마를 향해 도전적인 눈빛을 내 비치고는 당당하게 일어나 그녀의 인도대로 따라가는 지연. 그들이 간 곳은 장례식 장 뒷쪽에 있는 사람이 없는 골목이었다.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햇빛 한 점 비치지 않는. "…당신은 악마야……" 지연은 경멸스럽단 듯이, 증오의 말을 내뱉았다.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뭐가 부족했던 거야? 나랑 유연이한테서 또 뭘 빼앗아 가야 되겠어? 얼마나? 응?" "…쿡, …실컷 떠들어…이게 마지막일 테니" 미현의 말에 지연의 얼굴이 증오로 일그러진다. "나도 죽일려고? 쿡, 아예 한가족을 몰살시킬려고? 역시 당신은 사람이 아니었어. 악마였던 거야"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듯이 당당하게 소리치는 지연이었다. "당신 언젠가 죄값을 받게 될꺼야. 하늘 아래 서 있을 용기나 있어?응? 그리고…헉!" 가슴 깊숙이 아려오는 통증. 단도가 정확히 심장 부근에 박혀있다. 조여드는 숨통으로 지연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으윽………당신은……결코…행복하지…못……할꺼……야" 털썩. 지연은 그렇게 가느다란 자신의 생명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크큭. 행복하지 못하다고? 아니. 행복할꺼야 이제 영원히" 그때였다. 미현의 뒤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타타탁, 다급한 신발 소리가 들리고, 창백하게 쓰러져 죽어있는 지연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유…유연…" "난 엄마를 믿었어. 언니가 엄마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했지만 난 설마했어. 근데…" 길게 포효하며, 엄청난 눈물을 쏟아내며 미현을 노려보고 있는 유연. "당신은……인간이 아냐." 지연이 했던 말과 같은 내용의 말과 똑같은 말투. 미현은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증오심으로, 언니의 시신을 끌어안아 미현을 노려 보는 유연이었다. 그때 언니의 말을 믿을걸. 이따위 인간 동정할 가치조차 없어. 당신 때문에 우리가족은 산산히 부서졌다고. 이제 나까지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어? "어린얘라고 놓아 주려고 했더니…쿠쿡, 이제 너도 죽게 되겠구나? " "아니, 그렇게는 안될걸? " 무언가 자신있는 유연의 말투에 잠깐 움찔하는 미현이다. "왜그러니 꼬마야? 당돌하구나" "…이제 당신은 죄값을 치르게 될꺼야" 예전 아이들의 친엄마를 살해했을 때 처럼 미소를 띄우고 유연에게 한걸음, 다가가려는 미현이었다. 표정에 미동도 없이 굳어서 미현을 노려보고 있는 유연. 언니의 피가 묻은 칼이 자신에게로 겨누어 졌다. 이윽고 스산한 골목길에 기다랗고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한번 울려펴진다. "아…" 유연은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쓰러져 있는 새엄마를 멍하니 바라본다. 분명…비명을 지르고 쓰러져 있을 사람은 자신이 아닌가…. 유연을 찌르려고 다가오던 새엄마는, 위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돌덩이에 맞아 죽었다. 분명히 그 돌덩이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런 것을 떨어뜨릴 만한 곳은 없었다. 누군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 떨어뜨린것 아니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일. 그러나 그런 미친 짓을 할 사람 이 있단 말인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해 있는 유연의 귀로, 나즈막히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처음에는 아주 작게 들리다가 점점 더 커지더니, 이내 또렷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너라도 구하고 싶었어………" 작은 지연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유연은 한동안 멍한 자세로 있었다. 문득 안고 있는 지연의 시체를 내려다 봤다. 이런…그것은 분명 숨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유연의 눈동자를 바라 보다 이내 힘없이 툭, 다시 눈을 감았다. * * * 이십 년 후. "축하드려요. 예쁜 공주님이세요" 간호사를 통해 아이를 전해 받으면, 얼굴에 미소가 꽃피는 유연이다. 말 없이 , 그러나 기쁜 표정으로 자신의 아이를 내려다 보는 유연. 문득 극악무도한 새엄마로 인해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언니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결국 자신만은 구했었지만…. 죽는 순간, 아니 죽고 나서까지 지켜주었었다. 눈에 옅은 물안개가 끼었다. 유연은 자신의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말했다. "…언니…이제 내가 지켜줄께…"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레몬향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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