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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은 않은 외국어
게시물ID : readers_198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3
조회수 : 5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22 00:16:32

M에게.


진절머리나던 곳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마쳤다. 무언가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종종 네 생각이 난다. 그리고 네가 지난 몇 년간 내게 보내준 얼마 되지 않는 메일을 다시 읽는다. 너는 종이에 인쇄도 되어있지 않는 그 글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알까.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열여섯 해가 지났다. 너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건 고작 이 년밖에 되지 않지만 어째선지 나는 네가 내 삶 전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네가 실로 그러길 바라고 있는 거겠지.

첫 만남에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네가 태어난 곳의 언어를 잘 모르기도 했으니. '네', '아니오', '고맙습니다', '안녕'. 내가 아는 단어라곤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네가 쉬는 시간마다 가르쳐 줬던 단어가 떠오른다. '머리카락', '빨대', '양', '벌'. 학교 수업 내용은 기억하지 못해도 네가 그날그날 알려주는 단어는 외우려고 애를 썼다. 그나마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너는 내게 영어로 대화하곤 했다. 언제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주위에 너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 믿음은 변치 않았다.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심지어는 벽지에서 모양을 찾는 놀이를 즐기는 것까지. 우리는 뭐가 그렇게 비슷한 점투성이였는지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내가 너보다 말이 많기는 했다. 아는 단어가 쌓이면 쌓일수록 너한테 더 많은 말을 했다. 너는 그런 내게 항상 귀를 기울여 주었다.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법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다.

그런 너를 울린 적이 두 번 있었다 (아마 그보다 더 많은 상처를 줬겠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짐작하자면 너처럼 멋진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두 번 다 네 우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첫 번째는 학교에서였다. 같은 반의 어떤 아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유치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이제 나랑은 어울리지 않을 거냐고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대신에 말도 안 되는 분풀이를 했다. 시끄럽게 몰아세우는 내게 너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입을 다물고 나서야 너는 정말 미안하다는 식의 대답을 줬다. 사과를 해야 하는 건 분명 나였는데. 쉬는 시간이 됐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너는 한참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너를 찾으러 화장실에 갔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는데, 가장 안쪽에 있는 칸만 문이 잠겨 있었다. 네가 들어가 있을 거라 짐작한 그 칸 앞에서 너를 기다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나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문이 열리고 네가 코를 풀며 나왔다. 벌건 네 눈을 보자니 말이 더더욱 나오지 않았다.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나를 계속 좋아해 줬다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때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너와는 달리 나는 아직도 소리를 죽이고 울 줄 모른다.

 

두 번째는 먼 지방으로 이사를 한 너의 집에서였다. 거실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투정이었을 것이다. 밤이었고 잘 준비를 하려는 상황이었기에 불이 다 꺼져있었다거실의 큰 창을 통해 마당을 비추는 불이 들어와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너의 실루엣 정도가 보였었다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나는 어느 순간 네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 때문에 네 쪽으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네 앞에 쌓여만 가는 휴지 뭉텅이의 수를 셌다. 잠을 자려는데 잠이 오질 않아 MP3의 노래 중 한 곡을 계속 반복해 들었다. 가사에 물방울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었다는 게 생각난다. 다음 날 나는 열다섯 살이 되었고 너는 그대로 열네 살이었다. 나이를 먹는 일이 처음으로 부끄러웠던 날이었다.

 

머리가 더 자라고 나서도, 친구들 말마따나 이나라 사람이 다 되고 나서도, 너에게 한 그 못된 짓을 다른 소중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저질렀다. 그때마다 그 사람들은 너와 마찬가지로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 사람은 모두 내 친구로 남아주었다. 나는 너의 나라말로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들은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대답했지만, 아직도 나는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매번 같은 후회를 하는 이런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 대학에 들어와 잠깐 심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허구 속에는 있지 않을까 싶어 이름도 모르는 작가들의 소설책도 마구 읽었다. 그런데 어느 책에도 나 같은 사람은 없더라.

 

몇 년 전에 어떤 꿈을 꿨었다. 너를 포함한 내 친구들 모두가 한국어를 하는 꿈이었다. 기쁜 마음에 말을 나누고 싶어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어로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네 나라의 언어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언어로 이뤄지는 우리들의 대화가 꿈 속에서는 그저 우스웠는데 깨고 나니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 꿈은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꾸지 않았다.

 

가끔 내가 걷지 못한 길에 대해 상상한다. 내가 너의 나라에 오지 않고 내 나라에 남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왔다면. 그랬다면 농구장 코트 한가운데서 동생과 둘이 부둥켜안고 우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너도 이경해처럼 죽을 거냐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우는 엄마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랬다면 너를 만나는 일은 없었겠지.

 

너에게 한국어로 쓴 소설을 번역해 보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실은 내 글을 번역할 때나 외국어로 글을 쓸 때면 언제나 같은 질문이 생겨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글에 담아진 걸까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걸까. 분명히 이 불안함은 내가 너와 친구들에게 계속해서 미안함을 느끼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네가 메일에 이런 말을 했다. 내 글 속의 주인공이 초등학교 때의 나를 닮았다고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너는 내 옛 모습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글에 대한 직접적인 의견이 아닌 네가 지금껏 기억해온 나의 모습에, 그걸 내 글을 통해 떠올렸다는 사실에 왠지 가슴이 울컥했다. 아주 조금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상의 어떤 누가 내가 쓰는 글을 너만큼 이해할까 싶었다. 나는 답장에 네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 글을 쓰겠다고 했다.

 

며칠 후면 또 얼굴을 보겠구나. 사 년 만인가? , 우리는 서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사이니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네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을 하나 샀다. 이미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표지가 예뻐 샀다고 솔직히 네게 말을 하면 너는 웃으면서 표지만 들여다볼 것 같다.

 

세 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첫 독자는 너다. 조금만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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