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펌][장편,브금]박쥐 - 8
게시물ID : panic_197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4
조회수 : 11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9/20 14:54:44
34. 타는 냄새는 수많은 촛불에서 나는 냄새였다. 몇 백개는 되어 보였다. 무언가의 시작을 알렸던 저음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이상한 덮개를 머리에 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확인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단상을 주위로 십 여명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다. 모두 50줄은 넘겨 보이는 사람들이다. '어. 저 사람은......' 동석은 깜짝 놀랐다. 환기구 사이로 보이는 사람 중 한 명은 국회의원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10여명의 사람들 대부분이 신문이나 TV에서 한 두 번은 눈에 익었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고개를 돌려 동훈을 쳐다보았다. 동훈도 그 낌새를 알아 챈 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소리 내지 말라는 표시. 동석은 다시 환기구로 눈길을 돌렸다. 단상 위의 남자가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인 이유는 우리가 바라고 있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바쳤던 많은 노력의 대가를 오늘에서야 받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거렸다. 모두 긍정의 표정이다. "신은 인간에게 쾌락이라는 축복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 쾌락을 누구보다도 심취하여 즐기고 탐미해왔습니다. 쾌락을 신의 선물이라 하면, 정신적 쾌락을 비롯한 육체적, 추상적 쾌락을 가장 깊게 이해하고 있는 우리들이야말로 신의 뜻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쾌락을 절제하고 아끼는 자들은 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단자들입니다. 어차피 그들에게 남는 것은 생명이 다하기 전에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들을 후회하는 일 뿐입니다." "맞소. 그들은 신의 뜻을 거역하고 있소. 인간은 원래 쾌락을 위해 살고 있는 거요. 먹을 것을 찾든, 잠자리를 구하든, 또는 결혼할 이성을 찾는 것까지도 쾌락이라는 한 단어로 모두 합쳐질 수 있는 것이오." 단상에 가까운 곳에 앉아 있는 살찐 남자 한 명이 말을 꺼냈다. 그러자 그의 근처에 앉아있던 사람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맞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의 생각을 천박하다고 할 뿐이야. 어차피 자기들이 마음 속 깊이 꿈꾸고 있는 것도 쾌락이면서 항상 위선을 떨곤 하지."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이 저런 발언을 하다니...... 동석은 이번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손에 식은땀이 베어 나왔다. 사람들의 토론이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자신들의 생각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듣고 있는 동석이나 동훈 조차도 그들의 생각이 조금씩 옳다고 믿어질 정도였다. 워낙 뛰어난 달변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뭐라고 흠잡을 것도 없었다. 얼굴이 동석의 눈에 익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TV에서 조연으로 자주 출연하던 여자다. 지적인 외모로 똑똑한 시어머니 역이나 고생을 많이 경험한 선한 과부의 역으로 몇 번 나왔었다. "이런 옷 따위도 우리들의 쾌락을 추구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요. 이런 껍질은 버리겠어요." 일어선 여자는 갑자기 자신의 옷을 하나하나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단상의 남자와 그 밖의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옷을 입지 않은 이성의 몸을 보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시각적인 쾌락을 느낄 수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또한 옷을 벗는 저도 여러분에게 저의 몸을 보이면서 짜릿한 쾌감을 경험해요." "맞소!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옷을 벗겠소." 뚱뚱한 남자도 덩달아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단상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옷을 걸치지 않게 되었다. "여러분들의 깊은 토론과 관심, 그리고 열정.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진실로 우리들은 궁극의 신의 선물에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목적을 이룰 순간입니다." 단상의 남자는 손을 들어 문 근처에 서 있는 남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그 남자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알몸의 남녀 10여명. 방금 전까지 웅성거리며 토론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신께서 만족하실 만한 결심의 상태를 보여 주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흉물스러운 주름이 피부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신께서는 살아 있는 제물을 원하셨습니다." 이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아까 문을 열고 나갔던 남자가 들어 왔다. 그리고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탕!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많은 사람들의 눈이 그 남자의 손으로 모였다. 그때- "으에에엥!" 귀가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남자가 손에 들고 온 것은 물건이 아닌 <아기> 였다. 단상 위의 남자가 언급한 살아 있는 제물이라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머리에 쓰고 있는 덮개를 살짝 걷어 내렸다. 얼굴이 드러났다. '최일환!!' 동석의 동공이 커졌다. 일환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리투아니아의 제식처럼 살아 있는 아기의 몸에 칼을 찔러 넣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것보다 더 잔인하다. 리투아니아인의 제식은 아기와 닮은 인형을 썼을 뿐이다. "이 살아있는 제물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몸과 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꿈꾸어왔던 <영생>을 얻을 기회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알몸의 사람들이 환호한다. 아기를 들고 있던 남자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일환에게 전달했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모습이다. 아기를 받아든 일환은 양손으로 번쩍 들어올려 사람들의 환호에 답해주었다. 그리고 곧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었다. "이제 본격적인 제식이 임박했습니다......" 사람들이 큰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한글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다. 리투아니아어의 제식 주술 중 하나였다. 갑자기 음산해졌다. 촛불들이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더욱더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동석은 시끄러운 틈을 타 고개를 돌려 동훈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그리고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 전화기 모양을 만든 뒤 귀 옆으로 가져다 대었다. 경찰에게 연락하라는 표시다. 눈치가 빠른 동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어 봤지만 수신불가지역이다. 안타깝다. 동석과 동훈 둘이서 이 많은 사람을 상대하긴 힘들다. 그리고 문 옆을 지키고 있는 남자를 보아서는 문 밖에도 몇 명의 남자가 지키고 있을 듯 했다. 동석은 살며시 속삭였다.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끌어 볼 테니까. 이형사님이 나가셔서 경찰에 연락하세요." 이형사는 당황했다. 애송이 같은 놈이 이런 소리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마음에서 동요가 일어난다. "말도 안돼. 무슨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야." 동훈은 고개를 저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아기를 죽일 순 없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다 늙은 사람들이라 제가 잘만하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엉뚱한 소리하지마. 싸움을 해도 내가 댁보다 몇 십배는 더 많이 한 사람이야." 이때였다. 갑자기 사람들의 주술이 멈추어졌다. 동석과 동훈은 자신들의 대화가 들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재빨리 환기구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단상을 중심으로 큰 원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일환은 단상 밑에서 특이한 모양의 단검 하나를 꺼내었다. 동석은 그 단검을 보고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림 하나를 생각해 내었다. 오래된 그 그림은 라미아가 아이들을 잡아먹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라미아의 왼손에는 불면을 상징하는 횃불과 오른손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바로 그 단검이 지금 일환이 들고 있는 단검과 흡사했다. "차례대로 이리 오십시오." 사람들은 둥근 원에서 한 명씩 빠져나와 단상 앞에 섰다. 국회의원이다. 일환은 그의 손을 들어 단검으로 손바닥에 깊게 찔러 넣었다. 국회의원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듯 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피가 흐른다. 일환은 아까 전해 받은 아기를 그 밑에 가져다 댄다. 아기의 배 위에 피가 뚝뚝 떨어진다. 피가 따뜻해서 아이는 놀라지 않는다. 어느 정도 손에서 피가 떨어지자 국회의원은 원 대열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차례의 사람이 단상 앞으로 나온다. 아까 옷을 가장 먼저 벗어 던진 여자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단검으로 손을 찔린다. 그리고 피를 아이의 몸에 떨어뜨렸다. 아이는 배가 간지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문닫는 소리에 놀라 울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손에서 피를 빼내는 의식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아이의 배에 피가 가득 묻어서 나중에는 아이의 머리와 손, 발, 엉덩이 등등에 떨어뜨렸다. 모든 사람이 그 의식을 마쳤을 때는 아이의 온몸은 붉은 색 피가 덕지덕지 묻어 괴이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아이는 무엇이 즐거운지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비비며 좋아했다. 일환은 아이를 단상 위에 잠깐 내려놓고는 이번엔 자신의 피를 뽑아내어 아이의 몸에 떨어뜨렸다. 이로서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에게 피를 한번씩 떨어뜨린 셈이 되었다. 동석은 장면 하나를 놓칠까 아까워 계속 해서 뚫어져라 환기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피를 떨어뜨리는 광기 어린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아직까지 제물(아기)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이제 신께 저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여 드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일환이 큰소리로 말했다. 단상을 원으로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혀로 핥아먹고 있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는 표정이다. 동석은 환기구를 팔꿈치로 쳐서 부술 준비를 했다. 동훈도 같은 자세를 취했다. 동석은 동훈의 눈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입으로 표현했다. 동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동석도 지금은 서로 다툴 시기가 아님을 깨닫고 환기구 저 넘어 방의 상황을 계속 살폈다. "라미아시여......" 일환이 <라미아>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아이를 단상 위에 눕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깨달은 듯 아이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안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잠깐 호흡을 고르던 일환이 단검을 높이 들었다. 와장창! 동석과 동훈.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기구를 팔꿈치로 부수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이구리 님 作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