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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에 대해
게시물ID : history_199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rfield
추천 : 18
조회수 : 970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5/03/09 09:16:44
최근 역게를 들락거리며 일어난 일들 때문에 때아닌 역사 관련 논문들을 읽게 되었는데 참 감회가 새롭네요.

반학문적, 반지성적인 접근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황된 것인지 새삼 깨달으면서
한편으로는 제 자신의 지식 없음을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유사역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역사학을 망친 마왕으로 설정하는 사람이 바로 이병도입니다.
그래서 이병도에 대해 논문을 좀 찾아봤어요.

사실 약간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전 유사역사학을 적극적으로 배격하는 사람들이 제시하고 해석한 자료들만 보았으니까요.

정말로 이병도라는 사람의 식민주의 사학이 한국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온다면 어쩌나?
내가 믿었던 것들이 틀렸다면, 그래서 앞으로 고개를 들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물론 기우였습니다.

성균관대에서 한국 근현대 민족운동사를 전공하시고 2008년 당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 재직하신
김일수 박사의 논문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병도와 김석형: 실증사학과 주체사학의 분립> 이라는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이병도가 일본 역사학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일제시대에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고
츠다 소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라는, 임나일본부설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이케우치는 조선총독부가 한국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사편수회의 촉탁으로 이병도를 추천합니다.
조선사편수회는 당연하겠지만 식민사관을 형성해 낸 일본 학자들의 집단이었습니다.
한국인은 자주성이 없다는 타율성론, 만주국 수립을 위해 학문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체성론, 만선사관 등등
왜곡된 역사관을 주장했던 이나바 이와키치나 이마니시 류와 같은 사람들이 중점이 되어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공평함을 기하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이병도가 참여한 파트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사라고 합니다.)

이병도는 실증주의 사학의 신봉자였습니다.
실증주의 사학이란 현실적인 주의나 주관의 개입 없이 객관적인 사실(史實), 즉 유물이나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물론 이런 태도가 언제나 옳다고 보긴 힘들고 이병도 개인이 이러한 관점을 철저하게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이병도는 한국인의 민족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군사정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논문을 읽고 이병도라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더욱 커졌습니다.
적어도 그가 현실에서 눈을 돌린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라고 비판받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자, 여기까지 보면 우리나라 사학계가 정말 썩어서 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같은 논문에서 김일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남한 역사학계에서 이병도의 소위 강단학계(실증사학)의 영향력은 매우 컸지만, 이른바 '이병도 사학'은 남북한 역사학계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1952년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신진 학도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 역사학의 재건을 기치로 내건 역사학회가 조직되었다. 한우건, 김철준 등은 '국사개론'(1954)에서 '고증학은 사학에 있어서의 출발점에 있어서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며 그 도달점에 있어서의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하는 것' 이라고 비판하였다. 또 1960년대에 들어 식민사학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추구되고 민족주의사학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한국사연구회가 창립되면서 실증사학의 위세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또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오늘날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이병도의 문제제기는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삼한의 위치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의 제자인 이기백, 한우근, 김철준도 스승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맺음말에서 김일수 선생님께선 아예 이렇게 단언하십니다.

"또한 해방 후 역사학계 내 '친일파 제명 사태'와 한국전쟁기 역사학회의 창립을 거치고 식민사학 극복과 민족주의 사학이 추구되던 1960년대에 들어서자 이병도의 학계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한 가지만 더 예를 들겠습니다.

위에 발췌한 글에서 "민족주의사학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한국사연구회가 창립"되었다는 진술이 있죠?
한국사연구회는 1967년 한우근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단체이고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한국사연구회에서 발행된 논문 중 하나입니다.

제목은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와 식민주의사학의 문제> 이며, 저자는 경희대학교 사학과 조인성 교수님입니다.

제목만 보면 이병도가 식민주의 사학자라고 까는 것 같죠? 근데 내용은 아닙니다.
이 논문에서는 세 가지 사례를 들어 그의 주장이 식민주의 사학과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병도의 학계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시점에서 민족주의사학을 강조하며 설립되었다는 한국사연구회 회지에 실린 논문입니다.

지식이 일천하고 글의 논지와 크게 상관도 없는 관계로 골자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이병도는 단군설화를 허황되게 여기거나 이를 말살하려는 행위를 "졸렬하고 무모하고 또 비과학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또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중국계 이주민이 아닌 고조선 토착세력이 주가 된 국가로 보았다.

2. 이병도는 한사군 중 낙랑군이 가지는 의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이는 식민주의 사학과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낙랑군에 자극을 받아 고대 국가들의 통합이 일어나 삼국 정립의 기초가 되었다는 부분을 강조했으므로 한국인은 고대부터 지배에 익숙한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식민주의 사관과는 차이가 있다.

3. 이병도는 삼국사기의 일부 구간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했는데 이 역시 식민주의 사학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해당 기록을 모두 조작 취급하는 일본인 역사학자 츠다 소키치와는 달리 이병도는 교차검증을 했을 때 연대가 틀렸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물론 제가 보기에도 궁색한 변명인 부분 역시 없잖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병도의 출세지향적, 권력지향적인 면은 옹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병도가 식민주의 사학의 논리 정립과 전파에 앞장섰습니까? 아닙니다.
이병도의 역사관과 그의 주장이 지금 대한민국 사학계를 지배하고 좌지우지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다 썩었다'라는 이야기,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염세적, 무차별적 매도는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기본적인 토론의 자세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할 때 결국 벌어지는 것은 난장판입니다.

이 글을 읽고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반박을 할 때에는 남이 한 말에 대해 직접적으로 가해야 합니다.
또 어디선가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자료를 가지고 와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요.
생각을 바꾸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남의 말을 듣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세요.
그러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면 그게 독재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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