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의정부 모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 고3 수험생입니다. 하도 청소년들이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어른들의 의견이 분분하길래 글을 올립니다. 무척 긴글입니다만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으로 갔다왔는지가 궁금하시다면 읽어주세요.
제가 촛불집회에 처음 참가한 날은 5월 9일이었습니다. 그날은 감기가 2주째 되는 날이면서 비염까지 악화된지 일주일쯤 되는때였습니다. 왜 그동안 병원 안갔냐고 묻지 마세요. 그 전엔 시험기간이라 못갔고 시험끝난뒤에 감기가 악화되었을땐 평일이라 안갔습니다.
야자빠지고 갔다오면 되지않냐, 잠깐 갔다가 다시 학교로 오면 되지않냐 하시겠지만 전 수험생이기도 하고 토요일날 가도되는걸 굳이 학교밖으로 나가고싶지 않았습니다. 한번 학교밖을 나가면 다시 들어가서 공부하려고 앉아도 집중이 잘 안되거든요. 특히 밖에 나갔다가 지나가는 대학생만 보면 끔찍하게 부럽고 아무대학이나 가도좋으니까 지금 포기하고 때려치고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그래서 감기는 날로 악화되었고 그전날 남친과의 말다툼으로 더 힘들었습니다.
남친하고 왜 다투었냐면..남친은 지금 대학생인데 이제 대학 졸업반이에요. 그런데 제가 촛불집회에 친구랑 가기로 했다니까 가지말라고 말리더군요. 물론 제 걱정을 하는것은 이해가 가지만 전 위험하지 않을거라고, 날 이해해달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끝내 남친은 너 하나 빠져도 티도 안난다고 가지말라고 말리더군요. 아무튼 심적 상태도 매우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교무실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오늘은 과외를 일찍하기로 했으니 석식만 먹고 가고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얼굴에 환자티가 역력했던지 매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병원도 꼭 가라고 하시더군요. 평소에 선생님들께서 절 좋게보셨기 때문에 옆에 계시던 선생님들도 한마디씩 하시며 네가 못쉬어서 감기가 안낳는 거니까 주말에 푹 쉬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신념에 따라서 촛불문화제에 가는 것이지만 어쨌든 결과는 선생님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와 함께 가기로했던 친구는 저랑 같은반인데 야자를 빠질수가 없게된거에요. 치과를 간다고 하고 빠지려고 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갔다가 학교로 돌아오라고 하신거죠. 그래서 제 친구의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제 친구의 부모님들은 평소에도 제 친구와 많은 의견을 나누는 분들로 제 친구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우리의 계획은 부모님이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애가 아파서 학교로 못간다고 전하려는 계획이었죠.
그러나 제 친구의 부모님들은 제 친구를 걱정하시면서 가지 말라고 말리시더군요. 사랑하는 딸아! 학생의 본분을 지켜라! 학교로 돌아가! <-어머님이 보내신 문자 그래서 저희는 청계광장으로 가는 내내 지하철 안에서 제 친구의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걱정 시켜드려서 죄송해요. 생각하시는 만큼 위험한 곳은 아니에요. 충분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학창시절 제가 한일중 가장 의미있는일이 될거에요. 몰래 가는 것 보단 부모님께 허락받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다행히 저희의 설득이 통해서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죄송스럽게도 제 친구의 아버님이 담임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버렸죠. 그렇게 해서 겨우 둘 모두 무사히 야자를 빠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 제 부모님께 말씀드리진 못했습니다. 우리아빠는 좀 보수적이셔서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다고 생각하시고 광우병 그거는 먹고 죽는것도 다 헛소리라고 생각하시거든요. 제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다고 하면 경을 치시겠죠. 그래서 지금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의견에 반하는것도, 괜한 걱정을 끼쳐드리는것도 불효겠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모르시게 하자고 혼자 위안삼았습니다.
촛불문화제에 도착한 시간은 여덟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좀 촌년이라 서울엔 잘 안가서 길을 잘 몰라 헤매고 있는데 삿갓쓰시고 수염 긴 할아버지 한분이 너희가 이나라의 주인이다! 미래다! 이러셨어요. 그리고 서명을 하고 가다가 왠 신문기자님이 인터뷰를 요청하시더라구요. 이름을 밝히지 않을것을 약속받고 여러가지를 말했습니다. 양주에 사는 고3학생이며 광우병뿐 아니라 여러 공기업 민영화가 제일 걱정되고 우리를 선동하는 사람이 있기는 커녕 모두가 말렸지만 그래도 넋놓고 지켜보기 힘들어서 올수밖에 없었다고.. 마지막으로 어른들께 하고싶은 말은 투표하지 않는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이라는 말등을 했습니다.
초는 나누어주는줄 몰라서 거기서 파시던분한테 샀습니다. 에잇 그분도 먹고살기 힘드신가보네요. 무튼 자유발언을 듣는데 고3학생이 참 많더라구요. 어떤 동갑내기 여학생은 부모님이 광우병때문에 장사가 안되서 몸져누우셨다고 울먹였는데 같이 눈물이 찔금 났습니다. 분식집도 그렇게 여파가 미치는데 다른 음식점들은 어떨것이며 한우농가는 어떨까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해산을 알리자 많은 분들이 가지않고 쓰레기를 줍더군요. 저희도 집에들어가면 너무 늦을까봐 가려고 했지만 저번에 오유에서 본 조중동이 찍은 촛농사진이 자꾸 생각나서 결국 토니모리(저가화장품 파는곳)카드를 꺼내들고 박박 긁었습니다. 대부분 아줌마 아저씨 아니면 교복입은 학생들이 촛농을 긁더라구요. 어떤 분이 저희가 손으로 촛농을 긁어모으는걸 보시더니 쓰레기 봉투를 주고가셨습니다. 어떤분은 카드는 긁기 힘들다고 자기 자동차열쇠를 빌려주신다더라구요. 하하하하...사양했죠.
시간가는줄 모르고 긁다보니 한시간넘게 그러고 있었더라구요. 거기서 자원봉사하시는 분인가? 아무튼 그분이 저희에게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그만 집에 들어가서 쉬라고 하시더라구요. 저희가 너무 늦게까지 청소할까봐 걱정되셨나봐요. 그래서 결국 집에들어갔습니다. 제 친구는 걱정하신 아버님이 마중나오셔서 같이 전철타고 갔구요. 저두 집앞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아빠가 마중나오셨더라구요. 평소엔 야자마치고 집에오면 12시였는데 그때까지 안오니까 거기서 30분을 기다리신거에요. 제가 미리 전화로 늦는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열두시 이후로는 혼자 다니기 위험하다고 마중나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오랜만에 아빠 팔짱끼고 집까지 걸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옷만겨우 갈아입고 씻지도 못한채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깨어나니 오후 2시..............하하하하하하하 얼마나 잔거야.... 결국 병원 못갔어요.
그래도 갔다오니 마음은 후련하고 몸은 개운하고 뿌듯하고 내가 내 의지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쁘기까지 하더군요. 그동안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보지도, 결정해보지도 못한 우리였지만 그곳에선 모두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고 우리의 의견도 소중하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우리가 촛불문화제에 가는 이유는 우리가 할수있는 최대의 의지표출방법이 그것뿐이기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몇마디 한다고 달라지는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때문이고 청소년이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걸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에요.
아무튼 저와 제 친구가 촛불문화제에 간 이유와 거기서 느낀점은 이렇습니다. 아마 거기있던 수많은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