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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일은 가슴 떨릴것이라고...
게시물ID : humorbest_199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희망Ω
추천 : 169
조회수 : 2928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05/24 13:57:34
원본글 작성시간 : 2008/05/24 10:18:29

나는 이름이 두개고 성이 두개다.
현재의 성과 이름은 돌아가신 친아버지의 성과 족보에 따른 돌림자의 이름이고,
국민학교 2학년 친아버지에게 오기 이전까지는 지금은 돌아가신 친어머니의 성과 그분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았었다.
여전히 기억하고, 누군가 불러주면 그리운 무엇이 풍겨오는 아직도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 펄떡이며 살아숨쉬는 이름을 이젠,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한다.

나는 아버지가 외도를 해서 생긴, 서자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났다.
그리고 국민학교 2학년이 되던해에 처음으로 양어머니가 계신, 그리고 친아버지가 계신곳으로 입적이 되었고, 친어머니와는 이른바 생이별이란것을 했다.
모든것이 어색했고, 모든것이 힘들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양어머니에게 엄마라는 말을 하지 못했고, 친아버지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나의 첫 가출은 국민학교 2학년 비오던 어느날.
아무것도 모르던 그 나이에, 핏줄이 그립다는 이유로 친어머니를 찾아갔었고, 그 집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내가 없는 곳에서도 그분은 웃을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차마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서 다시 친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와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나를 태어나게 한,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셨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사실, 나와 같은 피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
나는 세상이 미웠고, 죽고만 싶었다.
아버지를 땅에 묻던 입관의 순간조차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독한놈.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했지만, 그때의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수가 없었으니까...

모든것이 혼란스러웠고 적응하기 힘들어서 책에만 메달렸고, 누구에게도 무시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비록 시골학교였지만, 교내 순위권을 놓치지는 않았다.중학교 3년 고등학교 입학 그리고 1년동안은 한번도 장학금을 놓치지않고, 학교생활을 했고, 전원기숙사제도의 특이한 고등학교를 일부러 지원해서 다니면서, 교내 매점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1학년을 마치고 있을때, 친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를 보내고, 나를 버리고 한번도 연락이 없던 그 분이 그제서야 연락을 해왔다는 사실이 반갑고도 미웠다.
나를 다시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족사.
양어머님께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늘 연락을 했었지만 양어머님 자신이 내게 연락을 안해주셨다고 하셨다. 양어머님 앞에서는 모든걸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그렇게 내색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느정도 머리가 굵어진 그 나이에 사실 아무것도 수긍을 할 수가 없었다.

가족 몰래 자퇴를 내고, 어린시절의 기억에 기대어 친어머니가 살던곳으로 무작정 갔다.
물어 물어 들으니, 어린 나를 데리고 자주 갔던 강변에 화장해서 뿌려지셨단다.
그 강변을 찾아갔을때 다시금 살아나온 어린 나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이 겹쳐서 떠올랐고, 나는 처음으로 뜨겁게 울었다.

모든것이 무의미 했다. 기대어 울 어깨도 없었고, 힘든 몸을 눕힐 진심으로 나를 안아줄 한 평의 공간조차도 없었다. 살아야만 했지만, 죽음을 먼저 생각했고, 달려야만 했지만, 쓰러질곳을 먼저 찾으려했다.
그렇게 무의미로 방황하던 10대 후반 그리고 20대의 중반까지, 나는 삶을 허비했다.
그때 처음 배운 삶은 꿈꾸는 희망만큼 절망은 늘어나고, 다가오는 만남만큼 이별이 있다는것을 먼저 배웠으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30대에 접어들었다. 
이제서야 모든것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바닥 그 아래의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보니,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고,내가 아는 모든 사람보다 뒤쳐진 30대의 모습, 이른바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사회적 패배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체념하지 않으려 한다.
지난 10년의 실수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살고 있고 내일도 살것이다.
하루 4시간 밖에 못자고, 두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낯선 곳에서 혼자 밥을 먹고, 낯선 곳에서 혼자 길을 물어 찾아가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내일은 가슴 떨릴것이라고.
나를 뜨겁게 하고 미치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일은 나의 앞에 올 것이라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이지, 절대로 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나의 내일은 맑을것이라고 믿으며. 나는 희망을 꿈꾸고 만남을 꿈꾼다.


ps 
아래 집이 가난해서 죽고 싶다고 글을 쓴 18살의 학생이 읽어줬으면 좋겠어.
이런 삶을 가진 나도 살려고 하는데, 나의 불행이 너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남겼어.
더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아무런 불행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도 살고있는게 우리 삶이잖아?
한번 더 믿어봐. 너의 내일을, 너의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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