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이 살짝 포함됐습니다.)
“아 글쎄 정말이라니까.”
스톰윈드 마법사지구의 어느 선술집 안.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프라이팬에 콩기름을 붓고 계란 후라이를 할 때 나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한 사내의 열변에는, 진실을 믿어주지 못하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이 잔뜩 배어있었다.
“우, 웃기지 마. 말도 안 돼.”
이 의심 많은(?) 남자는 말까지 더듬으며 노골적으로 강한 의문을 표출했다. 물론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의 다른 경험담 - 자기가 노움 땜장이왕인 멕카토크의 혼외아들이라느니, 일리단이 존경하던 유일한 도적이라느니, 아서스에게 막타를 넣었다느니, 제이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느니 등의 경험담 - 은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꼼꼼하고 디테일한 상황묘사는 당사자가 아니고선 알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말을 잇지도 못하고 선수를 빼앗겼을 자신이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도저히, 네버 믿을 수 없는 허풍이라 한 마디를 더 내뱉는데 성공했다.
“네, 네가 어떻게 르코마키를 이겨. 그는 냉기마법사라구! 으으, 사자무리 여관 뒤쪽의 멀록따위는 한방에 없애버리는 대단한 실력자란 말이야!”
르코마키. 그랬다. 티요가 성기사 수련을 하던 중 엘윈 숲 사자무리 여관 근처 호수의 멀록 한 마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 그 많던 멀록들을 몰살시키고 리넨옷감을 수집하던 마법사. 그자의 얼음화살에는 차디차게 얼어붙은 노스렌드의 만년설보다 더 깊은 냉기가 서려 있었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얼음창에서는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잔인하다 못해 화려하기까지 한 그 마법사의 학살극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티요에게, 그자는 조용히 다가와 창조된 물빵을 건네고선 유유히 사라졌다. 그 마법사가 바로 르코마키였던 것이다.
“하아.”
몽쉘은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잠깐의 침묵 동안, 티요는 처음으로 승리감을 맛보았고, 몽쉘은 어떻게 해야 이 멍청한 녀석을 재밌게 데리고 놀며 속이, 아니 어떻게 해야 이 속고만 살아온 가엾은 친구에게 세상은 아직 믿을만한 따뜻한 곳이란 걸 믿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몽쉘의 고민이 끝나갈 무렵, 이 짧은 침묵을 깬 것은 몽쉘도 티요도 아니었다.
어이 주인장! 파리좀 치워줘!
“,,,,,, 그렇게 동경하던 엘프라도 나왔나?”
“엘프는 아니었습니다.”
“엘프?”
“에, 엘프?”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엘프를 외쳤고,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으슥한 술집 구석 테이블에서 시선을 멈췄다.
“뭐야? 저것들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완벽한 시나리오를 읊을 기회를 놓친 몽쉘이 곱지 않은 표정으로 구석 테이블을 째려보며 짜증을 냈다.
“그, 그러게. 우리 말고도 누가 있었네.”
그러고 보니 이 술집은 조금 이상했다. 아무리 외곽이라곤 하지만 명색이 스톰윈드에 있는 술집인데, 한창 북적거릴 시간임에도 손님이 없었던 것이다. 몽쉘의 화려한 경험(?)담을 듣다가 목이나 축이러 들른 몽쉘의 단골(?) 술집이었는데, 처음엔 이야기에 빠져서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들이, 엘프라는 단어와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다고 믿었던 술집은 비록 몇 안 되지만 손님이 있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들의 존재감이나 목소리는, 정말 의식을 집중하지 않고선 알아채기 힘들었다.
“빌어먹을 쥐새끼들 같으니라구. 꼭 지저분한 머저리들이 저렇게 음흉하게 숨어 있다가 뒷통수 친다니까? 티요 자네만 없었으면 내 저런 녀석들 패치되는 날 트롤 털리듯 패버렸을 거야. 운 좋은 줄 알어. 에잇, 폴드링 같은 놈들!”
단지 자신의 말할 타이밍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정체불명의 두 사내는 막타 스틸의 대명사 폴드링이 되어버렸다.
티리온 폴드링의 업적
다리온 모그레인으로부터 아버지의 유품인 정의의 인도자 강탈
모험가가 힘겹게 잡아 놓은 리치왕 막타 스틸
볼바르 폴드라곤의 마지막 부탁 - 리치왕이 존재한다는 사실 알리지 말라 - 을 가볍게 무시, 달라란 중앙에 동영상 제공되는 동상 설치
“이놈의 술집은 또 왜 이따위야? 불도 좀 환하게 켜놓지 양초값 아끼나? 이런 술집이 꼭 맥주에 물탄다고. 이거봐 이거봐. 이게 3천이야? 2700이구만! 내가 이래서 첨 오는 술집 오지 말자고 했잖아?”
“저기, 몽쉘. 니가 단골이라며 끌고 온건데,,,,”
펄쩍 뛰며 한마디 하려던 몽쉘은, 자기 이야기에 취해 신나게 떠들다가 뱉었던 ‘여긴 내가 세 살 때부터 다녔던 단골’ 이란 말이 급하게 떠올랐다.
“아니, 지, 지미 아저씨가 그만두셨구만. 그래, 맞아. 주인이 바뀌었다구!”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숙한 둘러대기에 몽쉘은 마음을 졸이며 슬쩍 티요의 눈치를 봤다. 티요의 얼굴, 싸늘하다. 가슴에 심판이 날아와 꽃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말돌리기는 의심보다 빠르니까.
“어라,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티요, 잠깐만. 저기 저 녀석이 누군 줄 알아?”
“누, 누군데?”
“저 녀석이 바로 그 유명한,,,,,,”
“유명해? 누군데 그래?”
“그 유명한,,,,,, 씨, 씹쒜끼? 봐봐 저 뒤로 길게 묶은 하얀 머리 놈. 저놈이 인신매매로 유명한 악당 아이언블러드잖아!”
“아이언블러드? 아, 아이언블러드라면 그 엘프들을 납치해다가 팔아먹는 녀석 맞지?”
“그렇지! 바로 그놈이라니까.”
“으, 수배서 사진하고 많이 달라 보이는데,,,,,,”
“이 한심한 친구야. 당연히 변장한 거지. 저렇게 유명한 놈이 나잡아가라고 맨얼굴로 다니겠어?”
“그, 그러네. 근데 몽쉘 넌 어떻게 아이언블러드를 알아 본거야? 변장까지 했는데?”
“저놈들 아까 뭐라고 했어? 엘프라고 말하는 것 들었지?”
“그거 나도 들었지. 근데 엘프라고 말한 것 가지고만 저 녀석이 아이언블러드라는 건 좀 억지잖아.”
“어휴, 답답하다.”
‘요놈 봐라? 갈수록 반격이 심한데?’
아주 유명한 그, 쒸, Ship Ski?
티요의 조목조목한 반박에 몽쉘은 목이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이 궁지에 몰리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티요를 상대로 말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인 법. 이 상황을 잘 풀어나가면 티요는 나를 더욱 신뢰할 것이다. 몽쉘은 위기의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굳게 믿고 따랐던 명언을 생각해냈다. ‘도박은 던진 만큼 얻는다, 진정한 구라는 99%의 거짓과 1%의 진실로 이루어진다.’등. 지금은 모든 것을 던질 용기와 1%의 진실이 필요한 순간이다.
“좋아, 자네가 그렇게 날 의심한다니 어쩔 수 없고만. 저놈들 말하는 걸 잘 들어보자고. 확실한 증거가 나올 테니. 지켜보다가 그럴 만한 증거가 안 나오면 내 지금껏 친구에게 했던 모든 예기들이 뻥이었다고 생각하게.”
“아니, 뭐, 그렇게까지,,,,,,”
몽쉘의 강한 자신감과 다짐에 괜히 미안해지는 티요였다. 그런 티요를 바라보는 몽쉘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아이언블러드’를 주시하며 자신의 첫 번째 전략이 통했음을 확신했다. 이제 1%의 진실(처럼 생겨먹은 것)이 나타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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