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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넋두리
게시물ID : freeboard_20000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걈쟈
추천 : 1
조회수 : 58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2/12/20 10:48:28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어수선한 집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숨을 돌릴만 하니 아이가 찾아왔다.

 

결혼식을 올린 그 다음달에 임신 사실을 알았다.

연애하면서 더이상 헤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밤새 같이 술도 먹어보자고

밤새 영화도 같이 보고 주말이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우리 집에 콕 박혀서 놀아보자고 했는데

임신을 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임신초기의 산모는 조심해야될게 너무 많다.

아파도 안되고 함부로 먹어도 안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안된다.

 

하루 커피를 2~3잔씩 챙겨먹던 나였는데 하루아침에 커피를 끊었다.

하루 한잔은 괜찮다고 하는데 먹히질 않는다. 디카페인도 막달은 되서야 먹었다.

임신초기 증상이였는지 커피를 끊어서인지 두통 때문에 힘들었다.

지끈지끈 거리며 아프던게 나중엔 오함마로 머리속을 내려치듯 아팠다.

아, 타이레놀 한알만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먹을 수 없었다.

타이레놀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내가 별난건지 먹히질 않았다.

 

약보단 커피가 나을거 같아서 디카페인 라떼를 반잔정도 마셨다.

효과가 있는건지 간만의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그랬는지 조금 좋아지는거 같았다.

 

입덧은 심하지 않았지만 냉장고 냄새 화장품 냄새가 이렇게 역할 수 있구나라고 처음 알았다.

바디워시도 몇번을 바꿨다. 깨달은거 하나 세상에 무향은 없다. 오히려 무향이 더 역하게 느껴졌었다.

 

임신기간 중 그나마 괜찮은 중기를 지나 막달엔 숨쉬는것도 힘들었다.

잠도 편히 잘 수 없고 미운 내 몸도 마냥 사랑할 수 없었다.

 

예정일이 지나도 나올 생각이 없는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세상밖이 아직 무서운가 싶어 더 기다려주고 싶었지만 아기는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시간이 더 지날수록 내가 너무 힘들거 같아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유도분분 1일차 실패하고 2일차에도 전혀 기미가 없고 의사선생님이

내진을 하면서 양수를 터트렸다. 그때부턴 정말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 찾아왔었다.

자궁문은 3cm가 겨우 열린 상황에 아기 심박수는 불안정하고 태변도 눈 상태라 그대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첫째날 유도분만을 통해 자연분만을 시도했으니 1차 제모를 했었는데

수술을 하게 되니 제모 부위가 다르니 밀려오는 진통을 겪으며 벌거벗긴채로

제모를 하니 그 아픈 와중에도 뭔가 수치스러웠다.

여차저차 수술실로 들어가 마취를 하고 누우니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기가 으앙하고 울었다.

나도 눈물이 터졌다. 아기가 무사히 나왔다는 안도감, 뱃속에서 잘 놀던 아기를 내가

힘들다고 억지로 꺼낸것 같은 미안함, 죄책감이 들었다.

 

딸이였다. 나를 꼭 닮은 딸이였다.

 

수술 후 회복은 그럭저럭 참을만 했다.

남편도 3일 동은은 극진히 간병해주더니 4일차 내가 이제 좀 걷고 회복이 되니 본인이 죽겠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와 회복되지 않은 몸을 끌고 2시간에 한번씩 수유하러 불려나갔다 오면

내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있곤 했다. 깨울까 싶어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보호자 침대가 따로 없어서 소파에 몇일 구겨져 잤으니 고단했겠지하고 말았다.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친정집으로 와서 2주간 지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영 회복이 안되고 직업병이기도 하지만 임신하면서 심해진 손목통증은 육아를 시작함과 동시에

너덜너덜해진 걸레마냥 망가진것 같았다. 2시간 마다 수유를 해야되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수유자세에 온몸이

굳어 하루종일 찌뿌뚱 했다. 뭐 가장 힘든건 잠을 못자는거지만.

 

아기가 50일이 지나면 나도 어느정도 육아에 적응이 되서 조금 나아진다. 

그래도 아기는 여전히 신생아같다.

남편도 새벽수유에도 같이 일어나서 자리를 지켜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트림을 시켜주거나 했다.

 

아기가 100일이 지나면 꽤 편해진다. 목도 어느정도 가누기 시작하고 잠도 밤에는 잘자니까

잠은 길게 잘 수 있지만 젖이 밤새 차올라 자세를 바꿀때마다 욱신거리는 가슴과 젖이 너무 차서 옷이랑 침대를 적실 정도면

새벽에 일어나서 유축을 해야되니 잠을 깊게 못자는건 사실 똑같다.

 

아기도 어느정도 크고 내가 잠도 밤에는 자기 시작하니 남편은 점점 불만이 많아진다.

내가 휴직을 6개월밖에 쓰지 못하고 친정,시댁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남편이 휴직1년을 신챙해두었다. 

 

임신을하고 남편은 내게 물었었다. 일을 더 하고 싶냐, 아이를 키우고 싶냐라고.

물론 아기를 더 키우고 싶었다. 크게 내가 하는일에 자부심이 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또 일자리는 다시 구하면 될일이라 생각했었다.

 

근데 남편 외벌이로는 생활이 힘들었다. 둘다 모은돈도 크게 많지 않은 상태로 시작해서 여유롭진 못했다.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이지만 급여는 나보다 적었다.

당장 돈으로만 따지면 남편이 그만두고 내가 일하는게 가계에는 더 도움되는 상황이였다.

 

근데 또 이렇게 얘기하면 남편 자존심 상할까봐 내가 그냥 일에 미친 여자가 되기로 선택했다.

주변에는 아기가 저렇게 어린데 일을 나가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앗다.

나는 일에 미친 여자가 되었는데 남편은 아내 커리어와 아기를 위해 희생한 남편이 되어 있더라.

또 복직때문에 단유를 생각하며 더 먹일 수있는 모유를 강제로 끊어서 아기에게 먹이지 못하는 죄책감을 가지는건 나뿐이였다.

후에 호되게 아프고 젖이 말라 어쩔 수 없이 단유하게 되어서 차라리 맘이 편할 정도였다.


아기가 어느정도 크고 시간이 흐르니 남편은 슬슬 약속을 잡고 싶어했다.

휴직 전에 직장동료들이랑 술한번 더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남편을 가둔것도 아니다. 주말에 친구들 결혼식도 다 갔고 남편은 어차피 타지에 친구들이 다 있어서

평일엔 볼수도 없었다. 요근래 자유가 없다는 둥 아기태어나고 나선 술자리를 거의 안갔다는 둥 회식도 잘 안했다는 둥

눈치보인다는 둥 얘기를 한다. 안간것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에는 그래 당신도 힘들지 하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나는? 나는 아기 낳고 우리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치루는 3일 말고는 단한번도 아기랑 떨어진적이 없는 나는이란 생각.

나도 너랑 똑같이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 다니고 너만큼 공부도 했고 너만큼 직장도 잘다니고 있었는데

아기가 태어나서 왜 나는 이 모든게 눈치보이고 죄책감 들고 내가 하는게 왜 당연한건데라는 생각.

왜 같이 하는게 당연한게 아니고 내가 하는게 당연한거고 네가 해주는건 내가 왜 고마워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남편도 내가 하는걸 당연히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 부터는 내가 하던 모든게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산후우울증은 스치듯 지나간거 같은데 육아우울증인지 요즘은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난다.

그냥 눈물이 난다. 아기랑 잘 놀다가도 눈물이 뚝뚝 흐르고 아기 기저귀를 잘 갈아주다가도 눈물을 뚝뚝 흐른다.

 

그래도 꾹꾹 눌러가며 참으며 산다.

배아파 낳은 아기는 너무 예뻐서. 클수록 키울수록 정이 쌓여 그런지 점점 더 예뻐지는 내 아기라서.

이렇게 집에서 아기만 보고 사니 내 인생의 유일하게 잘한건 아기밖에 없는거 같아서.

 

아기만 보고 사는 게 내삶의 원동력이다가도

아기만 보고 사는 게 내 우울감의 원인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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