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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군인도 돈 쓸데 많다
게시물ID : humorstory_200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
추천 : 12
조회수 : 90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0/10/03 16:20:50
운용장교에게 부탁했더니 한큐에 프로그램 뚫어줘, 필터링 할 필요가 없어졌다. 죽으나 사나 좋은 건 동기인듯.

 

 군인의 돈 문제 썰을 풀어보려 한다.

 

 단기라면 장교건 부사관이건 의무복무라는 점에선 병사와 다를 바 없다. 다만 핵심적인, 즉 월급은 대접이야 어떻건 간에 대충 사람다운 수준을 받는다. 함부로 까발리긴 곤란하지만 올해 중위 단 짬찌인 내 월급은 본봉에 초과근무에 잡수당 다 합쳐서 백오십 정도, 아니 턱은 못 건다. 갓 들어온 하사도 돈 백만원은 받는다.

 

 병사들 돈 적게 받는거, 어떻게 보면 아무 문제 아니다. 돈 벌고 싶으면 장교나 부사관으로 오지 그랬어, 라는 말 한마디에 끝이니까. 하지만 병사들 돈 적게 받는거, 충분히 문제다. 병사들 돈 쓸데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군대를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생각보다 병사들의 '군대에 대한 감정적인 실상' 은 잘 모른다. 일반 전투병과에 비해 비교적 희소한 주특기인 부관이기 때문에 상급부대에 있다 뿐, 짬이 되는거도 아니고 소대장을 하면서 병사들하고 함께 굴러먹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부관 주특기로 인사계열 업무를 하다 보니, 군대가 어떤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병사들을 다루는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좀 알게 되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병사들 돈 쓰려 하면 정말 돈 많이 들어간다.

 

 알다시피, 보급품이랍시고 나오는 물건들의 질을 보면 그렇게 기가 찰 만큼 개판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군말 없이 써도 기분 좋을 수준도 아니다. '씻는다' 라는 활동에 관련하여 군에서 지급되는 건 초록색 비누, 칫솔, 하얀 치약, 면도날이 전부다. 자기관리에 별 관심이 없는 나도 세안용품을 세 개는 깔고 씻는데 정말 비누로 머리 감고 몸 씻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이러니 여기에 돈 든다.

 

 PX에 섬유유연제 판다. 섬유유연제는 보급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병사들 입장에서 결코 싼 건 아니다. 보급이 나오는 건 합성세제 뿐이다. 슬슬 입질 온다. 군인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좀 열악한 환경에서 어려운 일 하는게 당연한 거고, 군인이 일반 민간인처럼 할거 다 하고 갖출거 다 갖추고 하려 하는 것 자체가 발상이 좀 잘못된 거 아니냐고. 잘못된 거 절대로 아니다. 앞으로도 몇 개 더 늘어놓을 셈이지만 지금 주워섬기는 것들, 10년 전 20년 전에는 삶의 질과 관련한 사치품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생활 필수품이다.

 

 병사들이 항상 아우성치는 것 중 하나가 빨래 건조의 애로함이다. 세탁기는 매일 돌아가고 세탁물은 매일 나온다. 생각같아선 병사 두당 한 평씩이라도 건조장 내 주고 싶지만 실제로 그게 여건이 안 되는 건 사실이다. 내 있는 곳같이 이름에 '사령부' 니 '본부' 니 하는 말이 들어가는 곳이나 전투근무지원 부대는 좀 낫지만, 말 그대로 전투부대나 전투지원 부대는 애들 옷이 하루만 가도 쑥대밭이 나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나름대로 병사의 복지를 고려해서 들어온 것이 건조기인데, 돈 받더라. 500원짜리 두 개 넣고 돌리던데.

 

 액수가 대단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얘들, 이등병 월급은 8만원이 안 되고 병장 월급은 10만원이 안 된다. 10만원 잡아도 월급의 1%로 사흘이 멀다 하고 나오는 빨래 말리고 싶은 사람 몇이나 되겠어. 군대는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해서 의식주를 월급으로 해결 안하니 단순 비교는 무리라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생각해 보라. 여기 짬밥 먹고싶어서 먹는 사람이 있나, 군복 입고싶어서 입는 사람이 있나, 막사 자고싶어서 자는 사람이 있나. 게다가 갔다온 사람들 다 알다시피, 그 먹고 입고 자는거 절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잖아.

 

 '애들 편의와 복지를 고려해서' 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군대 내 몇몇 시설이나 물건들은 모조리 유료다. 노래방도 그렇고, 플스도 그렇고, 사이버 지식 정보방이라 하는 PC방도 그렇다. 애들, 일과시간엔 대부분의 경우 큰 의미 없는 사역에 시달리고 일과 후 시간에 여가를 보내고 싶어도 다 돈 드는 것들 뿐이다. 헬스로 몸 만드는 것 정도가 공짜일까.

 

 뭐니뭐니 해도 PX가 가장 큰 비중이겠지. 면세담배 폐지로 담배피우는 애들이 고스란히 2000~2500원 돈 다 내고 담배피운다는 건 이미 얘기했고, PX라고 해서 더이상 만원짜리 한 장 들고 가면 한아름 싸들고 나오는 그런 별천지가 아니다. 물가 오르고, 병사들 월급도 올랐지만, 물가는 더 많이 올랐다. 뉴스 보니 병사 월급이 50년 전에 비해 500배가 되었다고 하던데, 500배라고 해서 우와~ 하면 개소리밖에 안된다. 핵심은 500배가 되었어도 돈 10만원이 안 된다는 거지.

 

 나도 PX 자주 이용하다보니 밖에서 주전부리 사는건 돈이 좀 아깝긴 하지만, 이 PX에도 함정은 있다. 다름아닌 아이스크림이다.

 

 빙과류 유통이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건 이미 다 상식적으로 아는 얘기라 믿는다. 어쨌든 빙과류의 정가는 쓰여있는 가격의 절반이 정가다. 하지만 PX에서는 일괄적으로 표기된 정가에서 세금 제한 가격을 받는다. 2천원짜리 아이스크림 밖에서 천원이면 살거 애들은 천 오백원 낸다. 겉봉에 2천원이라고 써 있으니까.

 

 전화도 수신자 부담 하면 눈치가 보이니 전화카드 사서 통화하는 병사들이 많더라. 백이면 백 다 시외전화 아니면 휴대전화로 거니 전화비도 만만찮다.

 

 결론적으로, 아니 다시 말해, 군대는 '다 필요없고 몸만 오면 되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거다. 훈련이나 업무에 필요한 것들, 그리고 짬밥과 군복과 막사 숙박을 제외하고는 이들 또한 거의 모든 용역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이러니 집에 손 벌리는 병사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월급 몇 푼 나오지도 않는 거 악착같이 모아 백단위 만들어 나가는 병사들도 열에 한명 백에 한명은 있다. 하지만 그건 말하자면 밖에서 환절기나 연말연시에 나오는 미담사례에 가깝다. 독지가가 재산을 희사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례가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마음을 따듯하게 해 줄수는 있어도, 차상위계급을 커버치지 못하는 복지제도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평범한 병사들에게 있어 군복무는 돈이 전혀 안 드는 것이 아니며, 악착같이 돈 모으는 병사의 사례가 있다고 해서 이 상황 자체가 정당화되는 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은 병사들이 몸만 갖고 있으면 군생활 하는 줄 알고 있으며, 이는 자식 군대 보낸 부모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병사들은 집에 손 벌릴 때 민망하고, 부모들도 얘는 군인이 군대에서 무슨 돈을 쓰냐며 타박을 주게 된다.

 

 덧붙여 교통비가 지급되는 병사 휴가는 정기휴가 세 번 뿐이며, 그 이외의 휴가에선 따로 교통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이거도 쌩 자기 돈 나간다. 후급이라고 군수계통으로 교통비 면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쉽지 않다. 외박이라도 한 번 나가 놀라 치면, 나도 애들 외박에 껴서 술사주고 밥사주고 하는데도 애들 돈 십만원 우습게 깨진다더라. 그나마 산골에 박혀 있는 부대 근처의 손바닥만한 마을 상권 물가는 장난이 아니다.

 

 두서 없이 늘어놓았는데, 뭘 꼭 작심하고 제대로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대안이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병사들 월급이 몇십년 전에 비해 몇백배 올랐다는둥, 매년 인상을 통해 월급을 현실화하고 있다는둥, 군인이 돈 쓸데가 어디 있냐는둥 하는 뻘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세안용품의 경우 이제는 현물 대신 돈으로 지급하려고 한다는데 그게 매달 3천원 정도 보고 있단다. 여기가 이런 수준이다. 누가 이러다 짬도 돈받는거 아니냐 하는데 어차피 군대밥이라는게 돈내고 먹을 정도가 되는거도 아니지만 실제 병사들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한다.

 

 

 육사 출신 예비역 대령이 부대에 와서 강연 했었다. 자기가 가만 보니 50년간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군대는 그대로라고. 3,40년 전만 해도 군대 처우나 생활이 바깥보다 나았거나 최소한 비슷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아니라고. 이 '상대적 피해' 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나라가 나름대로 잘 살게 되면서 생활에 있어 많은 것들이 더 이상 '플러스 알파' 가 아니게 되었다. 해 줄 수 있으면서 안 해주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서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60만 군인이 모두 똑같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건 어디 못사는 나라 가서 너네는 다같이 못사니까 괜찮은거 아니냐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임무이고 때에 따라 부차적으로 사람답게 못 사는 경우가 있을지 몰라도 그게 상시 당연시되어서는 안 되는거다. 병사들도 사람답게 살려면 돈 많이 든다.

 

 근무없는 날마다 동기랑 먹을판 술판 벌이느라 휴대폰 요금이 밀릴 정도인 짬찌 중위가 이정도로 보고 있으면 나름대로 상황 파악 잘 한거 아냐? 병사들 심정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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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딴지일보 하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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