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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대한 오해
게시물ID : history_200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랠래래래
추천 : 5
조회수 : 251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3/15 15:28:22
코페니쿠스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이분이 그냥 천문학자가 아닙니다.검색좀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당대의 팔방미인이었습니다. 의학에도 엄청난 수준이었고
수학 경제학 교회법까지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이정도
공부하려면 후원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당시에 코페니우스경우
교회의 대주교였던 외삼촌의 후원으로 공부를 하였죠. 그말은
신부가 즉 성직자나 교회를 도운다는 전제로 후원을 받았다는말이죠.
자 그렇다고 한다면 저위에 속칭 주둥아리 Theory 를 외치는 분이
말하는것처럼 교회의 억압 숙청 금서 등등을 받았냐? ㅋ

아닙니다. 혹자는 교회가 무서워서 지동설을 숨기고 숨겨서 마지막에
공개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코페니쿠스는 이미 자신의 주장을 천문학자들 사이에 이야기 했고. 
그말은  알 만한 사람은 대충 코페니쿠스 주장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이 ‘코페니쿠스적 전환’까지 예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동설이 뭔지 대충 감은 잡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그당시
코페니쿠스가 뭘 주장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고합니다.
즉 그가 책을 내도 뭔지 감을 못잡았다는 이야기죠...

그렇다고 한다면 금서는 뭐냐?
금서에 대한 부분은 .. 위키왈 ~

책에 쓰여진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 가장 먼저 반발했던 개신교 신학자들과 달리, 16세기까지 침묵하던 로마 가톨릭은 1616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금서로 지정하게 된다. 헤르메스주의자였던 브루노가 코페르니쿠스체계를 옹호했기 때문인데, 우주의 중심을 태양이라고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도 헤르메스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었다. 옛 이집트 종교가 참된 신앙임 동시에 가톨릭도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극단적인 자세를 취한 브루노는 이단으로 여겨져 교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와 관련된 모든 사상은 모두 한통속이라고 취급 받았으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도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가 1758년 금서에서 풀려났다..[13]


 코페니쿠스가 교회의 억압숙청 금서지정및 사회적 매장을
당했다면 과연 코페니쿠스가 교회의 무덤에 매장이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코페니쿠스는 교회묘지에 매장불가입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51104105815&Section=04

"폴란드 고고인류학연구소의 예르지 가소프스키 소장은 3일 4명으로 구성된 발굴단이 
바르샤바에서 북쪽으로 290㎞ 떨어진 프롬보르크 시에 있는 
한 가톨릭 교회의 허물어진 묘지에서 천문학자 겸 성직자였던 
코페르니쿠스의 두개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가소프스키는 발굴단이 성당 바닥 밑에 있는 무덤들을 1년 간 샅샅이 조사한 끝에 
지난 8월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을 발견했다면서 
"우리는 이것이 코페르니쿠스의 것임을 100%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건 한국측 기사인데 밑에 보시면 DNA 테스트 통해서 밝혀냈습니다.

http://blogs.discovermagazine.com/discoblog/2008/11/20/dna-test-solves-the-mystery-of-copernicuss-remains/#.UX8zGqIz1jY

보시면 교회묘지에 편안하게 매장되서 돌아가신분인게 보이죠..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215019006


http://ko.wikipedia.org/wiki/%EB%8B%88%EC%BD%9C%EB%9D%BC%EC%9A%B0%EC%8A%A4_%EC%BD%94%ED%8E%98%EB%A5%B4%EB%8B%88%EC%BF%A0%EC%8A%A4

http://www.kictnet.net/bbs/board.php?bo_table=sub5_1&wr_id=123

http://blog.daum.net/k0011/5444852

http://cuttyshark.egloos.com/4628184







2 갈릴레오 갈릴레이...

정말 안티들의 단골 떡밥 사골국물의 인물이죠...

혹시 아시나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말 한적 없는걸... ^ ^ ㅋ

http://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305540.html

갈릴레이 종교재판의 진실

흔히 갈릴레이가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즉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이 교회와 과학과의 갈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만일 그랬다면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주장한 갈릴레이보다는 코페르니쿠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비록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금서가 되기는 했지만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심지어 교회 지도부 내에서도 갈릴레이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이유를 진실에 대한 교회의 탄압이라고 보는 견해는 지나치게 사건을 단순화시켜 그 본질을 왜곡시킨 것이다.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mcode=$mcode&art_id=200603012043433&sec_id=561201
 
 
"종교재판, 그것도 이단을 심문하는 재판으로서는 너무도 관대한 처분이었다. 갈릴레이에게 내려진 벌은 근신이 었다. 이제까지의 진행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들…그러니까 갈릴레이는 학자적 양심에 따라 지동설을 주장했고, 그걸 무지몽매한 교황청이 받아들이지 못해 갈릴레이를 핍박했다는 것…이건 거짓이었다. 교황청은 최대한의 배려를 다했고, 갈릴레이가 확실한 증거만 가져오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 당시 이미 교황청은 지동설에 대해 인정하고 있었고, 확실한 증거만 있다면 이를 인정하려 했던 것이다. 문제는 갈릴레이였다.

그가 종교재판까지 가게된 이유는 증거도 없이 지동설만 주장하며 주변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탄압을 받은게 아니라 탄압을 불러들였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말하자면, 그가 재판장을 나가면서 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 그 말을 했냐는 것인데, 실제로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말은 그가 죽고 나서 100여년이 흐른 뒤에 나온 그의 초상화 밑에 적혀 있었던 글귀였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에피소드를 듣고 포장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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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대화』, 1632년에 발간된 책의 속 표지


1616년 5월 5일의 교령이 나온 며칠 후 로마 교황은 그 교령 안에 전혀 이름이 언급된 바 없는 갈릴레이를 접견했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을 완전하게 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로마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또 그 일에 대해 반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갈릴레이가 그것을 절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바라지 않던 바를 갈릴레이는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증명도 하지 않은 채 주장해 버렸다. 1633년의 재판은 그 때문에 열렸던 것이다. 그때의 재판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갈릴레이는 공정하고도 적절한 처우를 받았는데, 종종 인용되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리고 기록을 보아도 분명하지만, 갈릴레이는 애당초 압력을 받기 전에 먼저 주장을 철회했다.


갈릴레이가 유죄가 된 것은 불복종이라는 죄목에 따른 것이지 이단이라는 죄목 - 교회가 이단이란 죄목으로 처단하기를 바랐다면 손쉬운 일이었을 테지만 -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갈릴레이는 앞으로 태양 중심의 우주론을 우주의 현실이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금지당하기는 했으나 천문학적, 수학적 작업 가설로 주장, 논의, 부연하는 것까지 금지당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연구를 더 진척시킬 수 있는 길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열려 있었다고 교회사가(敎會史家)인 발터 브란트뮐러는 쓰고 있다 (『갈릴레이와 교회, 오류의 권리』, 레겐스부르크, 1982).


갈릴레이가 재판 기간 중에 감옥에 있었고, 고문을 받았다는 따위의 말은 다 후세에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확실히 갈릴레이는 재판 받는 동안 이단 심문소의 수인 처지였으나 독방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바티칸 궁전 안에 주거를 할당받고 자기 하인의 시중까지 받을 수 있었다. 갈릴레이는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피렌체 대사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 받았다. 어쨌든 갈릴레이는 피렌체 아카데미의 수학자였으며, 영사(領事)이자 피렌체 2백인 참사회의 멤버였고, 로마에서도 코스카나 공작의 비호를 받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법정은 갈릴레이에게 형식적인 금고형을 선고했지만 갈릴레이는 실제로 감옥에 들어갈 필요 없이 재판이 끝나자마자 로마를 떠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동안 시에나 대주교 밑에서 지내다가 만년의 몇 년은 피렌체 근교의 알체체트리 촌(村)에 살면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곳에서 집필한 최후의 대저작이 『두 개의 과학에 관한 대화』로서 갈릴레이는 기계 물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자료제공: 다음카페<불가사의 집합>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대충 보시면

1. 종교재판이유는 2 주장이 있는데.

a 갈릴레이가 팩트를 준비하지도 안고 어그로 끌면서 지동설 주장했기 때문에

b 당시 역사적 신교와 구교의 대립상황에 책의 돌핀문양의 오해로 인해서.

마지막으로 가택구류는 도데체 뭘말하는건지...

http://ddcat.nasay.net/zboard/bbs/zboard.php?id=galilei&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



마지막으로 브르노....

개인적으로 이사람이찐자 과학을 주장하다 순교했다고 볼수있을까요?



holding opinions contrary to the Catholic faith and speaking against it and its ministers;
holding opinions contrary to the Catholic faith about the Trinity, divinity of Christ, and Incarnation;
holding opinions contrary to the Catholic faith pertaining to Jesus as Christ;
holding opinions contrary to the Catholic faith regarding the virginity of Mary, mother of Jesus;
holding opinions contrary to the Catholic faith about both Transubstantiation and Mass;
claiming the existence of a plurality of worlds and their eternity;
believing in metempsychosis and in the transmigration of the human soul into brutes, and;
dealing in magics and divination.

남아 있는기록에 나오는 그의 이단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분이 다중우주 주장하다가 잡혀서교회가 죽였다는게 저분 논리같은데
뭔가 잘못된게 있습니다. 교회가 사형을집행하지 안았습니다.

그당시 사법기관에서 집행을 한거죠. 말은 바로 해야죠.

http://forums.catholic.com/showthread.php?s=eb23ac5df4941c2bd2a4058c4c997afa&t=496105&page=2

캐톨릭 웹사이트에서 이문제에 대해서 논의 한건데 영어 되신다고하시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흥미로운게 지금도 교회에서 목사와 상담을 하게 될때에 
범죄를 당했거나 혹은 범죄자라면 목사 혹은 신부 혹은 성직자가
경찰에 신고를 할경우 그사람을 죽인건냐는 질문이 있네요.

좀더 자세한 내용입니다. 보시면
그시대 당시 이단 신학을 주장했고 연금술과 마술이 나오네요..

http://www.newadvent.org/cathen/03016a.htm


The excommunicated Catholic priest, excommunicated Calvinist, excommunicated Lutheran, Giordano Bruno, was burned at the stake '"not condemned for his defence of the Copernican system of astronomy, nor for his doctrine of the plurality of inhabited worlds, but for his theological errors, among which were the following: that Christ was not God but merely an unusually skilful magician, that the Holy Ghost is the soul of the world, that the Devil will be saved, etc. "

It seems that he was convicted for theological rather than scientific rea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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