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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중편,브금]가끔은 이질적인 세계 - 고양이 무덤 中 -
게시물ID : panic_199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0
조회수 : 179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9/26 00:09:41
그날 이후로 보름동안 나는 그 남자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우연으로라도 한 번쯤은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리 자주가지 않던 칵테일 바도 거의 매일같이 들려 그와 의 재회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어찌된 일인지 더 이상 그 칵테일 바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까지 그와의 재회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때 그의 집에서 있었던 무례한 짓을 용서받고 싶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그만 그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안한 마음 한구석에서도 알 수 없는 의혹의 싹이 피어나는 것을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의 방문이 닫히면서 느꼈던 그 오싹한 감정이란 아마 다시는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가 의도적으로 그랬을 거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우연스럽게도 방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그 가 다시 닫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타이밍이 실로 절묘했다는 말밖엔 할 수 없지만. ‘ 그가 그런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에 대해 약간의 미안한 감정은 남아있었지만 그렇다고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맨 정신에 찾아가기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술에 취해서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직접 그의 집 벨을 눌러 머리를 들이미는 짓 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일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내고 있을 때, 한 가지 이상한 변화가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자면서 그리 꿈을 잘 꾸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며칠씩 같은 꿈을 계속 반복해서 꾸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602호인 나의 집을 향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누군가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계단을 뛰어올라가게 되고, 막상 위에 도착했을 때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한 여인이 내 집 현관 앞에서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항상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이 꿈이 나에게 어떤 암시를 주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그 꿈과 502호 남자가 했던 이야기가 서로 매치가 되면서 나도 모르게 무서운 상상을 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베란다에 나와 '고양이 무덤' 산을 멍하니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때마다 산은 아주 평화롭고 고요해 보였다. 마치 살인을 하고 난 후의 평온함이라고나할까.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보름이 지나고, 나는 종종 가위에 눌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 없이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헤어진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후였다. 비굴하지만 내가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간단히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불러내었다. 그녀는 상당히 차분한 목소리로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술을 앞에 두고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를 3년 동안이나 알아온 나였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어딘지 낯설어 보였다. 나는 아무래도 희경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일 테지만. “ 살 좀 찐 거 같네? ”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뭔가를 털어내려는 것처럼 들렸다. “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 “ 운동 좀 하고 그래. 맨날 집안에만 있지 말고. ” “ 땀 흘리는 게 싫어. ” 피식 웃는 그녀. 그녀의 보조개도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보조개를 아직도 사랑한다. “ 술만 좋아하다간 언젠가 큰일 날거야. ” 그녀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 넌 내가 싫은 거야. 아님 술이 싫었던 거야? ” “ 둘 다 ” “ 그렇군. ” “ 자긴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해. 그렇지 않고는 어떤 여자도 버텨내지 못할 거야. ” “ 3년, 넌 참 오래도 버텼군 그래. ” “ 자길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빠도 새겨들어. 여자들은 단순해. 자기만 사랑해 주는 남자를 좋아하지. 그래서 여자들은 늘 그 남자가 자기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구. 마치 자동차에 기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체크하는 것처럼 말야. ” 나는 그녀의 비유 때문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자의 사랑이 줄어들게 되면 여자들은 쉽게 알아채고 말아. 그때부터 초조해 지기 시작하는 거야. 생각해봐. 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중에 기름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야. 거기엔 주유소도 없어. 운전하는 내내 연료 게이지만 보면서 가야 될 거야. 그러다가 결국엔 미쳐서 뛰어내리는 거지. ” “ 그래 좋아. 내가 좀 무관심 했다는 건 인정하지. 굳이 차에 비교하지 않아도 말야. ” 나는 화가 났지만 다시 그녀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 넌 3년 동안 차에 타면서 연료 게이지만 본 거로군. 다른 것들도 많은 데 말이지. ” “ 그렇지 않아. 자기의 좋은 점도 많이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 것들이 늘 안 좋은 것에 가려지는 게 문제란 말야. 자기가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아니, 관두자. 이러다 또 싸우고말지. ” 나는 희경의 말에 진심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나와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그런 애정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는 내 앞에 있던 라이터로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테이블 앞으로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왼손이 라이터를 들고 있던 나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마치 나의 손을 끌어안고 키스하는 것처럼. 그 순간이 불과 2,3초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졌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가 이렇게 짧고 허무하다니. 그녀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고 나서 옆으로 조용히 내뱉었다. 연기는 벽에 부딪혀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와 그녀의 사랑도 이제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린 택시 뒷 자석에 앉아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차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으로 빗방울이 부딪히며 흘러내렸다. 비는 한 시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해 어느덧 도시의 야경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택시는 큰 고가도로 밑을 지나 내가 사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를 먼저 바래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지금 거리의 두 배를 돌아서 가야했고,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그런 쓸데없는 배려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뒤에 두고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별로 멋있지 않은 이별이었다. 택시는 어느새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고 늘 내리던 곳에서 내렸겠지만 그녀는 떠나는 남자의 젖은 뒷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나서 희경에게 차비를 쥐어주었다. 그녀는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했지만 나는 다짜고짜 그녀의 손에 돈 3만원을 쥐어주었다. 뾰로통한 그녀의 얼굴에 키스를 퍼붓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 넘긴 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차에서 내려 곧장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다. 나는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녀는 전화를 걸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입구에 들어서자 예순을 훌쩍 넘긴 경비원은 잠에 취해 누가 들어오는지도 모른 채 곯아 떨어져 있었다. 그의 의자 밑에는 먹다 남은 막걸리통과 통조림이 함께 놓여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른 후 잠시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는 9층에서부터 천천히 내려 오고 있었다. 1층에 다다르자 “ 땡 ”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누군가 내 목덜미에다가 ‘후’ 하고 차가운 입김을 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경비실을 한번 쳐다보았다. 늙은 경비원은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다. 나는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괜한 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 띵동 띵동 ” 다음날 일요일 아침, 어떤 몰상식한 인간이 나의 집 초인종을 눌러대고 있었다. “ 띵동 띵동 띵동 ” “ 누구세요? ” “ 쾅쾅쾅! ” “ 아, 누구세요! ” “ 안에 계시면 문 좀 열어보십쇼. ” 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 누구신데 그러십니까? ” “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요. 잠깐만 문 좀 열어 보시죠. ” 그의 말투에서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 왜 그러시죠? ” 나는 조금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 이 단지 내에서 사건이 발생해서요. 몇 가지 질문 좀 드릴까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괜찮지 않다고 해도 그는 밀고 들어올 기세였다. 나는 도어 뷰(door view)를 통해 형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역도 선수 같은 건장한 체구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어딜 봐도 강력계 형사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짜증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군말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 XX 경찰서 김우식 형사입니다. 쉬고 계신데 이거 죄송합니다. ” “ 아닙니다. 근데 무슨 일인가요? ” “ 살인 사건입니다. 이 동네에 살면서도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 “ 그런 일이...... 저는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 “ 어제 집에 안계셨나 보군요. ” “ 어제 일어난 일입니까? ” “ 아뇨. 발견한 것은 어제였지만 죽은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일 겁니다. ” “ 세상에........ 전 어제 집에 없었습니다. 엊그제 술을 마시고 사우나에서 잤거든요. 회사에 일찍 나가봐야 돼서요. 그리고 오늘 새벽 1시쯤에 집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자고 있었습니다. ” “ 그렇군요. 혼자 사십니까? ” “ 네. ” “ 혼자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 “ 한 2년 정도 되어갑니다. 왜 그러시죠? ” “ 별건 아닙니다. 그저 형식적인 질문이죠. ” “ 살해......... 된 건가요? ” “ 살인 사건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 “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 검시관 말로는 목이 졸린 것 같다고 하더군요. ” 형사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뭔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별로 예감이 좋지 못했다. “ 어디서 발견 되었습니까? ” “ 저 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그러면서 형사는 손으로 ‘고양이 무덤’ 산을 가리켰다. “ 아침에 산책을 나간 할머님이 발겼을 했습니다. 산책로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밑으로 굴러 떨어지셨다는 군요. 다행히 낙엽이 깔려 있어서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낙엽 속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이더랍니다. 자세히 확인해 보니 반지였답니다. 노인네가 횡재했다는 생각에 얼른 그 반지를 주우려고 했겠죠. 그런데 알고 보니 반지의 주인도 낙엽 속에 함께 묻혀 있었던 겁니다. ” “ 혹시 강간범의 소행은 아닐까요? ” 그러자 갑자기 형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제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말을 했던가요? ” 그렇다. 난 어째서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니,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이유에선지 난 형사로부터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피해자가 여성일 거라는 확신을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502호 남자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형사한테 할 순 없지 않은가? 난 괜히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 그냥 여성일 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왠지 그럴 것 같아서요. 대부분 그런 경우엔 피해자가 여성일 확률이 크더군요. 안 그렇습니까 형사님? ” “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죠. ” 형사의 눈빛에서 그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을 형사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오히려 더 큰 의심을 살 것 같아 일부러 태연한 척 행동했다. “ 제 생각이 좀 지나치긴 했지만, 틀리진 않았나 보군요. ” “ 피해자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습니다. 비싼 옷을 입고 있던 것으로 봐선 이 동네 사람같진 않더군요. ” “ 신분증은 없었습니까? ” “ 지갑이나 핸드백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단순한 강도의 소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 거 참 이상하군요. ” “ 뭐가 이상하다는 말씀이시죠? ” “ 핸드백은 가져가고 반지는 남겨놓다니. 이상할 수밖에요. ” “ 아무래도 우발적으로 살인이 일어나자 당황했던 거겠죠. ” “ 여자를 산으로 끌고 가서 매장할 정도였다면 충분히 반지를 훔치지 않았을까요? ” “ 그야 강도 나름이겠죠. 상당히 어설픈 놈이었던가. ” “ 범인은 어쩌면 돈보다는 신분증이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 “ 무슨 뜻입니까? ” “ 여자의 신분을 알게 되면 꼬리가 잡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핸드백은 훔치고 반지는 그대로 두었겠죠. ” “ 범인이 이 동네 사람이라고 확신하시는 군요. ” “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자를 산에 묻었겠습니까? 저 산은 밤 9시만 되면 출입문을 닫아 놓는데. 여자를 묻으려면 아마 철망을 타고 올라가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범인이 철망 근처에 개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거기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겠죠. 그건 이곳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를 겁니다. 밤이라 쉽게 찾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 “ 사건이 밤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 “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이 근처는 단지 내 주민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낮에도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산책을 하러 자주 저 산에 오르곤 하죠. 정자에 앉아서 장기라도 두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든 시체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보지 않았겠습니까? 범행은 분명 밤에 일어났을 겁니다. ” 형사는 약간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 대단하신데요? 형사를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 죄송합니다. 그냥 흥미를 느껴서 저도 모르게........ ” “ 아닙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에...... 그런데....... ” 형사는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 왜 그러시죠? ” “ 죄송한데 혹시 담배 피우십니까? 아까 편의점에서 산다는 게 그만...... ” “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 나는 거실로 가서 담배를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마침 담배 케이스 속에 담배가 한 가치 밖 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꺼내 형사에게 건넸다. “ 이거 죄송합니다. 한 가치 밖에 없는 것을 주시다니. ” “ 괜찮습니다. 어차피 밖에 나가려던 참이었으니까요. ” 사실 난 늘어지게 잘 생각이었지만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 던힐(DUNHILL)을 피우시는 군요. 저도 그걸 피는데. ” 그러면서 그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 그런데 괜찮으시면 그 담배 케이스도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 “ 네? ”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듣지 못하고 한동안 어리둥절해 했다. “ 그 케이스는 어차피 버릴 것 아닌가요? ” “ 네, 그야 그렇죠. ” “ 그럼 제가 대신 버려드리겠습니다. 이리 주시죠. ” “ 아니, 뭐 그럴 필요까지야......... ” 나는 뭔가 이상했지만 그에게 빈 담배 케이스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서 빈 담배 케이스를 건네받을 때 무척 조심스럽게 집게와 엄지손가락만으로 모서리부분을 살 짝 집어 상의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나는 그때서야 그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이 새끼! 이걸로 내 지문을 뜨려는 거구나. ’ 난 몹시 불쾌했으나 일부러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 협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 뭘요. 당연히 도와드려야 될 일인데요. 빨리 범인이 잡히길 빌겠습니다. ” “ 그래야죠. 아, 그런데 혹시 어디 멀리 가실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 “ 아뇨. 없습니다만. ” “ 혹시 다시 도움이 필요하게 될 일이 있으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 뭘요. 필요하시다면 제 명함이라도 드릴까요? ” “ 그래 주시면 고맙구요. 하하 참 친절하시군요. ” 나는 그의 가식적인 웃음에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었다. 그는 내 명함을 건네받고 곧바로 사라졌다. 나는 현관문을 닫은 후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꺼내 거실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차가워진 맥주를 목구멍에 흘려 넣으며 나는 502호 남자에 대해, 그리고 어쩌면 그가 나에게 한 고해성사인지도 모를 이야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가 정말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사실을 마치 허구인양 시치미를 뚝 뗀 채 이야기 했다면 그는 정말 대단한 강심장이거나 아니면 미친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미쳤다고도 또 강심장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평범하고 불쌍해 보이는 몇 안 되는 사람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단지 그 버본 위스키가 그의 양심 깊은 곳에 숨어있는 죄책감을 끄집어내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살인을 저질렀고 그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나는 그가 한 짓에 대해서 끝까지 묵인해 주고 싶었다. 그것이 정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나는 정당한 일을 발 벗고 나서서 할 만한 위인도 아니었고, 또 그런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아서였다. 그저 모른 척하면 그만일 뿐이었다. 그저 모른 척....... 아마 그날 밤 살인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떤 이름 모를 이는 살인을 방관하며 그저 모른 척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모른 척...... 다음날, 김 형사가 나를 다시 찾아왔을 때는 두 명의 경찰관과 함께 손에 영장을 들고 있었다. 그는 내 코앞에다 영장을 들이 밀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 케이스에 댁의 지문이 나왔습니다. ” “ 뭐요? 어째서 날 모함하는 겁니까? 당신이 내 담배 케이스를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 “ 아아, 그건 어디까지나 대조해 보기 위해서 가져갔던 겁니다. 사건 현장에서 던힐 담배케이스가 발견되었거든요. 그런데 댁도 같은 담배를 피우고 있기에 혹시나 하고 조사해 보았던 겁니다. 그런데 딱 들어맞더군요. ” “ 말도 안 돼. 저는 저 산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구요! ” “ 담배를 피우진 않았어도 떨어뜨리긴 했겠죠. 한밤중에 여자를 파묻다보면 그런 실수도 할 수 있는 겁니다. ”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런 와중에 김형사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경찰관 두 명과 함께 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 뭐하시는 겁니까? ” “ 가택 수색입니다. ” “ 신발도 벗지 않고 이렇게 막 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 “ 저희는 용의자의 집을 수색하러 온 거지 집들이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방해하지 마시고 뒤로 물러나 계시죠. ” 나는 그의 위압에 어쩔 줄 수 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온 경찰관 두 명이 뒤에서 나를 비웃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집에서 왜 이런 모욕감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내가 용의자라니......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몰아붙여도 되는 거냐구요! ” “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죄가 없다면 곧 밝혀지겠죠. ” 나는 그때 왜 아는 척을 해서 내 자신을 이렇게 궁지에 몰아넣었을까?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죄가 없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나의 소신을 밝혔을 뿐, 일이 이렇게까지 잘못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 담배 케이스가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 형사는 경찰들과 함께 집안 구석구석을 이 잡듯 수색하기 시작했다. 장롱이며 신발장, 내다놓은 빨래더미, 책상, 서랍장, 컴퓨터 파일들, CD, 책, 편지, 침대 등등..... 나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무참히 짓밟고 낫낫이 파헤치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만행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30분이 지날 때 까지 그들의 수색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거실 한쪽 구석에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서서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형사와 경찰들이 수색을 끝마친 듯 거실로 몰려왔다. 그들의 얼굴이 어두운 것으로 봐선 득이 될 만 한 것을 하나도 건지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무죄였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자, 이제 무죄가 증명 된 겁니까? ” “ 더 조사해 봐야 합니다. 서까지 동행해 주시죠. ” “ 이봐요! 대체 왜들 이러는 겁니까! 마구잡이로 쳐들어 와선 집안을 몽땅 들쑤셔놓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 “ 그렇다면 당신의 담배 케이스가 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보시죠. ” “ 글쎄 저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니까요. 아마도 누군가......?! ” 나는 그때까지 왜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왜 그러시죠? ” “ 맞아. 그 녀석이야! 그 녀석 짓이 분명해요. 그가 살인을 저질로 놓고 저한테 누명을 뒤집 어씌운 겁니다. 분명해요! 어서 그를 체포하세요. ” “ 그 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 502호 남자요. 그가 나에게 모두 말했습니다. 자기가 한 범행을 모두 털어 놓았다구요. ” 형사는 경찰들과 얼굴을 마주보더니 서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 이보쇼. 그 말을 지금 우리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 “ 사실인 걸요. 불과 한 달 전에 일입니다. ” “ 알았으니까 나머진 서에 가서 얘기 합시다. 자, 뭐해. 어서 이 친구를 데리고 나가라고. ” 경찰 두 명이 나란히 나의 양팔을 붙잡더니 마치 죄인을 데리고 나가는 것처럼 나를 끌고 나가려 했다. “ 이거 놓지 못해! ” “ 이봐, 계속 말썽을 피우면 수갑을 채우겠어. ” “ 내가 왜? 난 아무 짓도 안했다고! ” “ 그러니까 서에 가서 얘기 하자는 말이야! ” 형사가 큰소리로 윽박지르는 바람에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더 이상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RoLLo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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