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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중편,브금]가끔은 이질적인 이야기 -고양이 무덤下 -1
게시물ID : panic_199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0
조회수 : 26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9/26 15:33:45
서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되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사무적인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는 나에게 이름과 나이, 주소, 전화번호, 가족관계, 직업 등등....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고 더 이상 신경질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서라는 곳에 처음 불려온 나는 그 위압적인 분위기와 불편한 의자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나는 착하고 어린 학생처럼 몸가짐을 얌전히 해야 했다. “ 피해자와는 아는 사인가? ” “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 “ 얼굴도 자세히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모른다고 단정 할 수 있지? ” “ 저하고 지금 말장난 하자는 겁니까? 그럼 사진을 보여 주시죠? ”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나에게 사건 파일 안에 있는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목에 난 시퍼런 멍 자국이 교살되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것이 502호 남자가 말한 그 여인일까? 나는 분명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믿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 꽉 막힌 형사에게 통할지 어떨지는 의문이었다. 그는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당연히 초면이어야 할 그녀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봤을까? 하지만 정확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그저 막연히 느낌만 들뿐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 내 앞에 형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다. 아뿔싸! 이 녀석, 또 꼬투리를 잡겠군. “ 낯이 익나? ” 그는 능구렁이처럼 말을 뱉었다. “ 아뇨, 초면입니다. ” “ 그런데 참 유심히도 쳐다보는 군. ” “ 시체가 눈을 감고 있으니 유심히 볼 수밖에요. ” “ 흥! ” 김 형사는 서에 들어오고부터 줄곧 나에게 반말을 쓰고 있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받았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말투 하나로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바뀌다니. 이것은 502호 남자가 나에게 했던 반말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나와 김 형사와의 관계는 이제 정확히 상하가 구분되어진 듯했다. 아마 그는 나에게 다시는 예의를 갖추지 않을 것이다. “ 제가 말씀 드린 것에 대해선 생각해 보셨습니까? ” “ 502호에 사는 사람? ” “ 예, 그가 바로 범인입니다. 정말 확실하다니까요. ” “ 무슨 근거라도 있나? ” 그는 여전히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 제가 한달 전쯤에 그와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말하다보니 통하는 구석이 있어서 얘기를 더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의 집에 갔었습니다. 502호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뜻밖의 얘기를 꺼내더군요. ” 나는 말하면서도 계속 김 형사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나의 이야기에 얼마나 흥미를 느끼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표정을 보니 조금은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아마 나도 502호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 그 이야기는 그저 말장난으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화장실에 시체가 있다는 얘기였죠. 저는 결코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가 유부녀와 몰래 밀애를 즐기다가 살해했다는 이야기였죠. ” “ 그가 어째서 그런 얘기를 꺼낸 거지? ” “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요. 술을 마시다보니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많이 취해있었으니까요. 그 여자는 돈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 집도 그 여자가 얻어 준 거라 하더군요. 그 집이 누구 명의로 되어있는지 확인해 보시면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형사의 눈빛이 제법 진지해졌다. 나는 좀 더 이야기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나의 누명은 곧 풀릴 것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렇게 믿었다. “ 왜 죽였는지 그 이유도 얘기하던가? ” “ 그 여자가 자신의 애를 가졌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것을 여자의 남편이 알게 되었답니다. 그녀의 남편은 무정자증이라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으니 당연히 여자를 의심했겠죠.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녀의 남편이 502호 남자와 짜고 아내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가장 잔인한 범죄자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돈을 주고 아내를 죽이라고 시켰으니까요. 그 남자의 계좌를 확인해 보십쇼. 녀석의 계좌로 많은 돈이 입금된 적이 있을 겁니다. 계좌번호를 추적하면 그 돈을 입금시킨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틀림없습니다. ” “ 그럼 그 시체가 처음에 거기 있었다는 건가? ” “ 아마도 그렇겠죠. 직접 조사해 보시면 아실 것 아닙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사이에 녀석은 어떻게 해서든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있을 텐데! ” “ 아아, 이봐 진정하라고. 달아난다 해도 곧 잡히게 돼있어. 그리고 달아난다면 뒤가 구리다는 뜻이 아니겠나? 그러면 자네에게 더 이득이지. 안 그래? ” “ 증거를 완전히 지우고 달아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제발 제 말 좀 믿어주십쇼. 녀석은 제 담배 케이스를 버려둘 만큼 영리하단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은 아주 깨끗하게 뒤처리를 해놓았는지도 모른단 말예요. 그 남편이라는 작자와 서로 협력을 한다면 영락없이 제가 뒤집어쓰게 돼있다고요. 그러니 제발 한번이라도 조사를 해주십쇼. 부탁입니다. ” 나는 거의 울다 시피 김 형사에게 매달렸다. 502호 남자와 그녀의 남편, 이 대 일의 싸움인만큼 나는 불리함을 깨닫고 감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김 형사는 그런 나의 얼굴을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그의 태도보다야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그때 김 형사의 핸드폰이 울려 그는 조서작성을 잠시 미루고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때서야 경찰서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 어, 그래.... 그래서...... 한 달 전쯤에? 그래 알았어. 주변인들을 한번 조사해봐. 한 달 동안이나 집을 비웠다면 분명 가까운 사람에게 알렸을 거야. 더 조사해보고 뭔가 알아내는 대로 연락 주라고. 그래. 수고 ”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 502호 남자는 한 달 전에 여행을 떠났다는군. 수위가 그 이후로 그 사람을 본적이 없다는 거야. ” 이 자식, 나에겐 시치미를 뚝 뗀 채 이미 502호 남자를 조사하게 시켰었군. 약삭빠른 녀석. 이런 것으로 내 속마음을 떠보려 했던 거냐? 아무튼 덩치에 안 맞게 노는 군. “ 그거 보십쇼. 녀석이 분명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벌써 해외로 튀었을 겁니다. ” “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모두 다 도망을 갔다고 볼 순 없지. 안 그래? ” “ 눈에 뻔히 보이는 데 어째서 믿지 않는 겁니까? ” “ 이봐,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은 자네가 흘리고 간 담배 케이스 뿐이야. ” “ 그 집을 한번만이라도 수색해 주십쇼. 그러면 금방 해결될 문제라구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욕조 안을 살펴보면 분명히 그 여자가 흘린 머리카락이나 DNA 같은 게 있을 겁니다. 그것만 찾아주신다면 제 결백이 증명될 거라구요. 예? ” “ 답답하군. 뭘 믿고 그런 일에 영장을 신청하겠나? 자네 말이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웃기는 소리. 그 담배 케이스만한 증거가 없다면 영장은 신청할 수 없고, 가택수사도 이루어질 수 없지. 더군다나 빈집이라 함부로 들이닥칠 수도 없다구. 그러니 안타깝지만 자네 말이 흥미는 있어도 거기에 모험을 걸 생각은 없단 말일세.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 담배 케이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 우리의 대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마치 병든 나를 이끌고 커다란 원형통로를 산책시켜주는 벙어리 간호사 같았다. 우리는 걷고 또 걷지만 결국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는 말 못하는 벙어리이기 때문에 어째서 나를 끌고 가야하는지 이유를 말 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거대한 악몽같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형사라는 직업이 정말로 대단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단 두 마디 말만 할 줄 아는 싸구려 장난감 인형과 대화를 시켜 놓아도 절대로 지지 않을 위인이었다. 그는 나의 모든 설득과 이해와 호소를 그 빌어먹을 던힐 담배케이스 하나로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 이봐, 내말 안 들리나? 그 시간에 뭐했는지 묻고 있잖아! ” “ 됐소. 이제 그만..... ” 나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 뭐라고? 좀 더 큰 소리로 말해봐! 당신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 둘 다 힘들어진다고. ” “ .............. ” “ 아, 이 친구 안 되겠구만. 정말 콩밥 먹고 싶어서 그래? ” 결국에 나는 6시간동안의 취조를 이기지 못한 채 손을 들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의 대답도, 긍정도 부정도 다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닫고 묵묵히 고개를 처박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윽박지르던 책상을 내리치던 볼펜을 집어던지던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싶었을 뿐이었다. “ 김형사님 그만 고정하세요. 이 친구도 이제 지쳤을 겁니다. 내일 다시 하자구요. 시간도많이 지났잖아요. ” 김 형사의 후배로 보이는 다른 동료 형사가 그를 말리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만 들을 뿐 고개를 들어 쳐다보진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귀찮은........ “ 이런 젠장, 이제 와서 묵비권 행사야? ” “ 더 이상 꽁무니 뺄게 없나보죠. ” “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하다간 변호사한테 뒤통수 맞기 십상이야. 그 새끼들은 어떻게 해서든 빼내려고 들 테니 말이야. ” “ 아무튼 물적 증거를 확보한 상태 아닙니까. 너무 서두르다간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그만 진정하세요. 아직은 용의자이지 않습니까? 더 이상 괴롭혔다간 인권이고 뭐고 따지면서 지랄 할 텐데. ” “ 제기랄, 조금만 더하면 되는데...... ” “ 됐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구요. 저 사람도 많이 지쳤을 테니 그만 재우고 내일 다시 시작합시다. 알겠죠? ” “ 후~~ 알았어. 그럼 가서 재우라고. 난 사건 파일 좀 더 훑어 볼 테니. ” “ 알겠습니다.......... 이봐. 그만 일어나라구. 가서 눈 좀 붙여. 내일 다시 시작해야하니까. ”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가 데려다 준 곳은 쇠창살이 쳐있는 방이었다. 좁은 통로 양옆으로 몇 개의 칸이 쇠창살로 나뉘어져 있어 현행범들을 격리 수용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나는 그중에 아무도 없는 칸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그가 열쇠로 문을 잠그고 나가자 나는 옆에 놓인 군용담요를 덮고 곧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푹신한 침대는 아니었으나 나는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그만 일어나세요. 범인이 잡혔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도 되요. ” 그것은 천사의 목소리였을까? 아니다. 나는 뭔가 이상해서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린 후 다 시 목소리의 주인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김형사였다. 그가 넉살 좋게 웃으면서 나에게 범인이 잡혔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 범인이 잡혔습니다. 당신이 한 말이 맞더군요. ” “ 예? 뭐라구요? ” “ 502호 남자 말입니다. 오늘 새벽에 경찰서로 찾아와 자백을 했습니다. 당신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찾아왔다는 군요. ”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 어째서? ” “ 아무래도 양심의 가책을 받은 거겠죠. 그 친구 당신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 “ ? ” “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 그 친구도 지금 많이반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왜지? ” “ 죄를 짓고 떳떳이 살아가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특히 살인을 한 경우는 더욱 심하죠. 자기가 죽인 사람의 원혼에서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법입니다. 이건 제 경험이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하하 ” 그러면서 그는 열쇠로 문을 열고 안에서 나를 꺼내주었다. “ 이거 고생시켜드려 죄송하군요.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증거가 있으면 그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애초에 당신이 그런 사람과 만나지만 않았어도...... ” “ 뭐라 하던가요? ” “ 예? ” “ 그 친구, 다른 말은 안하던가요? ” “ 뭐..... 그냥 죄송하다는 말 정도....... ” “ 그 다음....... 그 다음 말입니다. ” “ 다음이라뇨? 무슨 뜻인지...... ” “ 여자를 죽이고 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말씀해 주십쇼. 어서 ” 김형사는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잠시 동안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 그럼 직접 가서 들어보시겠습니까? ” “ 예? 직접 만나서 말입니까? ” 나는 그를 다시 만난다는 게 왠지 두려웠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 뒷얘기를 결코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김형사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 알겠습니다. 만나보기로 하죠. ” “ 저를 따라 오시죠. ” 나는 다시 김형사의 뒤를 따라 두 개의 엇갈린 복도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지는 첫 번째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내가 다다른 곳은 마치 나치 수용소의 어느 취조실 같이 생긴 조그마한 밀실 안이었다. 그 곳에서 502호 남자는 양손이 수갑으로 채워진 채 탁자 앞에 앉아 내가 들어오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굉장히 초췌해 보였으나 아직 눈빛만큼은 살아있었다. 502호 남자는 김형사를 보더니 대뜸 담배 한 개비를 요구했다. 그러자 김형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남자의 입에 물려준 뒤 친절하게도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주었다. 공교롭게도 형사가 건네준 담배는 다름 아닌 던힐이었다. 나는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가 담배를 음미하고 있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가 마시고 있는 담배 연기가 굉장히 달게 느껴졌다. “ 다시 보게 되니 무척 반갑군 그래. ” 그가 먼저 나에게 말했다. “ 나는 반갑지만은 않군요. 당신 같이 뻔뻔한 사람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디 한번 말 좀 해보시죠. 왜 그랬는지...... ” 그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무엇을 말인가 친구? 내가 그녀를 죽인 것? 아니면 자네에게 누명을 씌운 것? 어느 쪽이든 난 대답해 줄 수 있네. ” “ 제가 듣고 싶은 것은.......... ” 나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 아닙니다. 뭐 어차피 그런 것들은 들어볼 필요도 없을 테죠. ” “ 흐흐 ” 그러면서 그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 내뱉었다. 마치 떠나간 희경이 그랬던 것처럼....... “ 어째서 자수를 한 거죠? 설마 저한테 죄책감을 느꼈을 리는 없을 테고...... ” “ 크크크...... ” “ 이유가 뭡니까? ” “ 이유? ” “ 네, 뭔가 이유가 있을 테죠. 말 못할 이유가........” “ 이유야 있지. 말 못할 이유........ 말 못할 이유 크크......... 실은 두려웠다네. ” “ 네? ” 갑자기 그의 얼굴빛이 돌연 창백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떤 건 지 아나? 그건 소설을 쓰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냐. 나는 이 두 손으로 사람을 살해했어. 그것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말이야. 자네는 그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겁니까? 이제 와서 감정에 호소하는 짓은 집어치우시죠. 당신은 뻔뻔하게도 자신의 범행을 마치 소설을 쓰듯........ ” “ 그래, 맞아. 마치 소설을 쓰듯........ 하지만 소설이 아니었어. 나는 사람을 죽였고 그것은 변함이 없지. 그 ‘산’ 말일세. 그게 있는 한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가 없더군. ” “ 산? ” “ 그래, 그 끔찍한 산을 보고 있노라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워지지. 나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 ‘산’ 이 있는 한........ 언젠간 그녀에게 당할 거라는 것을 알았지. 난 너무나 두려웠다네. 두려워서 미칠 것만 같았어. 그 ‘산’ 을 보고 있으면....... 마치....... ” 그는 공포에 휩싸인 채 담배를 들고 있던 손을 바르르 떨었다. “ 자네에게 충고 하나 하지. 절대로 그 산에는 가지 말게나.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다른 먼곳으로 이사를 가게. 그게 최선의 방법이야. 흐흐 ” “ 이런 미친 자식! 이제야 알겠군. 당신은 완전히 돌았어. 내가 뭐가 무서워서 그 ‘산’ 을 피한단 말이야! 너나 조심해! 이 비열한 자식아! ” “ 크크크큭.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나 말고 자네도 노리고 있으니까. 잘 생각해봐. 잘 생각해 보라구. 어째서 그녀가 자네를 노리고 있는지. 하하하하 ” 그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하자 김형사가 옆에서 그를 제지했다. “ 이봐, 이제 그만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까불어! ” “ 너 같은 녀석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돼! ” “ 크하하하. 네가 풀려난 게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하나? 나 아니었으면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할 녀석은 바로 너였다고. 나한테 감사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 “ 뭐라고? 이런 개 같은 자식! ” 나는 순간 이성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잡았다. “ 이런 빌어먹을 자식! 너 같은 건 뒈져야 해! ” “ 키키키킥..... ” “ 이봐, 그만 두지 못해! ” 옆에 있던 김형사가 달려들어 완력으로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 빌어먹을 자식! ” “ 푸하하하..... 지금 네 꼴을 좀 보라구. 마치 자기만 희생양인 척 하는 네 꼴을 좀 보란 말야. 너도 나하고 같아. 너도 살인자일 뿐이야. ” “ 난 너같은 녀석하고 틀려. 난 깨끗해. 난 깨끗하다고! ” “ 하하하하..... 네가 정말 깨끗하다면 그녀가 널 찾아올 필요는 없겠지. 잘 알아둬. 잘 알아두라고.... ” “ 이제 그만 해. 이 자식, 대체 뭘 잘못 먹고 실성한 거야? ” 형사가 말했다. “ 내가 자수를 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그것보다 넌 그 다음 얘기가 듣고 싶었던 게지? 내가 그녀를 살해 한 후의 일 말이야. 정말 궁금해? 하지만 난 가르쳐주지 않겠어. 그 해답은 네 스스로 찾으라고. 넌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어. 그때 내가 칵테일 바에 들어왔을 때부터 넌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정말 사기꾼은 바로 네 녀석이야! ” “ 뭐라고? 대체 무슨 뜻이야! ” “ 아 아, 안돼지. 또 이런 재미없는 얘기를 해선. 그것보다 내가 자수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 “ 말 돌리지 말고 어서 얘기해! 대체 내가 뭘 알고 있다는 거야? ” “ 내가 자수한 이유는 말이지...... 살기 위해서야. 살기 위해서......난 스스로 감방에 들어가는 거라고. 그게 그녀로부터........ 또 그 재수 없는 산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거든. 난 도망쳤지만 넌 아마 그렇지 못할 거야. 낄낄낄 부디 몸조심하길 바래. 만약 살아있다면 면회라도 한번 와달라고. 하하하 ”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RoLLo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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