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사형 집행을 두고 "오판 가능성 0%" 즉, "완벽한 수사 시스템" 을 가정한다면 사형 집행에 찬성할 수 있겠느냐 라는 글을 쓰셨습니다.
사실, 이 말 자체도 일종의 서술트릭에 가깝습니다.
"완벽한 수사 시스템이 존재하는 시대가 오면, 그때도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은 범죄자 뿐일 것이다." 라고 하는 함정을 파는 거죠.
하지만.
불과 얼마 전에도 사실상 사형 구형 코앞까지 갔다오셨던, 이춘재 대신 20년 가까이 징역을 뒤집어 쓴 윤성여 씨의 사례만 생각해봐도 '흉악범' 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분노를 근거삼아서, 사람들의 분노의 분출구를 만드는 행위"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윤성여 씨가 누명을 뒤집어 쓴 것만 되짚어 봐도 '100% 확실한 첨단 기법' 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1. 100% 확실한 검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과학 수사 기법조차 과거에 쓰이던 것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거나, 대대적으로 개편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윤성여 씨가 진범으로 지목되었던 근거 중 하나가 '체모 조사' 라는 것이었습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34990_35744.html
지금 저 체모 조사라고 하는 수단이 법정 증거 효력을 가지느냐... 하면, 지금은 아닙니다.
일단 체모에서도 미토콘드리아 DNA 를 증폭 추출하는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으며, 저 방식은 DNA 대조도 아닌 '성분 대조' 에 가깝기 때문에 결함이 있다고 여겨지거든요.
하지만, 1988년 당시에는 그야말로 최신 최첨단 기법이었습니다.
- DNA 대조 관련은 미국에서조차 1990년대 언저리까지 와서야 본격적으로 법정 증거로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과학의 측면에서 생각해봐도.
100% 단언할 수 있는 검사 방법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치즈 구멍" 이라는 건, 단순히 사회 행정적인 구멍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쩌다가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질 경우.
"구멍이 여러 장에 뚫려있고, 한 장 한 장이 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상황" 임에도 (어지간해서는 한 번에 발생하기 어려운 오류들) 이러한 오류가 한 번에 발생해서, 아주 극단적으로 작은 확률조차 현실에서 발생할 확률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러니까 DNA 검사 또한 한 번으로 바로 끝내는 게 아니라, 확실함과 무결성 검증을 위해서 2회 이상의 검사를 시행해서 동일한 결과물을 얻어내야 '증거로서의 능력' 을 획득하게 됩니다.
샘플링 검사 기법으로 검사할 때, 시료를 넉넉하게 제출할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은데.
- 검사 1회에 필요한 양은 잘 해야 100ml 언저리라고 해도, 리터 단위 이상을 요구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 먹는 샘물 (생수) 검사의 경우 기본 2~4리터, 심하면 10리터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회 검사 후 평균 값 체크' 등의 기법을 통해 무결성을 확보하고 신뢰도를 확보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최첨단의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대로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애초에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 자체가 '불완전성' 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기도 합니다.
2. '반성, 참회 없는 악질' 이라는 것 자체가 '누명을 쓴 사람' 입장에서는 부당합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1028/103664256/1
'허위 자백이라도 안 했으면 괘씸죄로 사형 구형 -> 집행 당할 판이었다'
윤성여 씨의 판결은 1988년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 12월 30일입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22410550003863
- 참고로 이때 사형 집행된 사형수 중에서도 '오판'이 있다고 하는 판입니다.
삐끗했으면 엄한 사람 사형 집행해버리고 그대로 묻힐 뻔했던 겁니다.
그나마 꾸준하게 '본인이 살아서' 지속적으로 항의를 했으니까 진실이라도 밝혀진 거죠.
만약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1997년 12월 30일에 집행된 '오판 가능성' 이 아직도 그대로 묻혀있는 것마냥.
지금도 윤성여 씨는 사형이 집행된 '악질적인 범죄자'로 기록된 몇 줄의 문서로만 남게되었을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윤성여 씨의 입장에서는 '나 아니다' 라고 발악이라도 해야 됩니다.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때 수집된 증거로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윤성여 씨의 수사는 애초에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러한 정보를 2020년 12월이 되어서야 접하게 됩니다.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6641
32년 만에 무죄를 받아낸 겁니다.
그 기간 동안 대다수는 '악질적으로 잡아떼는 범죄자' 로 인식할 수 밖에 없죠.
즉, '악질적이다' 라고 하는 인식 자체가 '사형을 집행해야만 한다' 의 감정적 근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살인, 강간, 방화' 등의 죄질이 나쁘다고 하는 범죄 종류가 있습니다만, 사실 저 카테고리 자체도 가끔 의문이 들거든요.
경제 범죄는 어떻습니까? 빈집털이는 어떤가요?
죄질을 따지고, '반성하는 태도'를 따지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반성하는 태도를 강조하니까, 피해자는 한 번 본 적도 없는 '반성문' 을 가지고 감형을 하는 사태도 벌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즉, 악질적인 범죄자라는 말 자체가 사람들이 분노하게 만들어서 '반대하는 새끼는 범죄자에 동조하는 새끼' 라는 반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장치와 다름없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3. 사람이 아니면 AI 가? AI 에는 오류가 없는가?
일단 컴퓨터라고 해서 ERROR 가 안 나는 거 아닙니다. 이걸 되게 착각하시는 분이 꽤 있더라구요?
지금 시점에서는 컴퓨터에 입력되는 변수에서 구현하는 사건 현장만 분석 가능합니다.
컴퓨터가 알아서 혼자 증거 수집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 사람은 어떨까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659377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121715138294462
https://www.youtube.com/watch?v=ryBt7bR4Mas
이춘재는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빠져나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윤성여 씨를 몰아간 것으로 정리할 수 있고요.
컴퓨터는 컴퓨터대로 '수집된 정보의 방향성' 에 휘둘리는 분석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사람은 사람대로 '일단 이렇게 밀고 가' 라고 하는 방향성에 휘둘리는 수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제대로 완벽한 수사를 도입한다고 하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했던 프리-크라임 (Pre-Crime) 처럼 아예 미연에 틀어막거나.
프리-크라임의 반대 개념, 아예 과거에 있었던 "Ivent (상황, 사건, 정황 등등을 망라한 의미)" 를 온전히 재생할 수 있는, "일종의 타임머신 관측기"가 있어야 됩니다.
타임머신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너무 복잡해지긴 합니다만, 이게 '~ 하다면' 이라고 손쉽게 가정하는 전제로 사용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게다가, 생명을 뺏는 행위에 해당하는 '사형집행' 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과거를 볼 수 있다면, 미래 시점에 개입하는 것은 어떻게 될까 라고 하는 것부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했던 프리-크라임은 과연 '타임 패러독스' 를 발생시키지 않을런가 등등과 같은 의문 말입니다.
결론 :
100% 확실한 수사 기법, 오판 가능성 0% 라는 것 자체가 어지간해서는 불가능 그 자체이며.
"사형을 찬성하라" 라고 하는 서술 트릭이나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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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조두순 등등을 생각하면 저 또한 당연히 죄다 몰살처분하는 게 맞다고 생각은 해봅니다.
하지만, 누명을 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걸 생각해보면 '이성적'으로는 사형을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빡치는 거 이해합니다. 저도 빡칠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하지만 윤성여 씨가 악질이라고 지탄을 받았던 것 하며, 1997년에 집행된 사형수 중에도 '오판 가능성' 이 제기되는 판인데.
사형되고 나서 무죄였던 거 밝혀지면 살려낼 수 있으신 분 계신가요?
게다가 사형 집행 시의 기억, PTSD 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사형 찬성론 쪽에서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누명을 쓴 사람이 사형 집행 당할 경우' 에 대한 겁니다.
예전에 사형 집행 관련 주제를 다루는 토론만 몇 번을 겪어봤었는데.
'억울한 희생자'에 대한 내용을 제기하자, '희생은 불가피하다' 라고 하는 사람까지 나오더군요.
'발전을 위해서는 희생자가 불가피하니까 감수해야 한다' 라는 식이었죠.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 등장하는 다른 주제가 있습니다.
'인체 실험의 규제 및 제한 폐지' 를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무제한으로 허가하자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언젠가 기술이 극한으로 발전하면, 과거에 희생된 사람들도 되살려내고 피해도 죄다 복원해놓을 수 있게 될 거다.' 라는 내용의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더군요.
제가 저런 토론을 겪은 시절은 초끈 이론이 한창 유행을 탔었고, 이제 겨우 양자역학에서 인탱글 (양자꼬임) 현상을 검증해보니 어쩌니 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저런 말을 물리학 전공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걸 보고는, '타임 패러독스 어따 팔아먹었!?' 등을 떠올리면서 기겁했었거든요.
게다가 과학 기술 발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윤리 도덕 철학을 폐기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진짜 있습니다.
백보 양보해서, 과거의 희생을 보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한들 이는 '미래의 과거 개입' 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미연에 방지한다' 의 경우, 미래 시점에서 '보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의 명분이 사라지면서 모순이 발생하고.
'과거의 사람들과 협의를 해서 방지한다' 가 되면, 기술적, 윤리적으로 미래가 과거에 개입하게 되면서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걸 쓰는 이유는, '기술적 발전이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면' 이라는 가정을 들어가며 '과학만능주의 - 기술만능주의'를 목표로 삼아야 된다는 것을 저변에 깔고 있는 주장이 은근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신의 영역'은 어지간해서는 '도달하고 싶은 목표' 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
"악질적인 범죄자를 사형 집행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신의 영역에 도달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꼬여있는 말이 아니냐는 겁니다.
애초에 신의 영역에 정말 도달할 수 있다면, 완벽한 기술과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시대가 정말 도래한다면.
'완벽한 시스템' 에서 어째서 범죄자가 나오는 걸까요?
이러한 모순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