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불로 바뀌자 낙타 한 마리가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너는 것을 보았다. 늙어 주름진 저 낙타도 젊었을 때는 뜨거운 사막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청춘낙타였을까? 왠지 상상하기 힘들어 그냥 건너는 모습만 조용히 바라보았다. 까맣고 큰 눈 위로 많이 지쳐 보이는 속눈썹과 굳게 다문 입 주변으로 흘러내리는 절대 맑지 않은 침이 지금 그의 상태가 어떤지 여실히 보여준다. 등에 무엇을 저리 힘들게 얹고 다닐까? 떼어낼 수 없는 혹시 죽음만이 떼어놓을 수 있는 무언가가 그의 허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일까? 어느새 낙타는 길 반대편에 도달했고, 마저 가던 길을 재촉했다. 계속 머릿속에 남는 늙은 낙타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한 채 나도 내가 갈 길에 천천히 한 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낙타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을 때 무심코 본 쇼윈도에 비친 나는 한 마리의 젊은 낙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