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역사 우리나라에 천주교회가 세워진 때는 18세기 후반으로, 그 이후 교회는 19세기 말까지 거의 100여년에 걸쳐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근대적 사회를 이룩해보려는 노력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러한 노력과 맞서서 전통적인 질 서를 계속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천주교회는 이 땅에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 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노력하던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나, 교회가 창설된 다음 해부터 교회는 혹독한 탄압에 직면 하였다. 이 탄압의 와중에서도 도처에 신앙공동체가 이루어졌고, 신도 들은 믿음을 키워나가며, 이웃에 복음을 전했다. 100여년 간에 걸친 참다운 박해는 신앙의 가치를 거듭 확인해 주었으며, 혹형에도 굴하지 않는 신도들의 용기는 우리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876년 문호를 개방하여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는 1884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러서야 묵인될 수 있었다. 개화기에 이르러 우리 교회와 민족의 염원이 영글어 신앙자유의 폭은 넓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련이 닥쳐왔고, 극복 해야 할 또 다른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에 교회와 민족은 일제침략에 맞서 반침략운동을 전개했고, 전근대의 어두움을 밝히려는 근대화 운동을 일으켰다. 이후 6.25동란을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더더욱 기반을 다지게 되었교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의 해에 이룩된 103위 한국 순교성인의 시성은 한국교회의 순교전통과 성숙된 교회의 변모 를 나타내는 사건이 었다. 또한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주례로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http://www.cataegu.ac.kr/catholic/marty/ <==사이트 가셔서 103위 성인 클릭하시면 이 분들이 어디서 어떻게 순교하셨는지 나와있습니다. PS.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개독들은 보아라. 너희들이 타인의 종교는 배척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종교만이 유일하다고 떠들때 과거 천주교인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에 이 종교를 들여와서 정착시키기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탄압과 박해,죽음을 맞이했 는지 너희들이 그것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고있다면 지금의 개독들은 아마도 없을거다. 물론 너희 개독들 한테는 이 글이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혹시나 다른분들을 위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