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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하여... 2
게시물ID : history_201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유게시파
추천 : 0/7
조회수 : 2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24 22:43:03
작성자: 구름~~
작성일: 2014-06-17 (화) 18:46
홈페이지: http://cloudstown.net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하여... 2 

근세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메이지유신의 시작시점과 종료시점은 정해진 것이 없고 이론이 많다. 대체적으로는 왕정복고령이 선포된 1868년 1월 3일부터 메이지 헌법이 제정되어 공표된 1889년 2월 11까지를 메이지 유신이 진행된 기간으로 본다. 

메이지유신이 성공한 이후 일본제국은 그야말로 환골탈태, 욱일승천의 기세로 대제국의 기틀을 갖추어갔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지 불과 5년이 지났을 뿐인 1894년 6월에 조선의 동학란을 빌미로 청나라와 전쟁을 일으켜 이듬해 4월에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이 대가로 일본은 청국으로부터 요동반도와 대만을 할양받고 당시 청국의 1년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거액의 배상금을 받았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3국이 이에 간섭하여 요동반도를 되돌려주게 되지만 이때부터 대만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청일전쟁으로부터 10년 후인 1904년에는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러시아와 전쟁을 하는데, 이듬해인 1905년 9월에 포스머스 강화조약을 맺어 이 전쟁도 역시 일본의 승리로 귀결지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고, 만주도 영향력하에 두게 되었다. 이때 사할린 남부가 일본의 손에 들어왔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때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국으로서 연합국의 일원이었고, 1차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승전국의 멤바로서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당시 패전국이 된 독일이 점유하고 있던 태평양의 많은 독일령 섬들이 일본의 위임통치령으로 넘어갔다. 이때 태평양의 서쪽 절반이 일본의 바다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2년 후인 1931년 9월 18일에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중국군이 일본이 경영하는 남만주의 철도를 폭파하고 일본 수비대를 공격했다는 것이 구실이었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목적은 만주와 몽고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청국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를 데려와 허수아비로 내세워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를 우선 만들었다. 당시 중국은 1912년에 청나라가 멸망했고 중화민국이 수립되었으며 이때 쫓겨난 부의는 중국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으면서 자금성에 살고 있다가 1924년에 군벌 풍옥상이 일으킨 쿠데타로 천진으로 쫓겨나 있었다. 이것을 일본이 만주국의 황제에 앉혀주겠다고 꼬여 탈출시켰다. 황제자리에 탐이 난 부의는 일본의 제의를 받아들였으나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만주국을 공화국으로 만들고 반대하는 부의를 만주국의 원수로 삼아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만주국은 봉천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동북 3성을 영토로 하여 그 인구는 3,000만 명 정도였다.

이때가 대일본제국의 최정점이었다. 1889년에 메이지 유신이 종료된 때로부터 불과 40년 동안에 일본이 이룬 성과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거대한 제국이 탄생한 것은 실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으며, 경탄할만한 대사건이었다. 굳이 비슷한 경우를 역사에서 뒤져 찾아보면 징기스칸의 몽고제국과 만주족의 청나라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극히 최근에 더 유사한 하나의 사례가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1960년의 516혁명으로부터 지금 2014년의 약 60년간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이다. 한민족이 이루어낸 업적은 어떤 면에서 징기스칸의 몽고제국이나 만주족의 청나라를 뛰어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몽고나 만주족의 경우 그들이 이룬 것의 대부분이 군사적 활동에 국한된다. 오직 전쟁을 하는 능력만으로 이루어낸 위업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기적은 군사적인 성공이나 침략이 아니라 교육, 산업, 기술, 과학, 학문, 문화를 망라한 총체적인 부흥이며, 모든 분야에 걸친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긴 결과라는 점에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비교할 사례로는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몽고나 만주족이나 우리는 모두 동이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일본도 넓게 보면 동이족의 갈래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면서 메이지 유신 이후 대제국 건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듯이 보였다. 당시 일본의 영토는 일본의 본토인 네 개의 섬과 한반도, 대만, 만주와 몽고, 사할린 남부와 서태평양 전부였다. 전 세계 지표면의 10분지 1이 일본의 영토였고, 그 속에 사는 인구는 거의 2억에 육박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은 수많은 인재들이 나타났고, 경탄할만한 능력과 자질로 신생제국을 세계열강의 반열로 이끌었다. 만약에 이때의 대일본제국이 그대로 존속되었다면 일본은 로마제국과 대영제국의 바톤을 이어받는 세계 세 번째의 제국이 되었을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아니라 팍스 재팬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세계의 초일류강대국으로 행세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대영제국조차도 그 앞에서는 색이 바랬을 것이다. 

물론,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생겨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고려나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나라들 중의 하나로 역사책에서나 찾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해방, 독립? 대일본제국의 위광 앞에서 그런 말들은 꿈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은 G2가 아니라 G1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위대한 제국의 토대를 갖추고 있었다. 그 영토의 크기와, 그 속에 포함된 인민들의 수준과 자원의 양으로 볼 때 일본에 맞설만한 나라는 없는 것으로 나는 본다. 그것이 영광의 정점이긴 했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역사의 페이지가 그대로 조금만 더 넘어갔다면 결국은 요동과 요서, 그리고 몽고의 대부분도 일본의 영토에 편입될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히틀러의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일본이 이에 호응하여 러시아를 쳤다면 우랄 이동의 광대한 시베리아 전체가 일본의 영토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관동군은 세계의 최정예군이었고, 그 수가 백만에 달했다. 독일과 일본에 협공을 당했다면 러시아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고 승리는 독일과 일본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과 동맹국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이 러시아를 침공한다 해서 미국이 시비를 걸 이유는 없었다. 미국은 당시 중립국이었고, 독일과 영국 프랑스간의 전쟁에도 중립을 유지했다. 

생각해 보라. 일본과 한반도, 대만, 만주, 몽고 그리고 시베리아에다가 광대한 태평양을 지배한 대제국을. 누가 그 앞에 맞설 수 있었겠는가.

이런 대일본제국이 그 영광의 정점에서 딱 10년 만에 패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본은 기적과도 같았던 굴기의 시간보다 더 짧고 빠르게 파멸의 길을 걷고 만다. 누가 찬란한 성공의 정점에 있던 대일본제국을 순식간에 처참한 잿더미로 만들고 패전의 굴욕을 뒤집어쓰게 만들었는가? 

이들이 바로 지금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전범들이다. 우리에게 을사오적이 있다면 일본에는 이들 패전국적들이 있다. 문제는 대다수 일본인들이 이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고, 이들이 한 짓을 모른다는 것이다. 패전 후 일본이 자기들 국민들에게 역사를 똑바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고, 주변의 관련국들조차 역사를 깨우쳐주는데 무관심하고 게을렀기 때문이다.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원균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이완용의 묘에 벌초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이것을 일본인들에게 깨우쳐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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