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의 온갖 비리와 악습을 폭로했던 일명 ‘장자연 문건’의 실체에 대해 법원이 사실상 고인이 직접 작성한 문건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장준현 부장판사)는 장자연 문건 속 배후인물로 지목됐었던 김종승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대표(43)가 “허위문건의 공개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장씨의 매니저였던 유장호 호야스포테인먼트 대표(33) 및 탤런트 이미숙·송선미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유 대표는 김 대표에 대해 공개적으로 모욕적인 표현을 한 부분에 책임을 져야한다”며 “김 대표에게 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유 대표가 ‘장자연 문건’을 공개한 부분에 대해서는 “부당한 행위를 사회에 알리기 위한 동기가 전혀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 대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와 송씨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또 ‘장자연 문건’이 날조·위조됐다는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국과수 감정결과 장씨의 문건과 노트가 동일한 필적일 가능성이 매우크다는 결과가 나왔고 제반사정 등을 고려해도 장자연 문건은 장씨가 작성했다는 점을 쉽게 부인하기 어렵다”고 판단, 사실상 ‘장자연 문건’은 고인이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씨는 2008년 9월 고 장자연씨의 매니저였던 유장호씨가 회사를 나가 호야스포테인먼트라는 독자적인 연예기획사를 설립하면서 더컨텐츠 소속 탤런트 송선미씨를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김대표와 유 대표 사이에 법적분쟁이 발생했고, 이후 탤런트 이미숙씨를 영입하는 과정에서도 또다시 법적분쟁에 휘말렸다.
유 대표는 법적분쟁 과정에서 더컨텐츠 소속 연예인이자 김 대표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고인을 불러내 2009년 2월 장씨로부터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작성받았다. 그런데 일주일 뒤인 3월 7일 장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유 대표는 장씨의 유가족과 언론에 ‘장자연 문건’의 존재를 알렸고, 이후 언론인터뷰를 비롯해 김 대표를 비방하는 각종 글들을 게시했다.
김 대표는 유 대표를 명예훼손 및 모욕죄 등으로 고소했지만 법원은 “허위사실의 적시가 없다”며 명예훼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다만 모욕죄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 대표는 그러나 또다시 장자연 문건을 거론하며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에 ‘자연이에게’라는 제목으로 “자연이를 아는, 아니 연예계 종사자들은 자연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등의 글을 작성, 고인이 김 대표의 지시로 술접대 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양후열 문서영상과 과장이 고 장자연씨의 편지라고 공개된 문서의 필적 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email protected]
또 기자들을 상대로 “장자연이 나에게 문서를 준 것은 억울함이 많아서이다. 분명히 벌을 받아야 될 사람이 있고, 문서가 아니더라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등의 발언을 하며 공공연히 김 대표를 배후로 지목했다.
한편 김 대표는 장자연에게 욕설을 하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여러차례 때리고, 계약해지를 요구하자 전화로 욕설을 하거나 ‘네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협박을 한 사실이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김 대표는 유 대표 등을 상대로 “장자연 문건 속 내용은 유씨가 대부분 만들어낸 것인데 마치 장씨가 직접 자의로 작성한 것처럼 주장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5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 대표가 언론인터뷰와 인터넷 게시글을 통해 김대표를 모욕한 점만 인정, 7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유씨가 장자연 문건을 언급하면서 김 대표를 책임져야 할 ‘공공의 적’이라고 공개적으로 표현한 행위는 김 대표에 대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한다”며 “결국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를 위자료로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장자연 문건의 사본’ 필적과 ‘장자연이 생전에 작성한 노트 사본’의 필적 등을 감정한 결과 동일한 필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며 “고인의 가족이 ‘장자연 문건’을 보고 고인의 필체가 아니라고 주장한 적은 있지만 그같은 사정만으로 ‘장자연 문건’이 유씨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