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46)는 한국 대표 배우다. 한국영화 부흥기라는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의 영화 경력이 곧 한국영화 발전사이기도 하다. 송강호는 올해 '설국열차'와 '관상', 단 두 작품으로 1800만 관객과 만났다. 그리고 오는 19일 '변호인'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변호인'은 80년대 초 잘 나가던 세금 전문 변호사가 단골 국밥집 아들이 억울한 공안사건에 휘말려 변호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든 계기가 된 부림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송강호/사진=임성균 기자
자칫 영화 외적으로 논란이 일수도 있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벌써부터 '변호인'에 색칠하기가 한참이다. 쉬운 길을 갈 수도 있는데 어려운 길을 일부러 걷는 송강호를 만났다. 그는 영화 속에서 울보와 바보 역할을 참 잘했다.
-'변호인'은 부림사건을 다룬 법정영화고. 고 노무현 대통령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선택하는데 부담이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번 거절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 이유라기보다 배우로서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비단 고 노무현 대통령 뿐 아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한 단면을 표현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잘하지 못하면 누가 될 수도 있고. 원래 빨리 답을 하는 편이라 바로 거절을 했었는데 일주일 동안 이야기가 눈에 밟히더라. 그리고 '변호인'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30대 때 이야기인데 과연 내가 30대 때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나란 생각도 들었다. 난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작년 부산영화제 때 제작사 대표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하자고 했다.
-송강호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하고 싶어서 하기로 했다는 제작사 대표 인터뷰도 있던데.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지 딸은 아니다. (웃음) 제작사 대표와 친구인데 많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서로 같이 늙어 가는데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동안 신인감독과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는데. '변호인' 양우석 감독은 연출부 경험도 없는 신인인데.
▶처음부터 양우석 감독이 '변호인'을 연출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여러 과정이 있다가 제작사 대표가 양우석 감독에게 당신이 시나리오를 썼으니 가장 잘 알 것이라며 감독을 맡긴 것으로 안다. 양우석 감독이 기술적으론 신인이라 부족할 수 있겠지만 '변호인'이 감독의 역량으로 꽉 차여질 영화는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였다.
양우석 감독을 만나서 첫 질문으로 언제 이 영화를 구상했는지 물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불행하게 돌아가신 뒤에 연민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싶었다. 나한테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런데 양우석 감독이 이 이야기를 90년대 초반에 기획했다고 하더라. 그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전이었다. 그 말에 99% 정도 움직였다.
-'변호인'은 지나칠 정도로 영화 외적인 바람을 탄다. 한쪽은 헌정영화로 보고, 다른 쪽은 비방하고.
▶아무래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나 헌정영화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 기자간담회 때 감독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누구도 고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분이라고 했었다.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하거나 우리들끼리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이 영화가 보이지 않는 선입견과 싸우는데 그분의 성함을 이야기하면 헌정영화나 미화영화로 여겨지지 않을까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선입견을 안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정치색을 띠게 됐다. 과거 했던 영화들도 그런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국민을 존경하는 평범한 한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웃음) 지난해 대선 개표 방송을 보는데 현대사를 영화로 정리해서 보여주더라. 그런데 영화가 10편이면 8편이 내가 출연한 영화였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있고 '효자동 이발사'도 있고 '괴물'도 그렇고. 나도 모르게 필모그래피가 그렇게 쌓여 왔구나 싶더라. 나는 정치색이나 이념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뿐.
-영화를 보지 않고도 벌써부터 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영화를 보시면 고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구나란 것보다 그런 암울하고 회색빛이 도는 시대를 관통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구나란 걸 알아줬으면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저마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데 이 영화가 자극이 됐으면 한다.
-법정 장면이 5번 등장하는데 롱테이크가 나오는 2차, 4차 공판 장면 준비를 철저하게 했던 것 같던데.
▶1차부터 5차 공판까지 만반의 준비를 했다. 대사도 많고. 제가 준비가 제대로 안되면 민폐니깐. 숙소에서 소리도 질러보고 혼자 연습도 계속 했다. 주연배우가 준비가 안 되면 이야기를 잡아갈 수가 없으니깐. 공판이 진행되면서 감정도 쌓이고, 드라마도 쌓여야 했고.
-공안경찰로 등장하는 곽도원과 법정 장면이 불꽃이 튀는데.
▶곽도원은 정말 좋은 배우다. 법정 장면에서 낮은 톤으로 대사를 하는데 사악 뒤로 가면서 그 대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폭력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워낙 뛰어나니깐 서로 어떻게 하자고 주고받은 것도 없었다. 오달수도 그랬고. 좋은 배우들과 같이 하면 온다는 시너지라는 표현을 정말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관객이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스스로는 어떤 장면에서 감정의 울림이 크던가.
▶아들이 태어난 날 국밥집에서 돈이 없어서 도망가는 장면. 이 정도로 패배감을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곽도원과 붙은 4차 공판도 그랬고.
-극 중 맡았던 송우석 변호사는 콤플렉스가 동력이 되서 변호사도 되고, 나중에 영화 속 같은 결말을 맺는데. 송강호는 어떤 콤플렉스가 있나.
▶잘 생기지 않았다는 것.(푸하하) 농담입니다. 콤플렉스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동력이 생기는 것 같다. 극 중 송우석 변호사는 학벌이나 그런 지엽적인 콤플렉스보다 정의로운 사회에 일조하고 싶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동력인 것이다. 배우로서 송강호는 흥행 같은 지엽적인 것보다는 좋은 연기와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게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송강호/사진=임성균 기자
-영화 속에서 입지적인 사람을 맡은 것처럼 실제 송강호도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연극하다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됐는데.
▶87년 1월부터 89년 7월까지 군복무를 했다. 휴가를 나올 때도 큰 혼란을 겪었던 시기였다. 시대에 대한 혼란도 많이 느꼈다. 성공하고 싶어서 연극하고 서울 온 것은 아니지만 그 때 내적인 갈등도 있었다. 그 때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한 시기였는데 나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다행히 좋은 스승과 선배를 만나 성장할 수 있었다. 참 운이 좋았다. 사람 운이.
-지난 2~3년을 돌이켜보면 몇 편이 흥행이 안됐다고 위기론 운운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러다가 올해는 두 편으로 18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제 '변호인'도 개봉을 앞두고 있고.
▶지난 2~3년을 돌이켜보면 살다보니 이런 시기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기도 하고.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관통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올해는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들이 생겼다. 세상은 공평한 것 같다. 올해 같은 해를 주기 위해 2~3년 동안 그랬던 것 같다.
-'설국열차'를 하면서 다른 문화를 겪은 게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했는데. 그게 '관상'에 영향을 끼쳤고. 그럼 '변호인' 때는 어땠나. 아무래도 이끌어가야 할 몫이 더 컸을 텐데.
▶'설국열차'는 봉준호라는 세계적인 감독의 아우라가 지배하는 영화고, 봉준호라는 핵우산 밑에 있는 영화였다. 그러다보니 '관상' 때 마음가짐이 가장 강렬했다. '관상'은 정말 잘하고 싶었다. 책임감이 그만큼 컸고. '변호인'은 오히려 편안했다. 영화 내용이 주는 압박은 있었지만.
-'변호인' 모티프인 부림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본 적은 없나.
▶없다. 상황을 참고한다고 해서 연기나 영화에 도움을 받지는 못할 것 같았다.
-급전이 필요해서 '변호인' 했냐는 기사를 봤을 때 기분이 어땠나. 올 게 왔다는 느낌이던가.
▶나중에야 그 기사를 봤다. 그냥 당연하고 편안하게 받아지더라. 개봉을 하고 나면 인신공격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다 각오를 했다. 그런 것도 이 영화의 숙명이구나라고 생각했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저 이 영화의 진의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 본 적이 있나.
▶두 번 있다.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이창동 감독님과 영화 관계자 몇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전에는 모범 납세자로 선정돼서 갔는데 워낙 사람들이 만나서 인사도 못했고. 그런데 다른 대통령들도 많이 만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에 '괴물' 촬영장에 오셔서 밥차에서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부산영화제를 찾으셔서 만났었고. 고 김대중 대통령도 임기가 끝난 뒤에 영화인들과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은 그럼 어떤가.
▶아주 평범한 세상. 상식이 통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그런 평범함이 지배하는 세상이길 바란다.
-차기작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
▶겨울을 관통하면서 '관상'을 너무 힘들게 찍다보니 올 겨울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내년 상반기쯤 일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