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총수는 화나는 일을 희화화한다” 9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FM 옆 한 식당. ‘나는 꼼수다’ 20회 녹음을 마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43), 정봉주 민주당 17대 의원(51), 주진우 시사인 기자(38), 김용민 시사평론가(37)의 ‘이빨’은 점심식사 내내 멈추지 않는다. “토크 콘서트 포스터는 내 얼굴이 최대한 크게 나오게 뽑아야지. 부산에서도 또 한 번 하고”(정 의원)“급하게 할 게 아니라 길게 보고 또 다음 일정을 잡아야죠”(김 총수) “‘조국 현상을 말하다’(김 평론가의 책)는 많이 팔았어?”(정 의원) “조국 현상은 옛날에 끝났고 안철수 현상을 다뤄야 되는데 안철수의 안자도 안 나오는 책이 3쇄에 들어가다니.”(주 기자) “인세 받은 기념으로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김 평론가) 왁자지껄한 식사가 끝났다. 나꼼수 출연진에게 김 총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주진우 <시사인 기자> / 주 기자는 1999년 <시사저널>에 입사하면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 시사저널 파업사태 이후 <시사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에 조용기 목사의 비리 의혹을 고발한 기사를 쓴 뒤 순복음교회 교인들로부터 ‘사탄 기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 총수는 어떻게 알게 됐나. 이런 저런 취재를 하다 알게 됐다. 그러다가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다큐멘터리를 같이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알게 됐다. 마이클 무어 스타일로 재밌게 만들어보려고 했다. 미국까지 가서 촬영을 했는데 나랑 김 총수가 서로 게으르기도 하고, 돈도 없어서 결국 개봉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김 총수가 자신이 하는 라디오에 출연해 달라고 해서 한 번 슬쩍 나가서 이야기 좀 하다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MBC 연애상담 프로그램인가? 싶었는데 그게 ‘나꼼수’였다. 이제 고정출연이 됐는데 슬슬 여기서 도망가야 된다.(웃음) 김 총수나 다른 출연진의 모습에 가식은 없나. 방송 때도 그렇고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우리 모습은 한결같다. 평소에는 서로 바빠서 만나지도 못하고, 사전에 모여서 방송 준비를 한 적도 없다. 토크 콘서트만 해도 어쩌다가 말이 나온 게 김 총수가 ‘방송에서 우리 토크 콘서트 한다’고 딱 말하고 나서 일정과 장소까지 잡혔다. 사실 나도 김 총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출연은 계속할 생각인가. 지금 딱 잘라서 말하긴 그렇다. 정 의원이나 누가 잡혀간다든지 하는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각하 입장에서 ‘나꼼수’가 거의 임계점에 온 상태다. 우리가 BBK를 비롯해서 MB에 관련된 쟁점 중 안 다룬 것이 거의 없다.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다운로드 횟수도 생각보다 높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꼼수’를 듣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우릴 잡으러 올 수도 있다. ▲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 / 정 전 의원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과 재야운동 활동가를 지내는 등 ‘386세대’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 ‘외대어학원’ CEO를 역임한 뒤 2004년 17대 국회의원(서울 노원구 공릉동·월계동)에 당선됐다. 2007년 대선에서 BBK 의혹 추적의 선봉에 나선 자칭타칭 ‘BBK 스나이퍼’다. 김 총수와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5년 CBS ‘김어준의 저공비행’에 우연히 출연하게 됐다. 각 정당 의원들을 불러다놓고 퀴즈를 맞히는 코너였다. 내가 문제를 맞히면 ‘나꼼수’에서 하듯 내 자랑을 심하게 했다. 김 총수도 맞장구치면서 본인도 웃고 나도 웃고 그랬다. 나중에 김 총수가 속으로 ‘정 의원은 다른 정치인과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더라. 그 이후 인연이 계속돼서 SBS ‘김어준의 뉴스엔조이’에도 나가고 3년 정도 같이 방송을 했다. 김 총수와 몇 년 동안 함께 할 만한 매력 포인트가 있었나. 김어준 스타일은 변화하는 시류에 딱 맞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라고 본다. 방송만 해도 주류로부터 일탈한 이단 비주류다. 나도 좀 자유롭고 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 맞았다. 김 총수를 민주당에 입당시키면 어떨까. 실제로 그런 제의가 있었다. 2008년에 한 최고위원이 나보고 김 총수에게 비례대표를 제안하면 어떻겠느냐고 정식으로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은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정치인이 자유로운 직업이긴 하지만 기본 틀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 나도 틀은 싫지만 김 총수는 틀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는 사람이다. 언제까지 방송을 할 건가. 내년에 총선도 나가야 되는데. 내가 잡혀간다든지 할 가능성이 있지만, MB가 그만둘 때까지는 가겠다. 총선에 당선되면 나꼼수 시즌2가 되는 것이다. 내가 빠지면 없어질 프로그램 아닌가.(웃음) ▲ 김용민 <시사평론가> / 김 평론가는 ‘나꼼수’의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1998년 극동방송 PD로 입사해 2000년까지 다녔고, 2001~2002년에는 기독교TV PD를 지냈다. 2007년부터 2년간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지낸 ‘전 교수’이기도 하다. 김 총수로부터 ‘시사돼지’란 별명을 하사받았다. 스스로는 ‘양아치 사익추구 집단을 가장 우습게 여기는 시사평론가’라고 칭한다. 김 총수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6년 봄부터 김 총수가 진행하는 SBS ‘뉴스엔조이’에 게스트 출연을 했다. 한 번은 김 총수가 내 앞 순서가 재밌다는 이유로 10분으로 예정된 내 분량을 3분 이하로 잘랐다. 그래서 화도 내고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졌다고나 할까. 김 총수를 ‘스승’이라 부를 정도로 따르는데. 난 김 총수가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색하고 화내는 대신에 희화화를 한다. 너무 열불이 날 때 욕이 나오는 나와는 인격에 차이가 있다. 김 총수가 SBS라디오를 진행할 때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을 텐데 작가들 밥을 매일 사줬다. 이렇게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다. ‘나꼼수’를 제작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정봉주 의원 대법원 판결 선고 직전의 녹음이었다. 연기되긴 했지만 선고를 앞두고 분위기를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여서 이야기를 했다. 내 주특기를 살려 비장하고 슬프게 편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 총수는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곧 감옥에 가실 정봉주 전 의원”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가 여태 실컷 웃다가 갑자기 비장해지면 각하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만 커진다. 남 좋은 일을 왜 하나. 우리가 웃고 넘어가면 듣는 사람들도 별 일 아니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우리가 좌절하면 청취자들도 좌절한다. 각하에게만 도움을 주는 셈이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91700452&code=940100 토크 콘서트는 예매 시작 몇분만에 매진될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게스트로 누가 나올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