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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를 통일했던 진(晉)나라의 몰락 - (3)
게시물ID : history_2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유없음
추천 : 21
조회수 : 181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7/09 17:10:13
영가의 난(永嘉之亂).

회제 사마치의 치세에 일어난 난이라는 뜻으로 이 '영가(永嘉)'는 사마치 시대의 연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가의 난으로 진(晉)이라는 나라는 완전 멸망했고 이를 계기로 그 유명한 5호 16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중원에 거주하던 한(漢)족은 강남으로 쫓겨났고 흉노, 갈, 저 등 이민족들의 무대가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이 '영가의 난'의 발발은 흉노의 선우인 유연(劉淵)이란 사람에 의해서였다. 여기서 코에이사의 삼국지 게임 시리즈, 특히 삼국지 10을 해보신분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유연은 어부라(於夫羅)의 손자이며 유표(劉豹)의 아들이다. 어쨌든, 유연은 웬지 목불식정일것만 같은 오랑캐 흉노족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진나라의 낙양에서 유학을 할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무예또한 뛰어나 소위말해 문무를 겸비한 시대의 엄친아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능력을 인정받아 팔왕의 난 당시, 성도왕 사마영의 휘하에서 군단장을 맡는다. 요즘말로 하자면 용병인 셈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자신과 같은 흉노병들을 이끌었다. 

그러던 중 북방의 일족들로부터 부름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 호출의 이유란 그를 대선우로 추대하고자 함이었다. 일개 용병대장에서 부족의 우두머리인 대선우라니, 승진도 이런 승진이 없었기에(농담입니다..흉노 왕족이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유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304년, 대선우가 되었고 뒤이어 한(漢)왕을 칭한다. 여기서 흉노가 왜 국호를 옛날 한 고조 유방 시기부터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이던 한(漢)으로 칭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

304년이면 중원의 진나라는 팔왕의 난이라는 병림픽이 한창이던 때다. 이때쯤 흉노가 대선우 아래에 똘똘 뭉치게 되었으니 이것만으로 얘네가 한번 큰 사고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지 않는가.

사실 이 대선우 추대만으로 유연을 비롯한 당시 흉노의 분위기와 야심을 읽을 수 있다.
당시 그 시대의 흉노족은 그 유명한 삼국지 조조의 분할 정책이래로 후한 말부터 이 이야기의 배경인 진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간 분할되어 있었다. 그리고 진나라 역시 흉노를 몇개의 부로 나누어 관리, 경영하고 있던 것인데 그 진나라가 이젠 난리통이니 그 사이 몰래 저들끼리 단합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우두머리인 유연이 진나라에 머물며 직접 보고 느꼈던 것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팔왕의 난에도 참전하여 진의 혼란을 보았을 터. 오랑캐인 우리도 중원을 도모해볼 수 있다라는 자신감 역시 추진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308년, 유연이 황제를 칭한 시점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오랑캐 족장의 신분에서 중국의 황제와 동급에 선 것이다. 진나라의 입장에 있어서는 참으로 능욕 중 능욕이 아닐 수 없었으나 따질 여력도 없었고 게다가 이제 몇년 후에 겪을 능욕에 비하면 양반급이라 예감이라도 했는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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